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해야만 할까?

사랑학개론. 16화

by Simon de Cyrene

연애, 사랑, 결혼에 대한 글들을 5년 반 동안 써오면서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할까?'였다. 이건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의 고민이기도 했지만 결혼하지 못한, 안 한 것이 아니라 못한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지만 결론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로 내렸다.


제도적인, 사회적인 결혼제도 자체가 필요하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관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정도가 나의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결혼이란 제도 밖에서 그런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가능할 수도 있다. 가능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이 질문을 해보고 싶다. '당신은 제도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가 엮여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지키고 100% 당신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동일시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는가?'


아직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람들과의 관계가 넓어지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누군가를 신뢰하기보다는 불신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높다. 이는 사랑하는, 사랑했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연애나 결혼 초기에는 상대에게 잘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관계가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한다고 판단하면 언젠가는 등을 돌리게 될 수 있다.


혹자는 그래도 상관없다며 본인은 연애만 할 것이라고 한다. 좋다. 그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닫게 되는 건 나이가 들수록 일과 관계가 많아지다 보니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소요되는 에너지가 상당하단 것이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취업을 준비하는 정도의 현실에서는 연애에 에너지를 쏟는 게 그렇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취업을 해서도 당장 주어지는 일들만 하면 되기 때문에 연애에 에너지를 쏟는 게 괜찮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적 책임은 물론이고 가족에 대해서도 책임을 느끼게 되는 지점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세상은 참으로 냉혹하여서 누구도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단 것을 아는 것을 넘어 느끼게 되면서 그런 현실에 쏟는 에너지가 늘어나다 보니 연애를 시작하는데 에너지를 쏟기가 힘들어지더라.


그렇게 에너지를 쏟게 되는 게 부담스러워지는 또 다른 이유는 누군가를 신뢰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는 잘 맞는 괜찮은 사람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축적되다 보면 사람을 신뢰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나를 대하는 상대들도 마찬가지다. 나를 신뢰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할수록 힘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어느 정도 이상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불확실한 연애'보다는 '확실한 일'에 무게를 두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연애를 하기도 쉽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생활 반경이 좁아져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힘든 것도 연애하기가 힘들게 하지만, 설사 다양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환경에 있더라도 나를 이용하지 않고 존중해 줄 수 있는,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힘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지 않고 연애만 하겠다'는 말은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실현 가능하고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혼자 살아도 행복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든 사람이 반드시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인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혼자 사는 것보다 맞춰지지 않고, 대화가 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혼자 사는 게 확실히 낫겠더라. 혼자 사는 건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아닌, 차악은 보장해 줄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나는 혼자 사는 게 최선이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그건 어쩌면 그 사람이 본인과 정말 잘 맞는, 본인이 혼자일 때보다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만나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마치 본인이 다른 나라에 가보지도 않고 '우리나라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노총각'이라 불려도 할 말이 없는 나이가 되어 주위에 있는 비슷한 연령대의 남녀 싱글들을 보면 본인은 혼자 사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이 티가 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본다. 내 SNS 친구들 중에 스토리와 피드에 자신의 일상 사진을 가장 많이 올리는 건 20대가 아니라 나보다 나이 많은 싱글 누나들인 것을 보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취미로 시간의 공백을 채우는 지인들을 보면서, 자신이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괴롭히는지는 모르는 상태로 일에 중독되어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외로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 공백을 두지 않는 지를 본다.


내 나이 정도의 싱글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솔직한 대화를 할 때 '내 옆에 항상 있는 가장 친한 친구가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빈틈을 보이기 싫기도 하고, 나이 먹고 힘들고 외롭다고 하는 게 민폐라고 생각해서 괜찮은 척, 외롭지 않은 척을 하지만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끼리 모이면 대부분 사람들은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이 필요하긴 해, 그런 사람이 있으면 덜 외롭고 더 행복할 것 같아'라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실을 부정하며 '난 괜찮아'를 외치는 것보단 본인의 그런 연약한 부분을 인정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나이 든 싱글들이 하는 말 중에 가장 재미있는 지점은 '연애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해'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단 것이다. 본인이 싱글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항상 연애를, 사랑을 하고 싶어 한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면서 사랑이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비혼'이라는 표현이 생기고, 결혼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각종 연애 관련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항상 많은 주목을 받는 건 인간이 얼마나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결혼'이란 제도 속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결혼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은 관계에 꽤나 큰 차이를 가져온다. 결혼을 해서 사회적, 법적 관계로 구속된 두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헤어지기가 힘들다. 이는 그렇게 구속된 상태에서는 걸려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결혼한 사람들은 반드시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을 위해서 조금 더 참고, 노력하게 되어있다. 본인만 그렇게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그렇게 구속하기 때문에 두 사람이 모두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결혼제도는 두 사람이 노력하고 맞춰가게 만들어 줄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이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하다는 것을 수많은 간접경험을 통해서 안다. 30대 중반까지는 결혼한 지인들의 90%는 이혼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결혼을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더 지나니 다른 세상이 보이더라. 그렇게 이혼을 얘기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이제야 조금 맞춰지고 서로가 편한 것 같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혼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7-8년을 보낸 후에 '결혼하기 잘했다'라고 하더라. 그들이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 않았어도 그 시간을 참고 버틸 수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결혼 자체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결혼을 함으로 인해 잃게 되는 것도 당연히 있다. 하지만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상대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최악의 결혼만 아니라면 결혼을 함으로 인해 본인이 누리게 되는 것이 있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또 한 번 물어보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감옥에 10년 들어가 있다가 나오면 100억을 준다고 해보자, 당신은 감옥에서 10년을 보내겠는가? 아니, 1,000억을 준다고 하면 어떨까? 감옥에서 5년만 지내도 된다고 한다면? 처음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금액이 올라가고, 거기에 기간도 짧아지면 기꺼이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잃는 게 있지만, 얻는 것도 있기 때문에.


결혼도 마찬가지다. 잃는 게 있지만, 얻는 것도 있다. 물론, 그건 본인이 얼마나 가정을 꾸릴 준비가 되어있고, 누구와 결혼하는지에 따라 다르다. 결혼을 결정할 때는 선택을 '잘'해야 한다. 이는 결혼은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하는 투자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 위험이나 리스크가 없다면 얼마나 좋겠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갖게 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본인이 자신을 어느 정도는 안다는 확신이 있고, 상대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다면 결혼이라는 리스크 테이킹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지인들을 보면 잘못된 선택, 선택에서 실수를 한 사람들은 분명 싱글들보다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서로 어느 정도 이상 맞춰갈 수 있게 된, 좋은 사람을 만난 사람들의 삶은 싱글들의 삶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평안하며 행복하더라.


최악으로 가지 않기 위해 차악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최선을 꿈꾸며 모험을 할 것인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지만, 난 아직은 최선을 꿈꾸고 싶다. 한 번 사는 인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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