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결혼의 결과물

결혼의 풍경. 5화

by Simon de Cyrene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한다는 생각은 해도 '가정을 꾸린다'는 인식 없이 결혼을 한다. 이는 마치 전공을 선택하면서 그 전공을 택한 사람들이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이 전공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결정이다. 문제는 결혼과 전공선택의 결과물은 너무 크다는 데 있다. 전공을 선택했어도 자신이 하는 일은 평생 수십 번도 더 바꿔도 되지만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가정'에 대한 의식 없이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간다.


앞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결혼은 상대와 평생 함께 하겠다는 것을 지인들 앞에서 약속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법적으로 구속받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에 반하는 '폴리아모리'이나 '열린 결혼' 같은 얘기들이 가끔 오가지만, 본인이 그런 형태의 결혼이나 사랑이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런 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형태의 결혼은 아닌듯하고, 법적으로도 당연히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그런 사람과 만나지 말 것을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것은, 그게 본인의 신념인 사람은 그 사람 입장에서는 사랑이지만 상대의 입장에서는 '외도'를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쩌면 '네 마음이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 숨긴 것뿐이야'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서 두 사람은 한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런데 '가정'이 갖는 의미는 뭘까? 가정은 사전적으로 '생활 공동체'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가정'은 두 사람의 삶이 합쳐지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단순히 같이 사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구속 또는 bond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겐 왜 이런 공동체가 필요할까?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심리적인 측면인데, 이는 인간 본성과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관계에서 본인이 어느 정도 이상 수용받는다는 느낌을 받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수용받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상대가 자신을 이해하고, 실수해도 용납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과 신뢰가 경험적으로나 감정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확신과 신뢰는 일상에서, 특히 작은 것들에서 상대가 본인을 얼마나 존중해주는지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또 수용받는 느낌을 받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상대에게 자신의 약점과 부족한 점을 그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생활 또는 경제적 측면인데, 이에 대한 부분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국가는 [부족 -> 부족 국가 -> 중앙집권적 국가]로 진화해 왔는데, 여기에서 '부족'은 애초에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여기에서 '생존'은 물리적으로 먹고살면서 안전이 보장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부족은 가정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정 역시 마찬가지 기능을 갖는다고 봐야 한다. 사실 부족은 그 부족 자체가 가정이지 않나? 따라서 가정에서는 두 사람이 함께 함으로써 생활을 해 나가는데 서로 도움을 줘야 한다. 생활에는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공간을 가꾸고 유지하는 것도 포함되는 개념인데, 이 개념이 과거에는 [남자는 경제, 여자는 공간]을 담당하는 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건 아마도 [생존]의 차원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노동력이나 힘이 필요했고, 남자가 생물학적으로 힘이 더 세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겠지만 힘이 아닌 다른 재능이나 머리로 경제활동을 하는 영역이 훨씬 더 큰 현대사회에서 이런 구분은 사실 필요 없을 것이다.


가정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켜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경제 공동체' 수준으로 이해하는데, 가정은 사실 경제공동체이자 [정서]공동체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가족은 그 안에서 먹고사는 문제도 함께 해결해야 하지만 수용받고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아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 상대를 최대한 수용하기 위한 노력을 '같이'하고, 현실에서 살아가는 문제도 '같이' 해결해 나가겠다고 약속하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사람들의 다툼은 이런 인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부족한 영역에서 주로 일어난다. 예를 들면 일하고 와서 너무 피곤해서 지친 사람에게 무조건 씻지 않는다고 소리를 지르거나 돈도 얼마 벌지 못한다고 윽박지르는 것은 가정의 정서적인 필요에 반하는 행위다. 상대가 피곤하다면, 당장 짜증이 나더라도 한 호흡 쉬고 씻지 않는다고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자면 당신 건강에도 좋지 않고, 나도 힘드니까 당신과 나 모두를 위해서 간단히라도 씻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줄 수는 없을까? 상대가 최선을 다해서 벌어 온 돈으로 만족이 되지 않는다면 본인은 그보다 많은 돈을 벌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하고, 만약 그렇다면 두 사람이 벌고 있는 돈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만약 정말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 하나의 공동체인 두 사람 중에 한 명인 본인이 돈을 더 버는 것은 어떨까? 상대가 꼭 본인보다 많이 벌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나?


