결혼의 풍경. 9화
'아내'란 말은 집 안쪽이라는 뜻으로 '안해'로 기록되던 것이 변형된 것이다. '아내'란 호칭은 집에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안사람 또는 집사람과 실질적으로 같은 의미다. 남편은 한자로 男便인데, 이런 표기는 19세기에나 발견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는 한자대로 해석하면 안 되고 부부에서 남자를 칭하는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사실 '여편'이라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사용됐었다고 한다. '여편네'는 우리 시대에 여자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부를 개별적으로 부르는 이와 같은 호칭은 우리나라 표현이 여전히 조선시대의 유교적인 요소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그 표현들 중에 '집사람'이란 표현이 가장 싫었었다. 아니, 집사람이라고 불리면 그 사람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나도 남자지만, 남자들이 '우리 집사람이...'라고 말을 하면 왠지 그 말이 맥락적으로 '집안일만 하는 그 사람'이란 느낌이 있는 듯해서 그 표현이 불편했었다.
이에 대해서 혹자는 '별 것도 아닌 것 같고 예민하게 군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무의식 중에 뱉는 말의 영향을 받는 존재다. 예를 들면 '다르다'와 '틀리다'는 엄연히 의미가 다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르다'라고 해야 하는 지점에서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적지 않은 반면 '틀리다'라고 해야 하는 지점에서 '다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은 경우에 다름을 틀림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것'을 무의식 중에 '틀리다'라고 말하는 언어습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아내 또는 배우자를 '집사람'이라고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부르면,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을 '집안일만 하는 사람'으로 인지할 확률이 높다. 우리 사회에서 남편들이 아내들을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은 그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남자들은 무의식 중에 '바깥일'이 '집안일'보다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고 아내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 가정이 맞벌이를 해야 하는 우리 사회에서 '집사람'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라 할 것이다.
'집사람'이란 말을 쓰지 않는 경우 우리나라 부부들은 '여보'나 '당신'또는 '자기'란 표현을 사용하고, 어른들은 심지어 결혼을 하면 반드시 서로를 그렇게 부르라고 한다. 이런 표현에 대해서 부부는 한마음, 한 몸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부른다는 뜻만 알면 된다는 의미에서 '여보'란 표현을 쓰게 되었고, 당신(當身)은 내 몸 같다는 의미에서 사용되는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좋게 해석하면 그렇게 해석할 수 있지만, 그런 표현들은 사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핑계로 개인으로 존재하는 두 사람의 주체성을 삭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부부는 정말로 일심동체인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부부가 진심으로 일심동체가 되어서 상호 존중했던 역사가 있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부부가 일심동체라는 표현은 항상 그래야 한다는 '당위'였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그랬던 부부들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남존여비적인 사고방식이 아내를 남편의 아래로 여기는 문화의 역사가 더 길었던 것이 현실이다. 이 외에도 아이가 생기면 00 아빠 또는 00 엄마라는 호칭이 상대를 부르는 표현이 되는데, 그때부터는 부부가 되었던 두 사람 사이에 있던 부부로서의 정체성도 사라지고 부모로서의 정체성만 남게 된다.
