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7
돈은 중요하다. 나도 돈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니 돈에 대한 글을 썼고, 운이 좋게도 그 글들이 모여 책으로까지 나왔는데 내가 어떻게 돈의 중요성을 모르겠나?
돈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은 우리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해 주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수십 억 짜리 집에 살고, 자가용 비행기를 갖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편안한 마음으로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돈을 번다.
그렇다 보니 돈은 연애와 결혼에서도 꽤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연애를 할 때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으면 두 사람은 조금 더 많은 것을 함께 경험하고,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돈이 많아서 나쁠 것은 없다. 결혼의 문제로 가면 돈은 더 중요한 고려요소가 될 수밖에 없는데, 이는 결혼을 한다는 건 결국 두 사람이 함께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서 '평생' 살겠다는 약속을 사회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애를 할 때도 반드시 돈이 많이 있어야 할까? 돈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사실 연애에 있어서 돈은 많은 것이 방해가 되기도 한다. 사실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연애를 하면 싸울 일도 많지 않고, 서로 힘들 일도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돈으로 무엇인가를 하고, 사는 과정에는 '사람'이 끼어들 틈이 줄어들 수 있다. 마음을 써야 하는 것을 돈으로 대체할 수 있고, 돈으로 서로의 소유욕을 채워줌으로써 상대에게 이타적일 필요가 없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데이트만 하는 관계를 생각해 보자. 두 사람은 돈으로 무엇인가를 하면서 그 활동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그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돈이 많으면 시간을 그런 활동과 대화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는 주 7일, 24시간 붙어 있을 수도 없다. 그렇다 보니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데이트만 하는 연인관계에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질 수 있다.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데이트를 해서는 안된단 것이 아니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경우에도 그런 데이트와 함께 서로에 대한 솔직한 마음과 생각에 대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단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단단한 신뢰가 생기기 위해서는 사실 그런 대화를 나누는 것을 넘어서 두 사람이 다투기도 하고, 힘든 시간도 경험하면서 서로의 여러 모습을 직접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다투고, 힘든 시간을 가질 수도 없는 것이 아닌가? 금전적으로 여유 있는 연애를 오래 하면서도 서로의 그러한 솔직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래' 만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돈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에 익숙해지고, 그것들이 주는 효용성이 낮아지기 시작할 때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의 민낯을 보여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의 관계가 깊어지고 있는지 여부는 서로에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지고, 만났을 때 설레고 떨리는 마음이 어느 정도 사그라들 때야 비로소 확인할 수 있다.
금전적인 요소는 연애할 때보다 결혼할 때 더 예민하게 작용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의 재력을 결혼상대로서 중요한 항목으로 못 박아 놓기도 한다. 결혼할 때 재력은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최소 구성단위인 가정을 꾸리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돈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우리는 상대의 재력을 '왜',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상대의 재력을 중요한 조건으로 못 박아 놓는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은 '사람' 앞에 '재력'을 놓는다. 그리고 상대의 재력을 기준으로 연애와 결혼을 결정한다. 마치 직장을 놓고 더 높은 곳을 선택하려는 것처럼.
그렇게 결정한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인간은 모두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 상대가 아니라 상대의 재력을 보고 결정한 사람은 결혼한 후에도 그 사람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고, 상대도 상대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재력 때문에 선택했다는 것을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알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사랑 없는 결혼'생활이 시작되고,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결혼생활은 두 사람이 모두 자신만을 위하다 파국에 이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상대의 재력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놀랍다. 그건 마치 상대의 재산에 나 자신을 팔겠다는 것이 아닌가? 자신을 상대에게 그렇게 파는 순간 그 사람은 상대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돈을 번 사람이나 집안이면 그 사람들은 재산을 보고 결혼한 사람에게 휘둘릴 만큼 멍청하거나 어리석지 않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재산을 보고 결혼한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이용하고 통제하려 들 것이다. 그런 삶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을까?
재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결혼하는 게 좋단 것은, 그래야 두 사람이 서로를 이용하려 들지 않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재력에 차이가 나더라도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잘 살 수도 있지만 인간이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아는 인간은 상대를 쉽게 신뢰하기 힘들기 때문에 재력에서 차이가 나는 관계에서는 신뢰가 견고하고 쌓이고 자리 잡기가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서로 상당한 수준의 노력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들은 상대의 현재 상태를 보고 재력에 대한 평가를 하는데, 정말로 상대방의 재력을 고려할 것이라면 이 부분도 수정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 상대방이 갖고 있는 돈과 직장이 평생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재벌이나 준재벌급 재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한 번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개월 안에 몰락하기도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 '좋은 직장'과 집을 갖고 있는 정도의 재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재력만 보고 결혼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 정도의 재력과 안정은 하루아침에도 뒤엎어질 수 있다.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사업을 하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갑자기 목사가 되겠다고 한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을 가겠다고 하면 어떤가? 이 모든 것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고, 이런 일들은 현실에서 적지 않게 일어난다.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돈을 투자해야 하기 때문에 갖고 있던 집도 담보를 잡을 수 있고, 목사가 되거나 유학을 가게 되면 수입이 일정기간 없는 것을 넘어서 갖고 있던 집도 팔아야 할 수도 있다.
당신이 상대에게 그런 결정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받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런 생각은 하루아침에 생기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사실 상대의 현재 직장과 재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상대가 그런 결정을 혼자, 일방적으로 내릴 성향의 사람인지 아니면 상의를 하면서 함께 결정을 할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상대의 재력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가 갖고 있는 가치와 가능성과 태도다. 지금 상대가 재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상대가 그런 위치에 있는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그런 위치를 벗어나기 위한 계획과 계산이 있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을 신뢰해도 된다. 반면에 지금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집도 있지만 성실하지 않고 회사생활에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언제 회사를 그만둘지 모른다.
결혼은 '평생' 함께 하겠단 약속이다. 그렇다면 재력에 있어서도 상대의 현재만 볼 것이 아니라 미래도 고려하고 계산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 재력이 없어도 상대의 인품, 가능성과 태도에 비춰봤을 때 신뢰하고 미래를 투자할만한 신뢰가 있다면 그 투자는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 하다못해 그런 사람과 결혼을 하면 그 사람이 금전적으로 돈을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편이 되어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당장 안정적으로 보이는 직장과 집이 있다고 해도 다른 지점에서 신뢰가 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의 관계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모래 위에 지어진 건물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