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6화
'결혼 준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뭘까? 대부분 사람들은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할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은 분명 결혼하는데 중요하다. 20대까지만 해도 '작게 시작할 수도 있지'라던가 '지금 조금 힘들어도 같이 살면서 모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주 솔직히 말하면 30대 후반이 된 지금은 내가 그럴 자신이 없다. 경제적으로 힘들어 봤고,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것이 한 사람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할 수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이젠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은 없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고 해도 방이 최소한 두 개는 있어야 숨을 쉬면서 살 수 있을 듯하다.
그런데 경제적인 부분은 생각보다 조정하고 맞추기가 어렵지 않다. 아 물론, 강남은 처음부터 들어가 살아야 살 수 있다며 신혼집부터 반드시 강남에서 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 말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경제적인 부분의 하한선이 대한민국 평균보다 훨씬 높다면 그것 역시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열심히 나름의 계획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30대 중반 정도에는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여러 가지를 알아보면 은행의 도움을 받아서 방 두 개 정도 있는 집을 매매는 아니어도 전세나 월세로는 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타협'의 수준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이런 경제적인 면에서 내가 목격한 가장 당혹스러운 사람은 본인은 작은 기업의 총무팀에서 일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준비되지 않았으면서 남자는 경제적으로 결혼할 준비가 된 사람을 찾는 사람이었다. 집은 당연히 남자가 해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그렇게 결혼을 하면 그 사람은 행복할까? 결혼하는 시기에 한쪽이 경제적으로 훨씬 풍요롭다면, 결혼을 하는 그때는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고 당장 좋아 보일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불균형은, 특히 한쪽이 상대의 경제적인 면에 혹해서 결혼한 경우 장기적으로 그 관계에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한쪽이 경제적으로 월등히 우위에 있고 그에 따라 결혼 과정에서 그쪽이 지출을 많이 했다면, 그 사람 혹은 그 사람 집안에서 그것을 빌미로 모든 것을 본인 가정에 맞출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건 결혼이 아니라 장사 혹은 거래처럼 되어버리고, 그에 따라 비용을 더 지불한 측이 갑이 되게 된다. 그렇다고 또 갑 노릇을 하는 사람을 비판할 수도 없는 게, 경제적인 면을 보고 상대를 선택한 건 결국 본인이 장사를 한 것이 아닌가? 본인이 돈을 보고 결정했다면, 상대도 돈에 따라 사람을 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경제적인 부분에'만' 초점을 두고 결혼 준비를 생각하는 사람들은 사실 결혼에 필요한 준비가 가장 안되어 있는 사람이다. 이는 그런 생각을 하는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른단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데 있어서 경제적인 부분은 분명히 따져야 하고 중요한 부분이지만 경제적인 것이 결혼과 가정의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사실 경제적인 부분은 20-30대 '현재'보다 상대가 경제적인 관념과 계획이 있는지,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고 책임감 갖고 꾸준히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를 보고 판단할 문제지 지금 당장의 경제적인 상황만 놓고 판단할 성격의 것은 아니다. 이는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도 1-2년 안에 직장에 더 있지 못할 사정이 생기거나 사업이 어려워질 수도 있고, 지금 당장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 몇 년 안에 하는 일이 대박이 나서 경제적으로 엄청 풍요로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벌이가 거의 없는 현대사회에서 경제적인 부분은 상대와 나의 경제적인 능력을 같이 고려할 성격의 것이지 상대방의 조건만 보고 판단할 것은 아니다. 그걸 너무 잘 알았던 내 지인은 당장의 경제적인 능력은 부족한 남자 친구에게 본인의 10년 계획을 써서 보여달라고 하더라. 남자 친구는 계획을 성심껏 세워서 보여줬고, 결혼한 두 사람은 지금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결혼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자신 안에 이뤄져 있어야 한다. 결혼을 고민하거나 생각하고 있다면 그때는 대상이 되는 상대도 있을 텐데, 결혼을 할 때는 본인이 상대의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라 함은 함께 살기 시작할 때 예상하지 못했거나 알지 못했던 상대의 모습이 나오더라도 상대의 그 모습을 받아들이거나 그것을 밀쳐내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그에 대해 상대와 대화를 하며 상대의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각오를 해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최소한 결혼하는 시점에 두 사람은 본인이 완벽하지 않고 상대가 본인에 대해 불편해할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그걸 너무 불편해할 경우 맞추기 위한 노력을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모든 걸 맞춰줘야 한단 것이 아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마 지금도 서로 불편하거나 상대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텐데, 그에 대해서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으면서도 본인에게 버겁지 않은 수준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에 대해 기꺼이 맞춰줄 수 있는 선을 찾아야 한단 것이다. 