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엔 '이성적 사고'가 필요하다

사랑학개론. 5화

by Simon de Cyrene

앞의 글에서 말했듯이, 사랑은 내게서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라면 다른 사랑에도 능숙할 수 있지만 완벽한 사랑만 받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는 모두 성장과정에서 어느 정도는 불완전한 사랑밖에 경험하지 못한다. 이는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모든 것을 100% 상대에 맞춰서 소중하게 여겨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간극을 극복하게 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이 아니라 이성과 논리다. 상대에 대한 감정이 있으면 서로 맞지 않는 부분들을 지금 당장 묻고 넘어가게 될 수는 있지만 상대에 대한 감정이 사그라들면 그런 부분들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어있다. 그건 '묻고 넘어간 것'이지 이해하고 해결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언젠가 다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관계에서의 문제가 그렇게 해결되기 위해서는 두 사람이 모두 본인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알아야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원인을 찾고, 이해할 것이 아닌가? 진짜 문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는데 있다. 2천 년도 더 전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전해져 오는 것은 자신을 아는 사람들이 그만큼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한단 것이다. 혈액형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상대의 MBTI를 궁금해하는 뿌리에는 사실 어떻게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싶어 하는 욕구와 욕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MBTI 외에도 얼마나 많은 성격검사, 유형검사, 적성검사들이 있나? '나 자신을 아는데 참고가 되는 검사'들이 그렇게 만다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검사들은 우리가 스스로를 알아가게 해 주는데 좋은 참고자료가 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 수는 없다. 이는 그런 검사들은 '지금 내가 어떤 성향인지'를 알게 해 주지만 '타고난 성향'과 '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성향'을 알게 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구분하기 위해서는 내 과거를 부단히 돌아보고, 내가 무의식 중에 했던 결정들을 분석하면서 내가 태어나서 자라온 과정을 돌아봐야 한다.


나의 예를 들자면,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MBTI 전문가가 리딩 하는 MBTI세션을 세 번 정도 했는데 처음에 E였던 성향이 I로 바뀐 것 외에 나머지는 STJ로 항상 같았다. 그 STJ의 강도가 모두 5 전후였을 정도로 좋게 말하면 균형이 잡힌 사람이었고, 나쁘게 말하면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나왔다. 첫 검사를 했을 때 분석을 해주시는 전문가께서는 '이렇게 가운데로 몰리는 사람은 처음 본다. 본인이 되고 싶은 것도 많이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라고 했는데 시간 차를 두고 한 세 번의 검사에서 결과는 같았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여러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나를 잘 알던 친한 동생이 '형은 극단적으로 감성적인데, 또 극단적으로 이성적이다'라고 할 정도니까. 그리고 나는 계획을 많이 세우는 편이긴 하지만 그 계획을 어렵지 않게 무시하고 즉흥적인 결정들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나는 실제로 두 가지 성향을 거의 50대 50으로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리고 첫 검사에서 극단적인 E였던 나는 왜 마지막 검사에선 극단적인 I가 되었을까? 나의 '타고난' 성향은 무엇일까? 나는 왜, 어쩌다 모든 특성을 고루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이 예측하기 힘든 사람이 되었을까? 이 고민은 나를 꽤나 오랫동안 괴롭혔다.


돌아보면 난 '타고난 I'였다. 하지만 아버지 직장을 따라 한국과 해외를 오가면서 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난 E처럼 적극적으로 살아야 했다. 그러던 내 성향은 대학원에 가면서 희석되면서 나의 타고난 성향이 도드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감성의 영역을 강하게 타고났고,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성향이 본래 강한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계속해서 '왜?'를 물어보는 교육환경에서 사춘기를 보냈고, 한국과 해외를 오가는 '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눈치를 보면서 '왜?'를 물어봐야 했다. 그 과정에서 T적인 성향이 개발되었고, 항상 어느 정도 성과를 낼 것을 요구받다 보니 계획을 세우는 게 익숙해졌더라.


