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학개론. 2화
'사랑 얘기를 한다면서 웬 진화론?'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진화론적 사고방식은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남자가 골반과 가슴이 큰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2세를 건강하게 낳고 키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고, 여자가 건장한 체격의 남자를 좋아하는 것은 수렵과 사냥을 잘할 수 있고 가정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식의 얘기들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기 위해 특정한 외적인 특징을 가진 이성을 선호한단 주장에는 모두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이 반영되어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그런 관점들은 하나 같이 '여성은 아이를 낳는 존재이고, 남자는 경제적인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이 얼마나 마초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인가? '남성 중심적인 사고방식'이란 이유로 비판을 하면 오해하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서 미리 밝혀두자면 참고로 나는 남자다. 어느 관점에서 봐도, 외적으로나 성적 취향으로나 남자도 너무 남자다(?).
이런 전제는 잘못되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여자들이 경제활동을 더 활발하게 했던 사례들은 차고도 넘친다. 약 13만 년 전부터 8천 년 전까지 무덤 발굴 기록들을 연구한 UC Davis의 랜디 하스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대형동물 사냥 장비가 출토된 27개의 발굴지에서 11건이 여성의 무덤이었다고 한다. 이는 아주 오랜 옛날에도 여성들이 사냥을 했음을 보여준다. 그뿐인가? 조선 말기에 대한 기록들을 보면 일반인들의 경우 남자들이 술에 찌들어 살아서 여성들이 실질적인 경제활동을 전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상들은 전 세계 곳곳에서 꽤나 자주 있었던 일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진화론이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진화심리학'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이론들도 그대로 사실일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진화론과 진화심리학은 완전히 다르다. 진화론은 실제로 발굴되는 근거들을 바탕으로 이론을 만들어가지만 진화심리학은 아직은 100% 입증이 되지 않은 진화론이 사실인 것을 전제로 '인간의 심리는 이래서 이렇게 된 거야'라는 주장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적인 관점은 과학적일 수 있지만 진화심리학은 냉정하게 얘기해서 '썰'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진화론은 근거와 자료를 가지고 논쟁을 벌일 수 있지만 진화심리학은 논쟁을 벌일 근거와 자료 자체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슨 수로 수 만, 수 억년 전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단 말인가...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진화심리학은 과학보다는 종교적인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종교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에 근거하듯이 진화심리학도 조사하고 연구할 대상이 없는 것에 대한 믿음과 생각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란 말을 하면 그 의견을 신뢰하고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주장하는 남녀관계는 조금만 생각해 봐도 오류와 모순 투성 이임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부분이 대표적으로 그렇다.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는 무조건 건강한 2세를 낳기에 유리한 체형의 여성을 선호해야 하는데 '아름다운 여성'이란 기준은 시대마다, 문화권마다 달라져 왔다. 우리나라만 봐도 10여 년 전에는 무조건 마른 여성을 선호했는데 언젠가부터 '베이글'이란 표현이 나오더니 요즘에는 아예 예쁜 엉덩이를 만들 수 있는 운동들에 대한 영상들이 유튜브에 엄청나게 많아지지 않았나?
