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말 '사랑'해 봤나요?

사랑학개론. 1화

by Simon de Cyrene

'사랑'이란 말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시대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인 회사들도 고객님을 사랑할 정도가 아닌가? 다른 문화권에서 '사랑'이란 표현을 이렇게 남용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나라는 없다.


이렇듯 '사랑'이란 표현을 쉽게, 어쩌면 함부로 사용하다 보니 그 의미도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것을 넘어서 대부분 사람들이 '사랑'이란 표현으로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부모들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자신 마음대로 통제하고 조정하려는 시도를 정당화시켜왔고, 연인관계에서는 자신의 성적 욕구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랑'이란 표현이 남용되기도 한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사랑'을 제멋대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전에서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정의된다. 생각해보자. 자신이 정말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아이를 때릴 수 있을까? 아이들을 때리는 것은 쉬운 길이다. 아이가 모르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해주는 건 힘들고, 에너지가 많이 들기 때문에 체벌을 통해 아이들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놓음으로써 같은 일을 못하도록 하는 게 과연 그 아이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일까?


내가 잘못을 하면 어머니는 본인의 분을 이기지 못하시고 소리를 지르시거나 때로는 내 머리를 쥐어 잡고 때리고는 하셨다. 그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어머니에게 맞을 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게, 그림처럼 기억난다. 옆에서 그렇게 맞는 나를 보며 두려움에 떨던 우리 집 강아지의 눈빛까지 전부 다. 아버지는 세워놓고 종아리를 때리셨는데, 마찬가지로 아버지 골프채로 종아리에 멍이 들게 맞았던 일은 기억나지만 무엇 때문에 그랬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년도 더 지난 일이다.


이처럼 체벌은 그 일에 대한 반성과 기억을 덮어버리고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도 체벌이 아이를 위한 것일까? 그것보다는 아이가 말을 못 알아들어도 앉혀놓고 지겨울 정도로 설명하고, 설득하고, 체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 그 아이를 위하는 길이다.


예를 들면 나는 중학교 시절에 농구에 빠져서 농구선수가 되겠다고 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내게 '그러면 너는 일반 학교 다닐 필요가 없으니까 1달 동안 학교 가지 말고 체력 훈련해라. 그다음에 시험을 보자'라고 하셨다. 나는 처음에 학교에 가지 않아 좋았지만 체력 훈련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틀 정도 달리기를 한 후에는 내가 알아서 농구선수는 되고 싶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아버지께서 '네가 제정신이냐!'라며 또 종아리를 때리셨다면, 그 일에 대해서 내 안에 원망만 남아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겐 그때의 기억이 '내가 참 철이 없었어'로 남아있다.


'사랑한다면 00 해야지'라며 모텔로 연인을 이끄는 사람들은 어떤가? 그게 정말 사랑인가? 그게 정말 상대를 아끼고 귀중하게 여기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상대에게 '나를 아끼고 귀중하게 여겨라'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게 어떻게 사랑일 수 있을까? 그건 상대를 내 것으로 소유하고, 상대를 이용해서 자신의 욕구와 욕정을 해결하려는 것이지 사랑이 아니다. 그건 사랑일 수 없다.


사랑, 연애와 결혼에 대한 글을 5년 넘게 브런치에서 써 왔다. 그렇게 오랫동안,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를 다뤄왔지만 결론은 단순하고 뻔하다. 사랑은 '그 대상을 아끼고, 귀중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 시리즈의 첫 글을 사랑과 체벌, 사랑과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아이들은 대부분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배우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르고,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제대로 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그리고 어렸을 때 경험하지 못한 사랑을 어느 정도 나이가 된 이후에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관계는 사실 이성과의 사랑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약육강식의 원리가 적용되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누군가를 온전히, 자신의 벽을 허물어 가면서까지 아끼고 귀중하게,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경험은 이성과의 사랑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당신은 동성애는 인정하지 않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에 대한 나의 생각도 다룰 것이다.


사랑에 대한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한 건 사실 스킨십에 대해서, 더 정확히는 섹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여사친들과 대화를 해보면 이게 대다수는 유튜브나 방송에서 떠들고 다니는 것과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옛날 사람 취급을 받거나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가진 것처럼 취급받는 분위기가 있는 듯해서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갖고 있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을 5년 넘게 써오다 보니 그 사이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성적인 측면에 대해서 더 오픈하게 변하고 있는 느낌도 들더라. 그것의 장점과 단점도 분명히 있는 듯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소위 말하는 '보수적인 의견'들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5년 넘게 글을 써오면서 이 시리즈까지 쓰게 된 것은 '진짜 사랑'의 문제가 우리의 살고 죽는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치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정말 그런가? 물론 돈을 버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 돈을 많이 벌어서 나쁠 건 없다. 하지만 돈만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면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수준의 부를 축적한 부자들이 우울증에 걸리거나 마약에 중독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다는 것은 인간은 돈 이상의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대한 이 시리즈를 쓰기로 했다. 진짜 사랑은 우리를 살고 싶게, 살 만하게 만들어 주고 사랑은 인간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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