지금 그걸 못하면, 함께 살면서 발견되는 상대의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그런 과정을 더더욱 갖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또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게는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솔직해야 한다. 결혼 후 결혼하지 않은 것만 못한 삶을 살거나 그러다 결국 돌아오는 사람들은 두 사람 사이에 불편함이 있거나 본인이 상대에 대해 느끼는 불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하면 괜찮을 거야'라는 생각에 둘 사이에 있는 문제를 방치하거나 사실 본인이 상대에 대해 감당하지 못할 부분인데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부부간의 문제는 대부분 그렇게 이미 두 사람이 인지하고 있었거나 본인이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 다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 착각한 부분에서 발생한다. 하루, 이틀은 감당할 수 있지만 매일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고, 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감당되지 않는 것들이 분명히 있고 그에 대한 본인의 느낌이나 감정은 상대와 본인 모두에게 솔직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두 사람은 사실 결혼하기 전에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한다. 어떤 가정을 꾸리고 싶고, 결혼 후에는 어떤 삶을 살고 싶으며, 본인이 가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장담하건대 두 사람이 꿈꾸는 이상적인 가정은 절대로 현실에서 구현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상대가 그걸 받아들이지 못해서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영향으로 그럴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게 필요한 것은 그래야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이상이 구현되지 못했을 때 서로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타협할 수 있는 선을 함께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본인을 어느 정도 이상은 알고 있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는 본인이 자신을 잘 모르면 그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는 본인이 아닌 본인이 되고 싶은 누군가의 얘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본인이 본인을 잘 모를 수도 있고,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이 실제 본인과 다를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받아들이고, 전제하고 상대 역시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이 모두 받아들이고 대화를 해 나가야 한다. 이는 그래야 두 사람이 가정을 꾸린 후에 본인들이 알았던 본인, 그리고 상대와 다른 것들이 보이고 일어날 때도 두 사람이 다시 서로 맞춰나가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와 같은 대화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감정적이 되었다가도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그게 지금 당장 잘되지 않더라도 서로 이성적으로 대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지금 같이 살지 않고 있는데도 이성적인 대화를 서로 하지 못한다면, 함께 살기 시작한 후에는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가 더 힘들 수도 있다. 부부는 연인보다 가까운 관계고, 인간은 더 가까운 관계에 대해서는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기가 쉽기 때문에 연인일 때 하지 못했던 것을 결혼하고 나서 하기는 많이 힘들 수 있다.
어렵고, 복잡하고, 길게 설명했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대화]로 정리된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자신과 상대에 대해서, 그리고 상대와 함께 꾸려나갈 가정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이는 단순히 연인으로 있을 때와 상대와 결혼과 가정에 대해 얘기할 때 상대와 본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혼하기 전에 그런 대화를 하는데 익숙해져 있어야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이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두 사람운 결혼한 후에도 이런 대화를 반복해서 해야 한다. 이는 대부분 사람들은 20-30대에 본인 자신을 잘 모르고, 그에 따라 상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결혼을 결심하며, 결혼한 후에는 본인들이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로 인해 두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대화도 습관이다. 두 사람이 자신, 상대와 함께 꾸린 가정에 대한 얘기를 결혼하기 전에 거의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결혼한 후에도 그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두 사람이 경제적인 부분만 생각하고 결혼했다면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 사이에서는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두 사람이 어떤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하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상대가 귀찮다거나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면서 대화를 회피한다면, 아니면 본인의 말을 아예 들을 생각하지 않고 무시하기를 반복한다면 결혼을 준비하기 시작했어도 결혼을 미루거나 그 관계를 끝내는 게 낫다. '다시는 그러지 않을게' 라거나 '결혼하면 달라질 거야'라는 말은 공허한, 절대 지켜지지 않을 약속이다. 그런 건 행동으로 보여줄 성격의 것이지 말로 약속하고 신뢰할 성격의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대화를 못할 배우자와 하는 결혼생활은, 대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가정은, 혼자 사는 것보다 더 외로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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