이는 역사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고대 중국 4대 미녀들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양귀비에 대해서는 당시 미인의 표준으로 실제로는 풍만한 여성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 중국에서는 18세기에서 21세기 초까지는 풍만한 여성은 유지할 수가 없는 '전족'문화가 있었다. 이건 진화심리학적으로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지금도 마른 것을 넘어서 살이 거의 없는 여성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은 또 어떤가? 남자의 경제력보다 학식이나 사회적 지위를 더 중시했던 사회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의 가장 큰 문제는 '생존'과 '생물학적인 특성'을 획일화시킨다는데 있다. 만약 그런 이론들이 사실이라면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 주위만 보더라도 키가 큰 사람과 작은 사람, 마른 사람과 건장한 사람, 골반이나 가슴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이 랜덤 하게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통계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 선호하는 외모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연구들도 있는데 그러한 연구결과들을 보면 뒤에는 '하지만 문화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라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다.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선호한다고 생각하는 이성의 조건은 '사람은 원래 타고난 게 그래'라는 설명보다는 사회적인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고 해석하는 것이 훨씬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중국에서 여성들에게 전족을 강요하던 문화도, 마른 외모의 여성이나 키 큰 남성을 선호하는 것도 그 시대의 문화와 분위기들이 결합되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될 수 있다. 먹고사는 기본적인 문제가 해결된 집단이나 사회에서 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평판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서 그런 지점들을 중시하게 되는 건 인간의 본성에 비춰봤을 때 자연스러울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주위에서 사람들이 매력이나 이성적 감정을 느끼는 기준이 개인별로 천차만별이라는 걸 너무 쉽게 알 수 있다. 여자들이 모두 다 강해보이고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남자들도 모두 가슴과 골반이 큰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지는 않는다. 키가 작고 아담한 남자나 심지어 배가 조금 나온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있고, 키가 크거나 마른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남자들도 있다.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확률'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확률'은 대부분이 조사된 게 아니라 추측되는 게 대부분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그런 기준들이 제시되는 상황에서는 사실 특정한 특징을 가진 이성을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게 '타고난 것'인지 사회적으로 학습된 것인지도 알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거야'라며 진화심리학적인 관점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경우 본인의 결정과 관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해서. 남자들은 무조건 경제적인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 갖춰야 한다거나 키 크고 '남자다워야 한다'거나 여자들에 대해서는 외모, 몸매를 따지고 어린 사람을 선호하는 게 당연하단 생각들이 대표적인 '진화심리학적' 관점들이다. 남자들의 경우 그러한 관점에서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해서 '원래' 그렇다면서 바람을 피우거나 간통하는 걸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주장들이 자신의 결정과 관점을 정당화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한 것은 본인이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상대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여자는 원래 남자의 경제적인 능력을 보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면 남자들이 바람피우는 것도 원래 그런 것으로 받아들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아이를 많이 낳기 위해서 여러 여성과 잠자리를 하는 게 남자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려면 남자들도 자신의 연인이나 아내가 본인보다 더 경제적 능력이나 생물학적 조건이 우월한 남자를 찾아가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쿨한 사람이 존재할까?
진화심리학은 이처럼 인간이 모든 것을 생존과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존재로 전락시킨다. 젊은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도 '후손을 남기는 것보다 자신의 생존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라는 식으로 정당화시키려고 하는데 사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산업화 시대 이전에 인간은 아예 아이를 갖지 않았어야 하지 않을까? 외부에서 수많은 위협이 있는 상황에서 노약자가 많은 건 얼마나 생존에 불리한 상황인가? 그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후손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라고 주장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현실에서 나타나는 결혼 기피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진화심리학의 가장 큰 맹점은 진화론의 근거로 사용되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에 의하면 사실은 인간은 감정이 없는 방향으로 '진화'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얼마나 감정에 많이 휘둘리고 영향을 받는 존재인가? 인간은 감정은 없고 이성만 있는 것이 훨씬 생존에 유리했을 것이다. 만약 인간이 자연선택 이론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형태로 변이'되었다면 인간은 왜 아직도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그 감정으로 인해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일 뿐 아니라 자신의 생존에 불리한 결정을 하게 만드는 '감정'을 아직도 가지고 있을까? 모든 게 생존과 번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인간은 섹스도 다른 동물들처럼 짧고 간단하게 끝내면 되는데 왜 인간은 직접적인 삽입과 사정만이 아닌 다른 스킨십을 하는 형태로 '진화'되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진짜 사랑은 없어'라거나 사랑을 본인 방식대로 왜곡하는 것은 진화심리학적인 사고방식의 영향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그 전제를 깨지 않는 이상 '사랑'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시리즈에서 내가 앞으로 써 나가게 될 내용에 동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만약 본인이 사랑에 대해서 고집 혹은 주관을 가지고 있는 게 있다면 그 생각을 의심하면서 이 시리즈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내 생각에 반대하고 비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러시길 권장하고 싶다. 그러다 보면 이 시리즈 끝에는 당신도, 나도 사랑의 본질에 더 가까워져 있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