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과 처갓집의 의의

결혼의 풍경. 8화

by Simon de Cyrene

'시댁'과 '처갓집'은 그 말 자체로 남성우월주의를 담고 있다. 이는 두 표현이 '댁'과 '집'으로 끝나는데서도 드러나는데, 이 두 표현은 시댁은 높이고 있는 반면 처갓집은 그냥 집이라고 부르면서 시댁을 암묵적으로 높이고 있다. 중국에서 시(媤)는 여자 이름에 쓰는 글자로 여사(女司)의 의미를 가졌는데 우리나라에서 쓰이던 '싀'라는 발음을 음만 빌려와서 쓴 가차자(假借字)라고 보는데, '싀'는 '새로운'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댁은 새로운 집, 시집은 새로운 집으로 '가는'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집을 '간다'고 전제되다 보니 떠나보낸 집은 '과거의 집'이란 의미에서 '아내의 집'이란 의미에서 처갓집이라 불리고, 시댁은 여자가 들어가서 '새로운 집'으로 들어간단 의미에서 시댁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러한 두 표현의 특징은 시댁과 처갓집은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가서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데릴사위 제도가 있었던 사회, 그리고 결혼하면 남자가 여자 집으로 들어가 살았던 고구려 시대에는 이런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표현의 특징은 우리나라에서 부부 사이에서 시댁이 유독 문제가 많이 되는 이유를 보내준다. 어른들은 여전히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남녀가 평등해야 하는 현 사회의 규범이 부딪히면서 갈등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아들을 둔 부모는 대부분 '그래도 우리 집이 먼저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딸을 둔 부모는 '시대가 어느 땐데 아들, 딸을 따져?'라고 생각한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는 후자가 훨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이 생각은 모두 그 관계를 자신들 중심으로 끌어오기 위한 이기적인 생각이다. 실제로 아들과 딸을 둔 어느 부모는 아들에 대해서는 전자로 생각하고, 딸에 대해서는 후자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더라.


그리고 기혼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시댁과 처갓집 사이의 갈등에는 이러한 문화적 충돌의 경향이 다른 면에서 미묘하게 꼬여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30-40대 남자들의 경우 결혼을 하면 본인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에 대해 안쓰러운 마음이 크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들게 살아오셨는지를 눈으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30-40대의 조부모님, 그리고 어쩌면 그들의 부모님도 남존여비적인 사고방식이 강했을 것이고, 그런 문화 속에서 30-40대들의 어머니는 절대적인 약자로 살아오거나 본인의 꿈은 펼치지 못하고 억압당하셨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자들의 경우 그런 어머니와 친구처럼 지내면서 소소하게 관계를 형성하지만, 대부분 남자들은 성장과정에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큰 일]에서만 어머니 편에 서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 때문에. 그러다 보니 남자들 중에는 결혼한 후에도 본인의 어머니와 관련된 일에서는 자신의 아내보다도 어머니가 먼저 신경 쓰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는 부부간의 갈등으로 이어진다. 즉, 남자들은 역설적이게도 본인의 어머니가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남녀평등에 기반한 사고'로 인해 본인의 어머니를 위하게 되는데 그게 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단 것이다.


우리 시대에 결혼이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간다'라고 여기는 것은 폭력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 명제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내가 앞의 글에서 설명한 집과 혼수에 대한 내용이 다 부인되어야 하고, 그에 따라 남자들은 집을, 여자들은 혼수를 준비해야 한다. 그걸 받아들이겠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겠지만, 요즘 시대를 사는 보통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명제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남녀가 평등하다면, 이는 부부관계에도 그래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시댁과 처갓집은 그 호칭의 불균형함과는 무관하게 동등하게 대해야 한다. 현대사회에서도 변하지 않는 '결혼'의 본질이 있다면 그건 두 사람이 하나의 '공동체'를 꾸린다는 것이고, 그 '공동체'는 시댁과 처갓집으로 불리는 두 사람이 평생 속해 있던 또 다른 공동체에서 두 사람이 독립해서 꾸리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두 사람이 기존에 본인이 속했던 가정과 단절하고 나온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회관습상으로도 두 사람은 자신이 속했던 가정 또는 공동체와 연은 유지한 상태로 본인의 가정을 꾸리게 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시댁과 처가는 모두 두 사람이 결혼해서 꾸린 가정의 '확장된 공동체'다. 그리고 부부관계에 있어서 남녀가 평등해야 한다면, 그들의 확장된 공동체 또한 평등해야 한다. 그리고 결혼이 두 사람이 '하나 된 가정'을 꾸리고, 서로가 상대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는 상대의 가정도 자신의 삶 속으로 들어오고, 그에 따라 상대의 생물학적 부모와 형제도 자신의 가정과 마찬가지인 확장된 공동체 또는 가족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부부가 진정으로 '하나'가 된다면 상대의 부모는 본인의 부모만큼이나 소중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조금 강하게 표현하면 두 사람이 결혼을 하는 것은 두 번째 부모를 맞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신의 부모가 생물학적 부모라면, 상대의 부모는 일종의 사회적 부모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연애가 아닌 결혼을 할 때 상대의 부모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것도, 결혼한 후에는 자신의 부모와 상대의 부모를 평등하게 대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이 모두 같은 부모라면, 양가 부모님은 똑같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평생을 함께 살아온 부모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연결고리로 해서 자신의 삶에 들어온 부모에 대한 마음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부부는 결혼한 후에 자신의 가정에 대해서도 상대에게 완전히 오픈하고, 자신들의 확장된 가정 또는 공동체를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 '평등하게' 대화를 나눠야 한다. 그리고 그 논의의 중심에는 양가가 아니라 두 사람의 생각이 있어야 한다. 이는 두 사람에게는 본인이 가정을 꾸리기로 결단해서 꾸린 가정이 1순위여야 하고, 양가 부모님과 형제는 어디까지나 '확장된' 가정이기 때문이다.


부부가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를 충분히 존중해주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면서 그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면 두 사람의 확장된 가정은 짐과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모두 상대의 생물학적 부모가 자신의 사회적 부모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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