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시작되는 곳, '나'

사랑학개론. 4화

by Simon de Cyrene

사랑은 '그 대상을 아끼고, 귀중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힘들다. 이는 많은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나부터, 나만 생각하도록 교육받기 때문이다. 아니, 굳이 그렇게 교육받지 않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나마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가족과 한 공간에 살아도 평균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의 10%도 함께 보내기가 힘든 반면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과 시간을 함께 보내기 때문에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 삶의 어느 부분에선가 우리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런 경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은 평생 한 지점 밖에 없다. 태어난 직후.


물론, 우리가 태어났을 때도 완전히 백지상태라고는 하긴 힘들다. 사람들은 모두 어느 정도 성향과 경향성을 타고나니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경험을 해도 그 경험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다. 똑같은 동네에서 똑같이 힘들게 자랐어도, 심지어 같은 부모를 둔 연년생의 형제, 자매나 남매도 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건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타고난 경향성이 있단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태어난 직후 서로 다른 가정에, 심지어 다른 나라에 입양된 일란성쌍둥이들이 IQ, 지각 추론 능력, 지각 속도, 가치관 등 다양한 면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링크)는 인간은 성장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어떤 성향을 타고났고, 어떤 환경에서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사랑'을 다르게 표현하고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우리가 상대적으로 가장 투명한 상태에서 접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부모님과 가족이다.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는 것도, 사랑을 잘하는 사람은 부모와 성장환경이 좋아서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타고난 성향과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에 따라 힘든 환경에서 성장했어도 그 안에서 부모님이 어떻게 자신을 위해 노력하고 사랑을 주려고 했는지를 이해하고, 사랑을 잘 배울 수도 있다. 반대로 정말 여유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하더라도 부모님의 사랑을 사랑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는 타고난 성향과 경험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 상황을 해석해서 받아들이고, 우리가 '사랑'이란 것을 인식하기 시작할 때는 우리의 성향들 중 어떤 것이 타고난 것이고 어떤 것이 학습된 것인지를 알기 힘들기 때문에 무엇이 어떤 영향을 준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많은 사례와 연구들이 어린 시절에 아낌 받고, 소중하게 여김 받은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받은 상처들로 인해 망가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말 힘든 상황을 잘 극복하고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어린 시절에 받은 상흔이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매우 여유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 사람도 사실은 그 환경으로 인해 오히려 상처를 받고 그 흔적이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그 반대의 예들도 굉장히 많다.


그런 사례들은 아이들의 정서에 영향을 미치는 건 '사회적인 조건'이 아니라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하는 작은 경험들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부모님이 아이를 소중하게 여기고, 소통하면서 아껴준 아이들은 그 사랑으로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잘 성장하여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반면 그런 환경으로 인해 부모와 시간을 거의 못 보내거나 부모님이 그런 환경으로 인해 본인부터 망가진 아이들은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여유가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 아무리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해도 부모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아낌 받기보다는 경주마처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는 식으로 강요받으며 성장하는 아이들은 사랑을 경험할 수가 없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부모 중에 본인이 자녀에게 사랑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 부모들은 더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부모님들은 자신이 아이에게 요구하는 것이 정말 그 아이를 위한, 그 나이대의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아이를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만들고 싶어서 강요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자는 사랑이지만 후자는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아이에게 투영하는 것이고, 후자는 절대 사랑일 수 없다. 정서적 기초도 쌓이지 않은 아이에게 공부하고, 남을 짓밟고 올라가 승리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 왜곡되는 것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에게 온전한 사랑을 주는 부모님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성공'에 대한 획일적인 기준을 가지고 모든 아이들을 그 길을 향해 채찍질한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람들은 다양한 성향을 타고난다. 그리고 아이들을 아끼고,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것은 그러한 '타고난 성향'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정말 사랑할 줄 아는 부모님이라면 아이들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고,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서 평등하게 소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게, 사랑이다.


부모님에게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어도 우리는 다른 관계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가족과 살아도 깨어있는 시간의 10%도 같이 보내지 않는데, 특히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사랑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주지 못하다 보니 학교에는 사랑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 많고, 부모님들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선생님들도 그 관계를 조율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가정 밖에서 사실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


우리 사회에서 '사랑'이 왜곡되는 또 다른 큰 이유는 학교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생물학적 성장이 이뤄지면서 호르몬 작용이 일어나는 나이에 아이들이 사랑의 여러 요소들 중에 본능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반응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사랑이 필요한 존재인데 자신만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소중하게, 아낌 받는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상대를 소유하거나 이용하려 들거나 소중하게 여김 받는 것의 행복함을 모르니 스킨십처럼 자극적인 경험에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게 건강에 엄청난 해를 끼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는 게 당장 자신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미료가 들어간 음식만 먹다 보면 어느새 혀가 그 자극에 익숙해져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지는 못하게 되는 것처럼, 강한 자극에 익숙해지면 진짜 사랑이 주는 행복과 기쁨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사랑이 왜곡되는 것은, 진짜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해 그 맛을 모르는 사람들이 조미료 같은 자극만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랑이 망가지고 왜곡되는 과정은 사랑은 결국 궁극적으로는 가정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하는 직접 경험들의 영향을 받는단 것을 보여준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누군가를 온전히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주는 법을 모르거나 아낌 받고 소중하게 여김 받는 것을 낯설어한다면 그건 당신이 그걸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또 만약 당신이 계속 똑같은 유형의 나쁜 사람에게 끌린다면, 그것도 당신의 삶 어디에선가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들이 당신을 그렇게 만드는 것일 확률이 매우 높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그런 경향성을 바꾸기가 힘들어진다. 이는 사람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그 기초에 강하게 자리 잡고 그 기반 위에 다른 경험들이 쌓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향성이 바뀌기 위해서는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고, 먹고사는 건 힘들며, 세상은 사랑보다 다른 게 더 중요하기 때문에 사랑타령은 하지 말라고 하다 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알아가기보다는 지금 본인이 닥친 현실의 문제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앞의 글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사랑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고, 사랑이 목적과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이 삶의 목표이자 목적이 되어야 한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는커녕 제대로 경험하지도 못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고, 그 첫걸음은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굉장히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하며, 그러하는 데는 감정보다는 이성이 강하게 작용된다. 다음 글에서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 자신을 이해해 나가는 과정을 다루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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