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감정이 곧 사랑은 아니다

사랑학개론. 6화

by Simon de Cyrene

이전 글에서 사랑에는 이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사랑에는 감정은 필요 없어!'라는 의미는 아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감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특정한 감정이 생긴다고 해서 그게 곧 사랑도 아니고, 지금 당장 특정한 감정이 생기지 않아도 상대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다. 사랑에 있어 감정은 필요조건이긴 하지만 그 자체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보거나 떠올릴 때 특정한 감정이 일어난단 이유로 본인이 상대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거나 자신의 감정이 어떠한 지를 혼란스러워한다. 설레이거나 상대가 미친 듯이 보고 싶을 때, 상대를 갖고 싶거나 내 앞에 두고 싶을 때, 심지어 상대가 내 눈앞에 있는 것 같거나 상대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감정이 휘몰아치면 '이게, 사랑인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런 감정을 이성이 아닌 대상에게서도 느끼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감정은 좋아하는 가수나 배우를 직접 만났을 때, 아니면 정말 사고 싶거나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을 때도 생긴다. 그 외에도 길을 지나가다 매력적인 이성을 포착했을 때,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주인공에 감정 이입된 상태로 러브신, 키스신이나 베드신을 볼 때도 우리는 그런 감정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그 감정들도 사랑일까?


아니다. 그런 감정은 사랑보다는 '소유욕'에 가깝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를 직접 보거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것도, 물건을 가지고 싶은 것도, 스쳐 지나가는 매력적인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정도 그 순간이나 상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런 감정은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에 호감을 갖거나 좋아하는 것일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을 사랑과 동일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런 감정이 소유욕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다. 사람들은 호감이 가거나 매력을 느끼는 사람을 '가지고 싶다'는 표현을 종종 쓰는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남에게 보여주기 부끄럽지 않은 외모나 스펙을 가진 연인과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자신의 '급'에 맞는 사람을 만나겠다는 생각도 이성에 대한 감정이 소유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사람들은 '나 정도의 사람을 만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 말은 그 사람이 놀랍게도 자신을 물건으로 취급하며 자신에게 금전적 가치를 부여하여 '소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감정이 사랑이 아닌 '소유욕'이라는 것은 연인관계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을 살펴보면 조금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연인들 간의 다툼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다르지만 대부분 '상대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에 다툰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맞춰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억지로 맞추는 경험이 주는 누적된 피로감이 결국에는 그런 갈등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상대와 마찬가지로 그 사람에게도 상대를 소유해서 자신이 필요하고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그렇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은 원래 그렇다. 계속 강조하지만 사람은 필연적으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군가와 한 공간에 18시간을 같이 있다고 해도 18시간을 완전히 공유하는 게 아니고, 설사 그 18시간을 공유한다고 해도 그전까지 살아온 경로가 같을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시간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확률이 매우 높지 않나?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다르게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랑은 소유욕이 일으키는 설레이는 감정과 호르몬 작용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연애 초기에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잘해주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상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내가 해줘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썸을 타는 기간이나 연애 초기에 상대가 잘해주는 건 엄연히 말해서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내 연인으로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누구나 그렇다.


적지 않은 연인들은 이 상태에 머물다 헤어진다. 이별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표현은 '너 변했어'가 아닐까 싶은데 그건 엄연히 말해서 상대가 변한 것이 아니라 상대가 당신을 가지기 위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인위적으로 맞춰줬던 것이다. 상대는 당신을 어느 정도 기간 동안 소유했다가 흥미를 잃고 나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 상태를 '사랑'이라 생각하고 결혼식장에 걸어 들어가는데, 그런 상태에서 결혼한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다툴 수밖에 없다. 이는 결혼하기 전에는 상대와 만날 때만 상대에게 맞추며 잘 보이면 됐지만 결혼하는 순간 두 사람의 생활이 합쳐져서 두 사람이 시간 뿐 아니라 공간까지 공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짧으면 하루에 4-5시간, 길어도 여행하는 며칠만 상대에게 맞추면서 연애를 할 수는 있지만 일상의 토대가 되는 공간과 하루의 처음과 끝까지 모두, 평생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그런 마음으로 연애를 시작하거나 누군가를 만나는 게 나쁘고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누군가를 갖기 위해서라도 상대에게 맞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연애와 연인과 결혼이 그런 감정과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아름답게 말하는, 로맨틱하고 백년해로 하는 사랑은 불가능할까? 나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사랑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고 처음부터 형성되지 않을 뿐이다. 그렇다면 그런 사랑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사랑은 두 사람이 '상호 간에' 상대를 갖기 위해서 상대에게 맞추는 노력을 하면서 만들어진다.


의도가 반드시 선하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선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정말, 진심으로 힘든 사람을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평판을 위해서 기부를 하더라도 어쨌든 그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도움이 된다면 그게 나쁘다고 할 수 있을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려는 마음이 없지만 회사에서 단체로 가라고 하니까 억지로 자원봉사를 가더라도 그 봉사가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온전하게, 상대방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이 상대를 가지고 싶어서 서로에게 맞추고, 호의를 베풀다 보면 두 사람은 그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새로운 마음이 생기는 걸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모두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 사람은 그때서야 비로소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며 진짜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럴 때 상대에게 느껴지는 감정은 호감이 생기거나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생기는 마음과 사뭇 다르다. 우리는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마음이 신경 쓰이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게 되며, 상대와 함께 있을 때 평안하고 자연스러워지게 된다. 그리고 상대에게 주는 것, 상대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자체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이 시리즈의 다른 글에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가 주는 것 자체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을 아는 사람인지를 가장 먼저 봐야 한다. 그 기쁨과 행복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 사이에 설레임이나 연애 초기의 감정이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단 것은 아니다. 감정은 칼로 무 베듯 잘라지지 않는다. 우리 안에는 상대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과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공존할 수 있다.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설레임이 사라지는 것은 많은 경우 상대를 삶의 상수로 받아들여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래된 연인과 부부도 상대에게 새로움을 느끼게 해 주고, 매력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계속하면 설레임을 계속 느낄 수 있다. 그런 부부들이 존재한다는 건 그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는 그런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많은 경우 그건 두 사람 중 최소한 한 사람이 '소유욕'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두 사람 중 한 명이 어떤 이유로든지 상대를 자신의 인생에서 덜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두 사람이 모두 노력하고 맞추면서 상대를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 이상 유지될 수가 없는데 한 사람이 그 끈을 놔버리면 그 관계도 무너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사랑의 감정도, 설레임도 유지시켜주는 것은 결국에는 '노력'이다. 그런데 그 노력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기초로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데는 '이성적인 사고'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음 글에서는 사랑을 만들고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노력에 대하여 다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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