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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Oct 04. 2022

'돈의 원리'를 거슬러야 할 때

돈의 원리. 12화

앞의 글에서 말한 '사람에 대한 이해'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의 욕구와 욕망에 대한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욕구와 욕망을 해결하기 위해 지갑을 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돈을 쓰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배고 고프면 식욕 때문에 음식을 사 먹기 위해 돈을 쓰고, 춥거나 자신의 몸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가리고 싶을 때 옷을 사며, 더 편안한 환경에서 살고 싶을 때 집을 산다.  


여기까지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들을 충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의 욕구와 욕망은 의식주가 해결되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누리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러한 욕구와 욕망은 좋게 말하면 '사회적인 요소'의 작용을 통해, 적나라하게 말하면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구현이 된다. 


사람들은 왜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가? 대부분 사람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자신이 갖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명품을 정말로 순수하게 품질과 필요 때문에 사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의 한정판에 열광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람들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이유로 지갑을 열어 돈을 쓴다. 그것도 결국은 다른 사람들을 의식해서, 남은 가질 수 없는 것을 본인은 가지고 싶은 욕구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이다. 


그런 욕구와 욕망의 가장 큰 문제는 끝이 없다는 데 있다. 한정판을 산 사람들은 또 다른 한정판에 열광하고, 명품을 하나 가진 사람은 다른 명품을 또 가지고 싶어 한다. 365일 다른 옷을 입거나 다른 가방을 들어도 1년에 한 번도 입거나 들지 않을 옷이나 가방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행보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그 욕구와 욕망 자체에 중독되었다 것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번 물어봐야 한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까? 아니다. 


돈이 행복을 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과 물질이 필요한 수준이 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아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지만 그게 사람은 떡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나?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이상의 돈과 물질이 필요하다. 아니, 사실 돈과 물질은 많을수록 인생을 편하게 만들어주고 자유롭게 해주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돈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은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돈을 마땅히 쓰고 싶은 곳도, 쓸 곳도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 쓸 줄도 모르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은 돈에 모든 시선이 쏠리다 보니 돈에 중독이 되어 다른 것은 보지도, 누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돈을 많이 번 사람들만 보이는 패턴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돈을 어느 정도까지, 왜 벌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 없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은 돈 자체에 중독되어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일정한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입증해야 할 명제가 아니라 수많은 연구들을 통해 이미 입증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 돈이 주는 행복 이상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돈의 원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복잡하고 어렵게 설명해 왔지만 '돈의 원리'는 결국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다. 돈은 인간의 욕구와 욕망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곧 돈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돈의 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유욕과 가지려는 욕망을 넘어서야 한단 것을 의미한다. 그것을 넘어선 행복은 '사랑' 밖에 없다. 이성 간의 사랑도 그 범위에 포함되겠지만 여기에서의 사랑은 그 보다 넓은 의미의 사랑을 의미하고, 그 정의를 최대한 확대하고 확장하면 사랑은 '사람과 관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들을 모으고, 모아 보면 그건 결국 '사회'로 만들어진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만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는 엄청난 착각이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라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신은 충분히 행복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리 앙뜨와네뜨가 이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게 정설이기 때문에 마리 앙뜨와네뜨를 직접 예시로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자신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배가 부르지만 불행한 사람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이라면 그 사람은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비유가 와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설명해보자. 평소에 놀아줄 친구가 없는 회사 상사가 '회사 아유회'를 주말에 갈 것을 강요해서 야유회에 가면 그 상사는 정말, 진심으로 행복할까? 당장은 그래 보일 수도 있지만 야유회 후에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사들이 그런 자리를 자주 만들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얼마나 불행한 지를 보여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돈을 아무리 많이 가졌다고 해도 자신 옆에 믿고, 신뢰할 수 있거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없다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적대적이라면 그 사람은 절대로 완전한 행복을 누릴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정 수준 이상의 돈을 벌고 나면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와 욕망, 소유욕을 넘어서 좋은 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 그 '관계'는 작게는 사적인 관계를 의미하지만 넓게는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 구성원들 중 90%가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되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회에서 돈이 많은 사람은 90%가 꿈과 희망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더 행복할 수밖에 없다. 이는 돈을 벌어들이는 원리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의 기본적인 의식주가 해결된다는 것은 그들이 돈을 쓴다는 것이고, 사람들이 돈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이 돈을 또 벌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원리를 아는 사람들은 자신이 평생 먹고살 수 있는 수준의 돈을 번 후에는 자문을 하거나 재단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돈이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러한 모습들은 우리나라보다 미국이나 유럽에 더 많이 보였는데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그런 사례들이 생기는 듯한데, 그 가장 오래된 사례는 [차범근 축구교실]이라 할 수 있다. 차범근 축구교실은 저렴한 가격에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사실 차범근 축구교실의 가장 큰 수혜자는 차범근 전 감독일 것이다. 자신이 만든 학교에서 뛰어놀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보며 그가 얼마나 행복할지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느 순간엔가는 '돈의 원리'를 역행해야 할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때때로 남을 위해서, 자선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돈의 원리를, 자신의 본능적인 욕구와 욕망에 반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이는 그런 결정들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설명하기가 힘든데, 그건 아마도 인간은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고, 환경과 분위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극악무도한 마피아나 마약상도 자신의 가족에게는 사랑받고 싶어 하는 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건 인간이 얼마나 사랑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잘 보여준다.  


'복지국가'로 불리는 나라들이 세금을 많이 부과해도 그 나라 국민들이 그에 대한 불만을 적극적으로 표출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돈을 싫어하거나 돈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건 그들이 돈도 좋고 필요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에 공감하고 동의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들의 예는 우리의 관점에 따라 같은 돈과 사회, 개인의 문제도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 나라의 세금제도와 세금이 쓰이는 곳, 방향, 복지제도는 그 사회가 어느 정도로 성숙했는지를 보여준다. 사실 돈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는 여전히 '성숙한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졸부들이 가장 돈 자랑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돈을 가장 중요시하는 사회는 잘해야 졸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조금 더 성숙한 사회는 돈이 아닌 사람과 관련된 다른 가치들을 더 위에 두고 돈의 원리를 거슬러서 더 상위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사용한다. 


그런 점에서 '선진국'으로 분류될 수 있는 17개국에서 이뤄진  "당신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What Makes Life Meaningful?)"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14개국이 1순위로 가족을 꼽은 반면 오직 우리나라만 1순위를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꼽은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물질만능주의적인 가치관을 많이 갖고 있는 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비춰봤을 때 우리나라는 돈의 원리를 거슬러 갈 필요가 있는 상황에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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