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필요조건, 대화와 노력

사랑학개론. 7화

by Simon de Cyrene

감정 자체가 사랑은 아니지만 감정은 사랑의 필요조건이다. 이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본능적으로 사람을 경계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설레임이나 두근거림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상대에게 자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누군가에게 호감과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고 상대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면 상대를 갖기 위해서라도 본능적으로 상대에게 신뢰를 살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지 않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상대가 그만큼 좋고, 갖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항상 들고 있는 무장을 해제하는 것이다.


상대에게 호감이 있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있을 때, 아니 상호 간에 그런 마음을 확인하고 서로를 알아갈 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때는 두 사람이 애초에 잘 모르기 때문에 모든 모습들이 새롭기 때문에 썸이나 초기단계에는 작은 것들도 크게 느껴지게 된다. 오랜 기간을 친구로 지냈어도 연인이 되면 새롭게 발견하는 모습들이 있기 때문에 연애 초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 상대를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감정에 취해 다른 감각들이 마비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분석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마비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이 시기에 감정이 불타오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태의 맹점이 있다. 썸과 연애 초기에 두 사람은 상대를 내 것으로 가지고 있고 싶은 마음이 엄청나게 큰 반면 두 사람이 다른 관계보다 훨씬 친밀하게 지낸 기간은 매우 짧다 보니 상호 간의 신뢰가 깊지는 않다 보니 연인은 연애 초기에 상대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다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는 상대에게 자신의 허물이나 부족한 면을 보여주면 상대가 떠나갈 수 있단 두려움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연애 초기에 상대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건 그 때문이다. 상대를 내 것으로 가지고 있고 싶기 때문에.


문제는 그렇게 상대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패턴으로는 두 사람의 관계와 이해와 신뢰가 깊어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연락하고, 주 2-3회씩 보다 보면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면들이 고갈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람은 참으로 간사한 존재여서 상대의 새로운 모습을 통해 새로운 자극과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상대에 대한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마치 아이들이 장난감을 처음 선물 받았을 때는 너무 행복해 어찌할 줄 모르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장난감에 흥미를 잃는 것처럼.


아이들만 그런가?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남자들이 첫 차에 더 애착을 가지고 병적으로 아끼다 시간이 지나면 그 차는 물론이고 새 차를 사도 그 애착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여자들이 가지고 싶었던 백이나 옷을 처음 갖게 되었을 때와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애정이 어느 정도는 사그라드는 것도 무엇인가를 갖게 되면 그것에서 오는 새로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항상 새로운 자극에 더 빨리, 크게, 많이 반응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반전 매력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마냥 착한 사람보다는 나쁜 남자나 여자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예상하지 못한 지점들에서 '새로움'이 자극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너무 착하기만 하거나 모든 게 예측 가능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인 것은 알겠지만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항상 자극적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서로의 좋은 면들은 충분히 보여준, 더 이상 보여줄 새로운 모습도, 같이 할 새로운 데이트와 경험도 없어진 연인은 어떻게 서로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두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부족한 면들을 보여주기 시작해야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그때야 비로소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고 깊어지기 시작할 수 있다.


적지 않은 연인들은 이 고비를 넘기지 못한다. 아니, 상당수는 넘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서로에게 익숙해져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해서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에서 습관적으로 만나고, 데이트하고, 스킨십이나 하고 헤어지는 연인들이 꽤나 많은 것은 그들이 상대를 소유하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항상 거기에서 멈추는 사람들은 연애와 결혼 다 의미 없다고, 또 누군가를 만난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건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나의 모든 것을 단 번에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해도 어느 정도는 외로운 게 사실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게 진실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본인이 그 수준의 연애만 해봤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그 정도 상태에서, 물리적으로 짧지만은 않은 시간 동안 연애를 했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결혼 후에 예상하지 못했던 상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런 모습들은 대부분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좋지 않은 부분들을 감추기 때문에. 사람들이 4계절은 만나 보고 결혼해야 한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남의 기간이 반드시 상대를 더 잘 알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만남의 기간보다 이에 대해서는 이 시리즈에서 결혼에 대한 내용을 다룰 때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두 사람의 만남의 기간보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만났냐?'가 더 중요하다. 10년을 만났어도 10년 동안 주 1회 만나서 한 주 동안 있었던 이들을 드라이하게 공유하고, 맛있는 것을 먹거나 여행을 갔다가 헤어진 커플보다는 6개월 동안 그런 일상적인 데이트와 함께 속 깊은 얘기와 자신들의 과거, 생각, 가치관을 공유한 사람들이 서로를 더 깊게 알 것이다.


상대와의 관계와 감정이 호감과 좋아하는, 서로를 소유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랑으로 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부족한 모습들을 솔직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건 자신 안에 있는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부끄러운 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이야기를 분위기 잡고 고해성사하듯 말해야 한단 것이 아니다. 서로의 부족한 모습을 행동으로 상대가 느낄 수 있도록 일부로 보여주라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생리현상을 트는 식의 경험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모습은 아마 본인이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해도 상대가 발견하고 느끼게 된다. 두 사람이 다양한 대화를 하다 보면 그런 지점들이 자연스럽게 말해야 되는 시점이 올 때가 있는데 상대와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그럴 시점에 뭔가를 숨기기 위해 주제를 돌리거나 회피하기보다는 상대에게 솔직해질 필요가 있단 것이다. 이는 그걸 회피하는 것을 상대가 느끼는 순간 상대도 그걸 느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로에 대한 신뢰에 미세한 금이 가기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금 하나로 관계가 깨지지는 않지만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그 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서로의 깊은 부분들까지 자연스럽고 새롭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익숙하고 편해져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얘기를 솔직하고 편하게 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하고, 편하면서 신뢰가 형성되었다면 다양한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이는 일단 대화를 많이 해야 그 안에서 자신의 여러 모습들을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경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서 대화가 중요한 건, 우리는 사실 누군가를 대화로 가장 많이 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경험과 과거를 오롯이 대화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이는 반대로 말하면 두 사람이 대화가 많지 않으면 서로를 그만큼 모를 수밖에 없단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에서 '말하기'보다도 '듣기'에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는 같은 말도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다른 의미일 수도 있고, 사람들은 같은 의미의 말도 다르게 표현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들을 때는 그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듣고, 묻고, 공감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은 사람들은 그런 노력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말을 나의 필터로 해석함으로써 상대의 마음, 경험과 의도를 곡해하거나 오해하게 될 수 있다.


누군가의 새로운 면을 더 깊게 알아가기 위해서는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서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화를 잘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감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과 대화와 노력을 해야 하는 건 그래야 두 사람의 관계가 소유관계에서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중하게 여기는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화가 없고, 노력하지 않는 연인은 서로 상대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하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사랑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것은 사랑은 어느 누구도, 무엇도 줄 수 없는 것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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