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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ug 30. 2022

세금을 내야 할 이유

돈의 원리. 5화

세금 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 그래도 월급이 통장을 스쳐 카드회사의 통장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현실이 짜증 나는데 국가가 평소에 내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매달, 입금되는 돈마다 따박따박 국가의 몫이라며 가져간단 말인가?'라는 생각을 들게 하니 세금을 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이 높기가 힘든 가장 큰 원인은 사실 세금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이런 마음과 생각들 때문이다.


부족 국가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던 고려는 지금의 기준으로는 국가보다는 '공동체 연합'에 가까운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조선이 그나마 중앙집권적인 성격을 가진 근대국가의 형태에 가깝긴 했지만 당시에도 중앙정부의 정책이나 지침이 지방에 전달되고 실행되는 데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조선시대에 '암행어사'가 있었단 사실은 그만큼 지방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했단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의 국가는 다르다. 사실 형식적으로 근대국가의 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기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인하기도 힘들고, 소소한 부정부패들은 포착하기도 힘들었지만 인터넷과 각종 전산망이 발달된 후에는 국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이 정보공개를 청구해야 할 정도로 일반 국민에게 공개되지 않는 정보들도 많이 가지고 있을 정도로 그 영향력과 규모가 인류 역사 어느 때보다 커졌다. 여기에 더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이 긴밀하게 연결되면서 국가와 정부는 자본주의 시장 '안'에서의 생산자로서의 역할은 하지 않지만 그 시장을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국가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어디에나 존재하게 되었다.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숨은 쉬지만 공기를 항상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국가의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정부는 우리 삶의 영역 곳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공무원을 동사무소에 가야 한 번씩 보고,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뉴스에서만 보지만 대부분 공무원들은 우리 삶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들을 하고 있다.


하루 일과를 생각해 보자. 일단 우리가 살고 있는 집부터가 정부의 손길(?)이 닿아있다. 만약 정부가 건설사들을 감시하고, 안전진단을 받을 것을 강제하지 않으면 건설사들 중에는 당장의 수익을 위해서 모든 면에서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그 결과 부실공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낮지 않다. 정부는 안전한 건축물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건축과정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한다. 그리고 건축물이 들어선 후에는 시설물 점검과 안전진단을 한다. 우리가 일하는 공간, 밥을 사 먹는 공간들도 마찬가지다.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 후 우리는 도로에 나서게 되는데, 도로 역시 정부가 계획하여 만들었고 그 사후관리도 정부에서 담당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는 쓸 수 있는 도로도 과도하게 보수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굉장히 예민하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는 듯하다. 그렇게 걸어서 지하철을 사용한다면, 정부는 지하철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에도 개입한다. 정부는 버스 노선도 관리하고, 대중교통 비용도 최대한 낮게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역할도 한다.


조금 더 큰 그림을 보자면 정부는 경제적인 가치만을 따져서 지역개발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도록 각 지역을 관리한다. 개발제한구역에 토지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그것이 자신의 경제적인 이익에 반하기 때문에 분노하고, 실제로 개발제한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거나 의미가 없어진 지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정부가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경쟁과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분위기상 거주지역에 유흥시설이 들어서는 등의 일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 이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정부는 결정적으로 금리와 부동산 정책을 통해 시장을 움직이는 역할도 한다. 정부가 시장 안에서 플레이어로 활동하진 않지만 그 시장 안에서의 움직임을 바꿀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장이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들이 엇나갈 때도 있지만 위에서 전체적인 시스템을 모니터링하며 물가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조절해 주는 존재가 없다면 시장은 엉망진창이 되고, 노예제도가 생겨났을 것이다.


국가가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가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과 역할은 구성원의 보호라고 주장하는 로버트 노직의 주장에 나는 동의한다. 국가는 우리의 신체적 안전은 물론이고 사회적, 경제적 안전까지 책임지는 존재다. 그리고 우리가 내는 세금은 사실 그런 안전을 보장받는 대가로 국가에 지불하는 비용이다.


