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의 풍경. 14화
'아이를 갖지 않을 생각이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지'
이기적이지 않고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지인이 이 얘기를 하는데 눈이 휘둥그레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 일에 간섭하지도, 챙기지도 않던 형이 그런 말을 하다니... 그 대화는 점점 놀라움의 연속으로 변해갔는데, 이는 그 지인이 대화를 하면 할수록 아이를 키우는 것의 기쁨과 즐거움, 보람에 대해 말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결혼하고 나면 얼마나 귀찮고 피곤한 게 많은데. 아이를 가질 생각이면 결혼을 해야겠지만 그럴 생각 없으면 그냥 연애만 하면서 사는 게 나아'라는 결론을 냈다. 뭔가 너무 그 지인 다우면서도 그 같지 않은 결론이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정말 효자, 효녀인 아이들은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며, 밥도 주는 대로 잘 먹고 낮잠도 주기적으로 자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굉장히 많다. 내 다른 지인은 아이가 새벽에 절대 자지 않고 엄청나게 울어대고, 낮에도 너무 심하게 울어서 경비실에 아이를 학대하는 것 같다는 신고가 들어갔을 정도라고 하더라. 내 아이가 전자와 같다면야 낳아서 기르는 게 그나마 덜 버겁겠지만, 내 아이의 성향은 내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는 것은 인생의 예상할 수 없는 리스크를 수반한다. 그뿐인가? 그 아이가 커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과정에서 부모의 속을 얼마나 많이, 그리고 자주 썩이고 대들겠나? 우리 삶을 돌아보면 그에 대한 답이 대충 나올 텐데, 우리는 모르지만 부모님 속은 타들어 갔던 적이 많았을 것이란 점을 고려하면 아이를 양육하는 것은 아직 아이를 낳아서 기르지 않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일일 것이다.
아이를 갖기는커녕 결혼하지 않은 내가 이성적으로 바라봤을 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이 이럴 정도면 실제로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은 그보다 훨씬 힘들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특히 아이가 어릴 때는 어쩌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존재를 중심으로 내 삶의 모든 영역을 바꿔야 하는데, 그 경험이 쉬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야 하고, 내가 바빠도 아이가 아프면 아이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게 부모로서의 삶일 것이다. 그런 삶이 어떤지는,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
이쯤 되면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가 아이는 절대 갖지 말라고 할 법도 한데, 내 주위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는 평균적인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말 죽도록 힘들다고 하면서도, 한 명 이상은 절대로 키우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아이가 주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아이를 전혀 예뻐하지 않았던 사람도,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던 중에 아이가 생긴 사람도 아이를 낳고 나면 딸, 아들 바보가 되더라.
우리 어머니의 경우 내가 굉장히 크게 대들고 나서 화해하는 과정에서 '네가 날 이렇게 대해도 널 다시 품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네가 크면서 내게 준 기쁨과 즐거움이 너무 크기 때문이야'라고 하시는데,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내가 얼마나 대들고, 내 주관을 갖고 살아왔는지를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드린 기쁨과 즐거움이 더 크다고? 그 마음 또한 부모들만이 아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가져보지 못했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아이를 갖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기쁘고 즐거웠던 것과 다른 새로운 종류의 기쁨과 즐거움을 맞바꾸게 되는 경험인 듯하다.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즐겼던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는 힘듦이 있지만, 그것만큼 혹은 그 이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아이를 통해 받게 되는 것, 그게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과정 같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낳아서 기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것에 대해 쉽게 왈가왈부해서는 안 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결혼해서 아이는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개인적으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기에 아이를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결혼해서 가정을 꾸렸다면 아이를 갖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을 고려한 생각인데, 나는 인간은 새로운 것에 쉽게 익숙해지고 익숙해지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선다고 생각한다. 회사원들이 홀수 연차에 퇴사 유혹을 크게 느끼는 것도, 그즈음되면 회사는 승진을 시켜주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익숙해서 지겨워질 즈음에 새로운 직책이나 권한을 부여해서 새로움을 불어넣어서 그 사람이 회사에 남도록 하는 것. 그게 회사의 인사관리 전략이 아닐까?
