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7화
결혼식을 한창 많이 다니던 시절.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겪고 느꼈던 일이었다. 식이 끝나고 나면 그 자리에 코스로 음식이 나오는, 호텔식으로 운영되는 예식장에 늦게 도착해서 예식장 가장 뒤에 있는 구석 테이블에 앉았다. 신랑 측 아버님께서 사업을 하는 분이셨고 그 테이블은 사업 관련 분들이 모여 계셨는데 그분들은 예식 내내 아무도 예식은 보지 않고 일 얘기만 웅성거리며 하고 계셨다. 그때의 경험은 결혼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결혼식의 꽃은 신부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결혼식만큼은 신부에게 다 맞춰줘야 한다고도 한다. 그래야 결혼 후에 편하다고,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그 날만큼은 신부가 온전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신부들이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소박한 결혼식을 원하거나 결혼식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주위의 케이스들을 보면 결혼하는 커플의 과반 이상에 대해서는 맞는 맞는 현실적인 조언인 듯하다.
그런데 결혼식은 그저 그렇게 신부가 화려하고 아름답게 차려입는 날일까? 아니다. 결혼식은 자신의 다짐과 상대에 대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그 관계에 책임을 지겠다고 지인들에게, 사회 속에서 공개적으로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자리다. 다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약속을 하는 것은 평생 한 번 밖에 없는, 과거에 일부다처제인 사회에서도 어쨌든 하나의 가정에 큰 일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격식을 차리고 주위에 예를 다하기 위해서 차려 입고, 화장을 하고 꾸민 것이지 그것 자체가 결혼식의 본질은 아니다.
따라서 사실 결혼식은 두 사람의 그러한 약속이 어떻게 하면 잘 표현되고 전달될지를 고민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틀이 확고하게 잡혀있다 보니 신랑이 먼저 들어가고 신부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와서 넘겨주고, 따로 들어왔다 같이 나가는 건 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여자를 남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성평등적 관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같이 입장하기로 하는 경우도 있고, 모르는 사람이 주례를 하기보다는 양가의 부모님께서 두 사람에게 덕담을 해주는 형식의 결혼식도 있는데, 이처럼 두 사람의 철학과 가치관이 들어간 다양한 형식의 결혼식이 생기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와 같은 과정이나 절차로써의 결혼식은 생각하지 않고 결혼식은 무조건 00 호텔에서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형편이 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력이 된다면 이왕이면 조용하고 분위기가 잡힌 곳에서 결혼식을 진행하는 게 하객들도 집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예식 자체에 대한 집중력도 높일 테니까. 하지만 여력이 되지 않음에도 무리해서 '한 번 하는 거 화려하게 해야 해'라는 생각에 그런 예식을 고집한다면, 그 결혼식은 또 하나의 쇼와 주위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행사로 전락하게 된다.
어떤 이들은 '결혼 준비'에 그런 결혼식을 포함시키고 여전히 남자 측에는 집을, 여자 측에는 필요 이상의 혼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결혼식이 두 사람이 독립해서 하나의 가정을 꾸린다는 의미를 갖는단 것을 감안하면 그런 요구들은 매우 불편하고 심지어 천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자신의 자녀가 결혼하는 과정에서 그런 걸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자녀에 가격표를 붙이고 파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나? '결혼하려면 이 정도 집은 갖고 와'라는 것은 결국 '우리 딸은 000원짜리야'라고 하는 것이고, '예물로 이런저런 것을 해오고 우리 쪽 친척들한테도 이런저런 걸 해줘야지'라고 하는 것은 '우리 아들은 000원이니까 그만큼 물건을 가져와'라는 것이 아닌가? 그거 외에는 그런 거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남자 측이 집을 마련하는 전통은 여자가 남자 집에 시집을 '간다'는 개념이 명확했을 때 생긴 것이고, 여자 측이 혼수를 마련하는 것은 '신부 지참금'의 명목이었는데 이는 신부가 입고 쓸 옷감과 생필품을 가져가는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즉, 여자가 남자 집에 '들어가서' 사는 문화에서는 상대 집에 들어가서 사는 대신 한 사람이 더 들어가서 삶으로 인해 살림을 축내지 않기 위해, 혹은 그 축내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자가 자신이 쓸 것을 들고 들어가는 문화가 '혼수'의 본래 의미란 것이다. 그래서 이 두 가지는 명확한 대가관계에 있었다.
그 계산에 의하면 남자와 여자 측은 서로 대등한 수준의 거래를 해야 한다. 따라서 결혼을 해서 여자가 시댁의 집에 '들어가서' 사는 게 아니라 따로 집을 마련해서 산다면 여자 측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내놓는 것이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이는 3억짜리 집을 남자 측이 마련한다면 여자 측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해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 것을 '전통'이라고 하며 지킬 필요가 있을까? 우리 사회와 개인들의 삶이 조선시대와 얼마나 다른가? 조선시대에는 일부다처제도 인정됐고 혼인은 실제로 상당 부분 거래의 관념으로 이뤄졌는데 현대사회에서는 설사 거래로 여긴다 하더라도 그걸 대놓고 거래라고 하면 질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누구도 그런 표현을 피하지 않나? 그게 그렇게 의식될 정도라면, 그건 결혼이 더 이상 거래적 성격을 갖지는 않는단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어느 한쪽으로 기운 결혼은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물론, 양쪽 집안이 상대를 모두 너무 마음에 들어했고 조금 더 여유 있는 집안에서 물질적인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너그럽게 각자 형편에 따라 조금 더 해주기로 한 경우에는 다를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해했던 결혼에서 한쪽이 결혼 준비에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면 그 가정은 부담을 더 많이 지은 집안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 두 사람과 가정에 큰 문제가 없을 때는 이를 둘러싸고 큰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문제가 없는 가정, 싸우지 않는 부부는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반드시 문제가 되게 되어 있다.