반면에 상대의 모든 얘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면서도 경제활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 사람이 충분히 많을 돈을 벌고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생황에서도 상대가 가정주부로 살고 이 돈을 버는 사람은 상대가 자신들의 생활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상대가 장을 보지 않고, 빨래를 해주지 않고, 집안 청소를 해주지 않는다면 본인이 지금처럼 본인 이리에 집중할 수 있을까? 그걸 다 돈을 주고 맡긴다면 그 비용은 얼마나 들까? 그 비용이 상대의 노동 가치, 그리고 본인의 가정 공동체에 기여하는 수준이라는 것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은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경제활동을 한다면 생활영역의 일은 당연히 두 사람 간에 적절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이런 인식이나 의식을 갖고 결혼해도 두 사람은 싸울 수밖에 없다. 이는 두 사람이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특정한 상황이나 감정적 상태에서는 두 사람이 부딪힐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갖고, '그러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솔직하게 이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나서 결혼하기로 결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나마 그런 인식과 의식을 갖고 결혼을 결심하면 두 사람이 그렇게 부딪힌 후에 상대에게 사과하고 다시 합을 맞춰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인식과 고민 없이 결혼을 결정한다. 어떤 이들은 정서적이고 감정적인 부분'만'을 생각하고, 심지어는 지금 당장 본인들의 감정만 생각하고 결혼을 결정하고, 또 어떤 이들은 경제적인 부분'만'을 고려해서 결혼을 했다가 정서적 교감이 없어서 힘들어한다. 마음만으로 만 결혼한 부부는 결혼 후에 닥치는 현실적 어려움에 무너지거나 그 과정에 외부로부터 경제적인 유혹이 있으면 그로 인해 갈라서기로 결심할 수 있고, 경제적인 부분만 본 사람은 정서적인 교감을 찾아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설 수도 있다. 분륜, 간통은 보통 이런 식의 가정 안에 있는 균열로 인해 시작된다.


그래서 우린 누군가와 결혼할 때 '가정을 꾸린다는 인식'을 갖고 결심 또는 결단을 해야 하고, 이 글에서 설명한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다만 '정서적 교감'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설렘'과는 조금 맥락이 다른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한 설렘 또는 호르몬 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랑하는 듯한 감정은 정서적 교감을 할 수 있게 문을 열어주는 역할은 하지만, 그게 영원히 지속되진 못한다. 가정에 있어서의 정서적 교감은 상대가 나의 성향이나 특성을 그대로 존중해주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이지 상대의 존재만으로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그 과정이 없는 가정은 건강한 가정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더 중시해야 할까? 그건 [가정만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와 [무엇이 더 충족시키기 힘들까?]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교감]이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나의 공동체로 엮이지 않은 상태에서는 모두 자신의 삶과 생활이 더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라는 인식과 의식이 없는 상태의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색과 성향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교감하기가 힘들어지고, 그에 따라 서로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둘 중에 만약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건 [교감]과 정서적인 영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적인 측면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두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 비슷하고 두 사람이 정서적으로 통하는 면이 많다고 해도 경제적인 불안정은 그런 정서적 교감을 할 여유를 앗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반드시 필요한 경제적 수준]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준을 만들 수는 없다. 다만, 경제적인 면도 분명히 중요하기에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기 전에 본인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 수준에 대해 자신과 상대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교감]이 더 중요하다고 한 것은 두 사람이 경제적으로 엄청적으로 풍족하다고 해서 두 사람이 정서적으로 더 풍족해지고 교감을 잘하게 되는 것도 아니고, 지금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갑자기 가난해질 수 있고 지금은 조금 부족하더라도 지금 노력하고 있는 영역에서 대박이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사회에서는 사실 두 사람이 같이 살지 않아도 물리적으로 혼자 경제활동을 하고 다양한 서비스들을 통해서 자신의 생활에 지원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혼하는데 필요한 [정서적]인 준비와 [현실적]인 준비엔 뭐가 있을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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