연애도 마찬가지다. 1-2년 정도 연애를 하고 나면 두 사람은 커플로 할 수 있는 경험을 보통 다 해봤기 때문에 그 이상 이어지는 연애는 관성으로 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고, 또 그렇게 다른 사람과 몇 번의 연애를 하고 나면 연애하면서 할 수 있는 것 자체에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서 연애 자체에 대한 권태기를 겪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커플들이 그러한 루트를 가는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결혼생활의 경우,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새로움을 느끼는 것은 짧으면 1-2년, 길어야 3-5년일 것이다. 그렇게 둘이 사는데 익숙해지고 나면 두 사람 사이에는 새로운 무엇인가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진다. 기혼자들 중에 바람을 피우거나 스와핑과 같은 변태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그들이 두 사람 사이에서 더 이상의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이를 갖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꾸린 가정에 새로움을 선물해 준다. 아이는 커가고, 커가면서 아이의 변화에 따라 부부는 챙겨줘야 할 것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가정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리고 부부는 각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라는 공통 요소로 대화하고, 공감하고, 공유할게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그 존재 자체로 가정에 새로움을 불어넣어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가정에는 아이가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그러면 아이는 부모의 도구란 말이냐?'라고 묻는 이들이 있을 수 있다. 아니다. 나는 아이가 부부관계를 견고하게 하고 이어 줄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걸 아이를 도구로 여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누군가와 결혼을 하는 것도 다 그 존재를 도구로 여기는 것일 수도 있게 된다. 그런 논리라면 아이를 낳고 길러야 할 유일한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 이 땅에 인구를 늘리기 위해서여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 만약 아이를 이 땅에 존재하게 했다는 부모의 생각이 아이를 오히려 자신이 모든 것을 줬다는 생각에 아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게 만들 수도 있고 후자의 경우 아이를 국가의 도구로 간주하는 것이 아닐까?
아이가 그 가정을 지탱해주는데 접착제 혹은 풀 같은 역할을 하는 존재라고, 부모가 아이에게 주는 것보다 아이가 부모에게 주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는 적지 않은 부모는 아이가 가진 것을 본인이 다 줬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생각은 아이의 미래를 본인이 결정하고 아이를 본인에게 종속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만든다. 반면에 아이 덕분에 부부관계가 가까워질 수 있었고, 아이가 가정에 새로움을 불어넣어줬다는 사실을 부모가 항상 기억한다면, 그 부모는 아이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사랑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랑을 받은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있다고 해서 바람을 피우지 않는다거나 아이를 갖는 것이 부부관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도, 아이를 갖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란 것도 아니다. 너무나도 이기적이어서 아이에게 어느 것도 양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가정보다 본인의 이익을 항상 앞세우는 성향의 사람은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된다. 아니, 그런 사람은 애초에 결혼 자체를 하면 안 된다. 가정문제의 대부분은 사실 자신은 전혀 양보할 생각도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런 사람들은 사실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는 것은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문제를 일으킬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을 예시로 들면서 아이를 갖는 것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여기까지는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의 '이성적인 측면'이다. 그런데 난 개인적으로 이성적인 측면보다 감성적이고, 감정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인간은 '사랑하기 위해서' 산다고 생각한다. 사람 없이, 사랑 없이 사는 삶은 아무리 돈이 많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외롭고, 힘들다. 돈을 벌고 일하는 것도 사실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 많은 것을 풍요롭고 안정적이게 누리기 위함이 아닌가? 단순히 생존과 생계만을 위해 사는 사람들도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런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우린 그러지 않기 위해 투자도 하고 때로는 투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그런 맥락에서 보면 아이를 갖는 것은 부모가 되어 또 다른 차원의 사람을 경험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누군가의 자녀로, 친구로, 형제로 사랑하는 것과 누군가의 부모로 사랑하는 것은, 누군가가 온전히 나에게 의지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사랑일 것이다. 어차피 한 번 태어나서 언젠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존재 목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랑을 최대한 다양하고 풍성하게, 많이 경험하고 누리다 세상을 떠나고 싶다. 난 그래서, 가능하면 가정에는 아이가 있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 필요하고, 좋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경제적 어려움'이 크게 작용한다. 단순히 피곤하고 나를 희생해야 하는 것을 넘어서 경제적인 어려움이. 난 사실 그래서 정부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데 최대한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단순히 그 아이와 부모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람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나라가, 사람까지 없다면 국가가 어떻게 유지된단 말인가? 그렇게 지원을 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사람들이 아이를 낳아 양육하는 과정에서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줌과 동시에 국가의 미래에 대한 투자로 작용한다. 정치권은 정쟁은 그만하고, 이런 문제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신경을 좀 썼으면 좋겠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브런치에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씁니다. 혹시라도 감사하게도 '구독해야지!'라는 생각이 드셨다면, 2020년에 제가 쓸 계획(링크)을 참조하셔서 결정하시는 것을 권장합니다. 브런치에는 '매거진 구독'이라는 좋은 시스템이 있으니, 관심 있는 매거진만 구독하시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