그나마 두 사람 중 가장 역할을 하는, 주된 수입원이 되는 사람이 아닌 사람의 집안이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다면 문제는 덜 발생할 수 있다. 시작할 때는 한 집안에서 더 많이 지원을 했어도 그 가정을 꾸려나가는 건 조금덜 여유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경제적으로 가장 역할을 하는 사람의 집안이 결혼 준비에 대한 부담을 더 많이 진 경우, 그 상대는 그 집안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집안은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 집이 아니라 본인 집안을 중심으로 모든 결정을 하도록 요구할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은 암암리에 [결혼은 어느 정도는 거래]라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두 사람이 양가에 손을 벌리지 않고 하는 게 좋은데, 요즘 경제상황에서 그러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한 양가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을 받거나 지원을 받은 것은 반드시 돌려드리는 조건으로 지원을 받는 게 부부가 평등한 가정을 꾸리는데 도움이 된다. 이는 아무리 현대사회에 결혼이 예전보다 개인과 개인의 결합적인 성격이 강해졌다고 해도 양가에 오가야 할 일은 반드시 생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두 사람이 어쩌면 연애를 할 때는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이는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두 사람의 성향과 가치관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내 친구의 경우 연애를 5년 하고 결혼을 했는데, 5년 내내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과정에서는 단 하루도 싸우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하더라. 그건 아마 두 사람이 연애할 때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길 수 있었던 것이 이제 되돌이킬 수 없는 본인의 삶과 연관된 요소에 대해 얘기하게 되면서 양보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가치관이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지역, 어떤 집에서 살지, 시댁과의 거리나 처가댁과의 거리, 집안을 어떻게 꾸밀지 등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계속 부딪히고, 그런 결정에는 중간에서 합의를 보는 건 보통 없기 때문에 한쪽의 의견대로 결정이 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상대는 기분이 언짢아지고, 그 상한 마음을 또 상대는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만 두 사람은 이미 결혼 준비를 시작했고, 주위 시선도 있으니 되돌이키기는 조금 그렇고, 또 지금 헤어진다고 해도 더 나은 사람을 만날 보장은 없는 상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결혼하고, 그 상태로 살아간다. 결혼하지 말라고, 애만 아니면 같이 살지 않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상당수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엄청나게 부딪힌 경우가 많더라. 그 경우가 심해서 아예 이혼을 한 사람들도 있지만, 아이나 부모님 때문에 이혼은 하지 못하고 그냥 그런 상태로 살아가는 부부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결혼을 어떻게 준비하는지는 생각보다 두 사람의 미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두 사람이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말하고, 타협을 하거나 상대의 생각대로 결정하게 되는 내용을 앙금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하다. 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은 연애하면서 쌓은 감정과 추억을 덮어버릴 정도의 상처를 결혼을 준비하면서 주고받기 때문이다.
만약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가치관이나 세계관, 원하는 사람의 방식이 본인의 그것과 너무 다르거나 상대의 어느 면이 본인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불편하다면 그때라도 결단을 하는 게 낫다. 그 시점에 헤어지고 나면 새로운 사람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는데, 그건 근거 없는 두려움이다. 그리고 그 두려움이 실체가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만약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게 되는 수준의 불편함이 있다면, 그렇게 해서 꾸린 가정은 혼자 사는 것보다 더 힘들고 외로울지도 모른다.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있고 마냥 좋기만 해서 결혼해도 수십 번도 더 결혼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시작부터 그런 고민을 한다면 그 끝이 좋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부딪히면 그냥 헤어져'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일단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을 정도의 신뢰가 있다면, 두 사람은 두 사람 간의 갈등과 차이가 극복하기 힘든 수준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소통해야 한다. 상대가 왜 어떤 것을 어떻게 하기를 원하는지를 들어보고, 자신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선을 최대한 확장하기 위한 노력을 두 사람이 계속하다 보면 두 사람은 오히려 새로운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결혼 후에도 두 사람이 계속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노력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해야 한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으려 하던지, 그렇게 노력해도 맞춰지지 않고 타협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너무 늦게 갈라서는 게 두 사람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기로 했으니까, 주위 사람들 이목 때문에 일단 꾹 참고 결혼을 강행하는 것은 폭탄을 안고 터널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혹자는 '살아보면 맞춰지지 않을까?'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고민을 굉장히 깊게, 끝까지 해야 하고, 그래도 도저히 안 되겠다면 두 사람은 최소한 지금은 결혼하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바뀌고 맞춰주게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확실한 현재의 불행을 감당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미래에 확실한 행복이 있다 하더라도 그 행복 기저에는 불행으로 받은 상처가 가득할 텐데, 그 행복이 얼마나 클지는 잘 모르겠다.
결혼 준비는 서로가 함께 해도 될지를 확인해 보는 마지막 과정이다. 그때라도 아니라면, 돌아서는 게 맞다. 두 사람 모두를 위해서.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