물론, 국가가 완벽하지는 않다. 국가의 개입은 그 의사결정권자들의 사적인 욕심으로 인해 잘못된 방향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일부 공무원들의 잘못으로 인해 정의에 반하는 일들이 발생하기도 한다 (앞의 글-링크). 하지만 또 반대로 우리가 그런 것들에 대해 분노하고,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무원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유지되기 때문에 잘못을 하면 그 신분으로 인해 가중처벌을 받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업무수행 수준에 큰 불만이 없다. 그에 대한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은 다른 나라 공무원들이 업무를 어떻게 처리하는 지를 경험하면 더 이상 불만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전 세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 일을 굉장히 잘하는 편이다. 아니, 많은 경우에는 다른 나라 사기업들보다도 일을 잘하는 편이다. 어떤 분들은 '내가 내는 세금으로 먹고살면서 이런 식으로 일을 하냐?'라고 따지기도 하는데, 그런 분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지만 본인이 내는 세금이 공무원 한 사람의 임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001%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국가는 공기와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본인이 낸 세금 정도의 혜택은 이미 일상에서 누리고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징수하는 세금은 이와 같은 국가의 기능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측면도 있지만 사실 국가가 만들어 낸 경제적 가치를 회수하는 성격도 가진다. 무슨 얘기냐고? 이전 글에서 국가는 시장 안에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냐고? 맞다. 국가는 직접, 적극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국가의 존재가 공기와 같은 오늘날에는 국가의 존재 자체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가 농사를 짓는다고 치자. 우리가 아무 도구도 없이 땅을 파서 씨앗을 심어서 얼마나 많은 농작물을 기르고 수확할 수 있을까? 거의 농작물을 수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서 농작물을 수확했다고 생각해보자. 농사를 짓는 땅의 면적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는 맨손으로 농사를 지었을 때보다 최소 수 십배 이상의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농사는 내가 지은 것인가? 아니면 그 도구의 힘으로 지은 것인가? 나의 힘으로 지은 것도 맞지만 그 도구가 없었다면 그 정도 수확물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도구의 역할이 작았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의 현실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국가가 갖춘 시스템에서, 국가가 공기처럼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벌어들이는 돈과 만들어 내는 경제적 가치는 그 시스템을 이용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정부의 규제가 경제적 이익을 해친다고 하지만 그런 규제들을 이용해서, 그 덕분에 돈을 버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리고 정부가 상업지구를 설정하고, 주거지역에 일정 수준의 상업활동을 가능하도록 제한하고 보호해주기 때문에 그 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만약 정부가 그런 제한을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규모의 경제와 무한경쟁에 치여서 돈을 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더군다나 전 세계에서 정부가 가장 많이 경제영역에 개입하는 편이다. 그 개입으로 인해 비효율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역으로 정부의 개입을 활용하거나 이용해서 돈을 더 버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모든 경제적 가치를 다 창출했잖아!'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도구를 가지고 농사를 져도 우리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수확물이 많지 않을 것처럼, 우리가 시장 안에서 창출해 내는 경제적 가치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힘과 노력에 의해 창출된다. 또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우리가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을 올리기 전까지는 세금을 적게 거두거나 아예 거두지 않는다. 정부가 그 정도 수준으로만 세금을 징수하는 또 다른 이유는 농사와 비유하자면 우리가 도구가 없이도 일정 수준의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시스템이 없이도 누구나 어느 정도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에 시스템 없이 개인도 창출할 수 있는 수준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 개인의 노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경제적 가치가, 수익이 일정 수준 이상이 되기 시작하면 이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어떤 시스템도 없이 하루에 일해서 생산할 수 있는 가치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사람들이 사업을 하다 어느 시점엔가는 결국 사람을 뽑고 법인을 세우는 것은 시스템을 갖추면 비용을 2, 3배 들였을 때 돈을 2, 3배가 아니라 잘하면 수 십배도 벌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이 만드는 그 시스템은 당연히 국가가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회, 경제 체제(시스템)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 이는 수입이 그만큼 증가하는 분량에는 국가의 시스템이 간접적으로 생산해 내는 경제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진세는 그런 맥락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개인이나 법인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어떤 형태로든 사회, 경제 시스템을 사용해야만 하는데 수익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그 시스템을 더 많이 이용했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시스템이 창출해 낸 경제적 가치의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유지 및 관리하는 국가가 그 비용을 거둬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국가가 뭐 그렇게 좋은 시스템을 만들었다고!'라고 반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부족한 도구라고 해도 우리가 그 덕에 더 많은 농산물을 수확했다면 그건 도구의 혜택을 본 것이 아닌가? 그리고 국가의 규제와 통제로 인해 자신의 수익을 극대화하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그런 규제와 통제는 사실 사회를 안정시키고 시스템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데 필요한 장치다. 사회, 경제는 무제한적으로 고속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사회나 어느 정도 성장을 이루고 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그렇게 되면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부재가 선한 것일까. 아니다. 인간은 탐욕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러한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경제적 가치를 계속, 많이 창출한다면 언젠가는 그 재산을 차지하려는 자에 의해 자신의 신변에 물리적인 해를 입을 확률이 매우 높다.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붕괴된 남미 국가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국가 시스템의 존재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국가가 하는 이러한 기능과 역할을 고려했을 때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은 분명 개선될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의 수고가 폄하되는 것은 우리가 공무원들에 대한 소식을 대부분 뉴스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통해서 접하기 때문인데 사실 뉴스가 뉴스가 되는 것은 그 사실이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하다 못해 과거 우리나라와 공무원들의 임금 수준이 너무 낮은 국가들처럼 공무원의 임금 수준이 너무 낮으면 그만큼 부정부패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의 임금은 일정 수준으로는 보장해 줄 필요가 있다. (조선 말기에도 그런 현상이 발생했고, 북한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상이 되어있다.)


국가의 존재가 공기인 것처럼 대부분 공무원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에 필요한 역할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 '요즘에 사회적 책임과 애국심 때문에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냐? 본인들 이익과 안정을 위해서 하는 거지'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내심의 의사는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수는 없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회사가 잘 되는 건 상관없고 본인 월급만 많이 받고 싶은 회사원은 임금을 적게 받아야 하지 않을까? 임금 수준은 '현실에서 어떤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 마음이 기준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 들어와 있지 않고,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효용을 피부로 직접 느끼지 못하는 곳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가능하면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요즘처럼 시장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기는커녕 먹고살기도 버겁고 불안한 시절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임금이 인상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가족이나 건강보다도 물질을 더 중요시하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관련기사 링크).  


세금을 내고 싶지 않은 마음, 이해한다. 나 역시 그러니까. 하지만 우리가 책임감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환경에 대한 적절한 비용은 지불할 줄 알아야 한다. 잘못된 부분에 대한 지적은 책임을 다한 후에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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