내 기억이 가장 멀리 닿는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결정들과 순간순간 들었던 마음들을 분석해서 내린 결론이다. 타고난 성향이 아니라고 해도 그게 내 몸에 박제될 정도로 오래 훈련이 되고 나면 둘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어지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건, 그래야 나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으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보고 받아들이게 되면 그 뒤부터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와 나에 대한 말들에 덜 휘둘리게 되어서 상처를 받을 일이 확연하게 줄어들더라.


그리고 나의 장점과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을 과도하게 포장하거나 자신의 단점을 과도하게 강조하거나 회피하는 것은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나오는 모습들이다. 자존감이 어떤 방향으로든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는 사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도 사랑하기 힘들다. 나 자신도 소중하게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까?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보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장점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균형이 잡혀나갈 수 있으니까. 진짜 문제는 누가 봐도 자존감이 낮아서 자신을 과대 포장하거나 자신의 단점은 회피하는 사람들이다. 내 상처들이 터져 나오기 전의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모습들은 내 안에 있는 상처들을 직면하고 인정하기 시작할 때야 비로소 회복되기 시작하더라. 그리고 내가 회복될 수 있었던 건 내가 본질적으로 나쁜 놈이 아니고, 나의 부족하고 부정적인 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서 그런 고민을 하다 보면, 내 주위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이해되게 된다. 나는 굉장히 엄격하고 기준이 높은 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그렇다 보니 나는 아무리 좋은 결과를 내도 단 한 번의 칭찬도 들은 적이 없다. 우리 부모님은 잘못한 것은 다른 사람들의 2-3배로 혼내고, 나의 단점은 집요하게 캐내고 강조하셨고, 어렸을 때 체벌도 많이 하셨고, 항상 내가 부족한 것만 강조하셨다.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해외에서 외국인 학교를 다니면서 중학교 학생회장에 당선되었을 때 어머니의 첫마디가 '여러 나라 사람들 있는데 한국 사람이 학생회장 되었으면 성적도 잘 받아야 하는 거 알지?'라고 하신 것이 내가 어떤 분위기에서 태어나 자랐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경험들이 축적되었지만, 난 내가 상처가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30대에 반복해서 실패를 하기 전까지는.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나는 일반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곱게, 많은 것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상처를 받아서도 안되고 받을 일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내가 현실에 집중해서 느끼지 못했을 뿐이지 어렸을 때부터 누적된 상처들은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더라.


그렇다 보니 나는 30대 초반에 부모님께 폭발하고 대들었었다. 20년 전의 일들까지 끄집어내면서. 그 기간 동안 우리 가족은 지옥 터널을 지나는 것 같은 하루, 하루를 보냈다. 동생이 내게 원망 섞인 목소리로 '형은 애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지 왜 옛날 일까지 끄집어내서 난리냐'라고 할 정도로.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현실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경험하다 보니 내 안에 오랫동안 쌓여왔던 상처들을 감당하고 나갈 수가 없더라.


힘든 1-2년 정도의 시간이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왜 나를 그렇게 키우시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고, 두 분의 상처와 한계를 알게 되었다. 머리로 이해가 되니 감정적인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그 과정에서 어머니는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이해가 되고 나니 그전까지 쌓여있던 아픔과 상처와 분노가 해결되는 경험을 했다. 반면에 아버지께선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사과는커녕 본인의 상처와 한계를 인정한 적이 없으시고, 그래서인지 아버지와는 관계가 어색하다.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과 행동들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아버지께서 한 번도 직접 그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으시려고 하니 마음까지 풀리지는 않더라. 그래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상처는 더 이상 내 안에 남아있지는 않다.


감정이 필요하지 않단 것도, 중요하지 않단 것도 아니다. 사랑이 깊어지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이성적인 노력이 필요하단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이성은 연결되어 있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더라. 그렇다면 사랑에서 감정은 어떤 역할을 하고 왜 필요할까? 그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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