조선시대처럼 대가족을 이뤄서 여러 세대가 한 집에서 살 때는, 생존의 문제가 항상 우선이어서 개인보다 가족, 집단과 국가가 우선시되던 시대에는 그런 호칭과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시대에는 '개인'이 우선이다. 그리고 이는 그 시대에도 그랬다. 아내와 남편은 개인으로 바로 서고 온전해야 상대를 사랑하고 품을 수 있고, 아내와 남편은 배우자로서의 정체성도 있지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어야 존재의 의미를 느낀다. 아이에게 부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한 시기에는 아이가 부모의 정체성의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 아이들도 성장하면 부모의 품을 떠나게 되어있다. 아이가 부모의 정체성의 전부 또는 9할 정도를 차지한다면 그 아이가 독립하거나 결혼했을 때 그 부모는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실제로 아이가 부모의 정체성이 되어버림으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치맛바람'은 좋게 말하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일 수 있지만, 사실 '치맛바람'이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면 그 부모들의 관심은 자녀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기보단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자녀에게 투영해서 자녀가 그것을 이루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자신이 갖고 싶은 사회적 평판, 부와 명예를 자녀를 통해 이루고 싶은 마음. 자녀를 자신의 마음과 뜻대로 조종하고 다루고 싶은 마음. '너는 왜 부모 말을 안 들어 먹니?'란 표현엔 사실 그런 마음이 실려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자녀가 본인의 정체성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란 자녀는 상처 덩어리가 되고, 언젠가는 엇나가게 되거나 스스로 독립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인생에서 힘든 일을 마주했을 때 오는데, 자녀도 결국은 인격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가 요구하는 삶을 살다가도 자신답지 않게 살게 되면 언젠가는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어있다. 모든 가능성 중에 가장 다행인 경우는 오히려 부모와 부딪히고 등을 돌리게 되는 게 아닐까? 그나마 그렇게 되면 그 자녀는 본인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 수 있을 테니까.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버리는 것은 이렇듯 자녀를 망가뜨리게 되어 있고, 자녀가 망가지면 자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그 부모도 함께 망가지게 되어있다.
그래서 부부간의 관계와 부모 간의 관계에서도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는 개인으로도 존재해야 한다. 개인의 정체성 안에 남편, 아내, 아버지, 어머니라는 가정에서의 역할이 일정 부분을 차지해야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의 정체성을 잡아먹어선 안된단 것이다. 우리는 결혼한 후에도 그렇게 개인으로 존재하는 영역이 어떤 형태나 비율로든 존재해야 나머지 사회적 역할도 제대로 해낼 수 있는데, 이는 한 개인이 독립적으로 서 있지 못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과 연결된 다른 요소가 흔들리면 자신도 그만큼, 또는 그 이상 흔들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신이 개인으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다른 영역이 흔들려도 독립된 자신의 정체성으로 중심을 잡고 버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부부간의 호칭은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독립적으로 유지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난 최소한 부부간의 관계에서는 결혼한 이후에도 상대의 이름을 그대로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모두 그래야 내가 누군가의 남편이나 아내, 아빠나 엄마가 아니라 000이란 존재라는 사실을 가끔씩이라고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00 아빠'나 '00 엄마'라는 표현을 쓰면 안 된단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공간이나 영역 또는 아이들의 부모로 존재하는 공간이나 영역에서 두 사람은 누군가의 아빠나 엄마로 불릴 수 있다. 하지만 부부가 상대를 그렇게 부르게 되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개인이 아니라 자신의 자녀의 부모로만 존재하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게 되면 부부가 서로 자기 관리를 하지 않고 남편이나 아내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잘 신경 쓰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어권 국가에선 결혼한 사람들도 상대의 이름을 부른다. 이름을 부르지 않을 때는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질 수 있는 'honey'나 'dear' 또는 'darling'같은 표현을 개인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데, 그런 표현은 서로를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어떤 이들은 '그건 영어권 국가고'라고 할지 모르는데, 사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많이 서구화되어 있다. 때로는 개인주의를 넘어서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의 규범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현실이 그렇다면, 결혼한 부부라 하더라도 두 사람 간의 관계 안에서 만큼은 두 사람이 모두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를 부르는 것이 맞지 않을까? 만약 이름 외에 다른 호칭을 사용한다면, '여보'나 '당신'보다는 조금 더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느껴지면 좋겠다. 두 표현이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어떤 느낌을 줬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시대에 두 표현이, 특히 '당신'은 그렇게 긍정적으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게 현실이니까.
[당신도 그걸 알잖아.] [당신이 뭘 알아.] [당신은 정말 이기적이야.] 이 문장들을 읽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당신'이 꼭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표현은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부를지는 그냥 두 사람에게 맡겨놨으면 좋겠다. 커플은, 부부는, 자신들만의 언어가 있을 수 있으니까. 분명한 것은 부부는 함께 가정을 꾸림과 동시에 서로에게 개인으로 존재해야 한단 것이다. 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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