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2화
기혼자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이들에게 '자유롭게 살아, 결혼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기혼자들 중에 정작 본인이 싱글 부대로 복귀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은 왜일까? 아이가 있는 기혼자들은 '아이 때문에'라고 말하고, 아이가 없는 이들은 특별한 이유는 대지 않고 무작정 너는 가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은 가정을 유지하면서 또 가정 밖에서 이성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상당수, 어쩌면 대다수가 20대 또는 30대 초반에 결혼한 사람들이다. 그 시기에는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지 않다보니 그 나이대에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후에 그와 함께 몰려오는 부담과 책임, 그리고 아무리 잘 맞는 사람이고 연애하면서 행복했어도 결혼하고 나면 또 다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적지 않은 이들이 결혼한 후에 올 행복과 안정에 대한 기대가 부담과 책임, 힘듦보다 크다 보니 가정을 꾸리고 나서 어려움을 겪으면 더 크게 힘들어하고 좌절한다. 그리고 한번 입은 상흔은 그에 이상의 기쁨과 즐거움이 그 상흔을 치유해주지 않는 이상 더 깊어지면 깊어졌지 자동으로 치유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서 그 나이대는 남녀 모두 상대적으로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가 많은 시기다. 그래서 그들은 이성관계에 대해 자신들의 경험에 비춰서 '싱글이면 얼마든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어'라는 전제를 깔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자유롭게 살아'라고 하는 것은 '연애만 해'를 의미하고, 그 말에는 암묵적으로 '언제, 어디에서든지 만날 수 있잖아'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여자들은 30대 중반, 남자들은 30대 후반이 되면 새로운 이성을 만날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아 물론, 예외는 있다. 집이 있고 연봉이 높아서 경제적으로 매우 안정된 남자와 외모에서 나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여자의 경우에는 기회가 유의미할 수준으로 줄어들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기회와는 별개로, 사람들은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연애' 자체에는 흥미를 잃어간다. 이는 30대 중후반 정도가 된 보통의 사람이라면 연애를 하면서 해볼 만한 경험은 보통 한 번씩 다 했다보니 엄청난 게 새로운 것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30대 중후반에는 한창 일과 책임은 많아지는데, 체력은 떨어져 가기 때문이다.
개인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결혼에 크게 생각이 없던 사람도 빠르면 30대 중후반, 늦어도 40대 초중반에는 아이는 갖지 않아도 최소한 결혼은 해도 나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자극적이고, 쾌락적인 것보다는 안정을 원하기 때문에. 그리고 즐겁고, 흥분되는 경험도 한 번씩 하는 게 좋긴 하지만 그보다도 일상을 함께 공유하면서 살아갈 사람이 더 필요해지기 때문에.
사실 적당한 횟수와 기간 동안 연애를 해 본 30대 중후반의 남녀는 20대에서 30대 초반의 남녀보다 안정적인 가정을 꾸릴 '확률'이 높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는 그 사람들은 보통 몇 번의 연애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상대에게 맞춰줄 수도 있고 안정감을 느끼는 지를 어렸을 때보다는 조금 더 잘 알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비율과 확률적으로는 분명 그런 면이 있다. 그리고 30대 중후반의 남녀는 세상에 완벽한 사람도, 부부도 없다는 것을 지인들의 케이스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이대 사람들은 보통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엄청난 환상을 갖고 있지 않고, 그 관계에서 본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이대 사람들이 결혼에 대한 '결단'을 하면, 조금 더 어린 나이에 결혼한 사람들보다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나이대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중요하게 여기는 몇 가지가 맞는 사람을 만나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도 결혼하기로 결정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을 알기 때문에 결혼에 대한 결정을 쉽게 못하기도 한다.
20대 후반, 30대 초반에 결혼한 지인들이 내게 '결혼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마'라고 하면, 난 반대로 '이 나이대에 싱글로 안 살아봤지? 그럼 말을 하지마'라고 한다. 사실 일찍 결혼한 사람들이 30대 중후반 이상의 싱글들의 삶을 아는 것보다 30대 중후반 이상의 싱글들이 보통 기혼자들의 삶을 더 많이 아는데, 이는 결혼한 사람들은 결혼한 후에는 연애와 결혼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 싱글들의 얘기에 크게 귀를 기울이거나 그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지 않는 반면 30대 중후반 이상의 싱글들은 시간이 갈수록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에 대한 생각이 많아서 여러 얘기를 들어보고 여러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기혼자들이 아는 것은 본인의 결혼생활뿐이다. 그들은 결혼에 대한 자신의 지식 등이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과 다른 경험에 크게 귀 기울이지 않고 자신만의 확신에 빠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안타깝게도 '결혼하지 마라'고 조언하는 기혼자들은 대부분 그러한 자신의 확신 때문에 불행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딱히 행복하지도 않은 결혼생활을 이어간다. 행복하게,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결혼을 추천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서 듣고, 그렇게 살고 행동할 수 있는 이유를 고민하면서 자신을 돌아본다면, 그리고 자신의 배우자와 대화하면서 서로 맞춰나갈 수 있다면 그들의 결혼생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텐데 그런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들은 너무나도 쉽게 미혼인 지인들에게 편하게, 자유롭게 살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하다못해 토익 시험을 보더라도 몇 날 며칠을 공부한다. 나 같은 경우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보니 영어를 한국어와 비슷하게 함에도 불구하고 토익을 보기 전에는 문제 유형 등을 파악하고 준비를 하고 시험장으로 갔었다. 그건 시험을 보는 사람의 기본자세라고 생각한다.
하물며 결혼은 누구에게나 처음이다. 이혼해서 싱글이 되었다 돌아온 사람이라 해도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건 처음이기 때문에 이전 결혼생활이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노력하지 않고 결혼생활이 자동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 세상에 그렇게 쉬운 것은 숨 쉬는 것과 앞에 있는 음식을 먹는 것 밖에는 없을 듯하다.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본인 마음대로 결혼생활이 만들어지지 않으면서 무조건 주위 사람들에게 결혼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다.
앞의 글들에서도 설명했지만, 결혼생활을 하면 잃는 게 있고 결혼함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결혼을 하기 때문에 받고 누리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도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순수한 게 아니라 순진한 것이고, 그렇게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순진한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자란 것이다.
결혼에 대해 고민이 된다면, 본인의 결혼생활이 왜 힘든지를 잘 모르겠다면 우선 한 걸음 물러나서 본인을 돌아보는 연습을 하자. 상대에게도 문제가 없진 않겠지만 본인에게 아무 문제도 없다면 두 사람의 관계에서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가 들 정도의 힘듦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서로 맞추며 중간지점을 찾아가며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지 상대가 내게 모든 것을 맞추는 과정이 아니다.
물론, 절대로 맞출 수 없는 상대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그래서 결혼을 결정하기 전에 자신에 대해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 이는 내가 맞출 수 없는 사람도 누군가는 상대에게 맞출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내가 절대로 맞출 수 없는 사람을 선택했다면 그건 상대의 실수이자 본인의 실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혼한 덕분에 훨씬 행복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들은 충분히 많다. 문제는 어떤 사람과 결혼했느냐에 있지 결혼 자체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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