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과 집안

연애와 결혼의 이유. 8

by Simon de Cyrene

어렸을 때는 연애를 해도 부모님께 그 사실을 숨겼다. 누군가를 만난다고 하면 꼬치꼬치 캐물을게 뻔하고, 그게 싫어서 그랬다. 나이가 들고, 이젠 연애를 시작하는 것도 까다로운 편이다 보니 결혼까지 연애기간이 길지 않을 수도 있지 않단 생각에 이젠 부모님께 넌지시 만나거나 썸을 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편이다. 그래야 부모님도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혹시라도 짧은 기간 안에 결혼을 결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졌지만, 만나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칭찬이나 좋은 말을 잘 못하는 분들답게 긍정적인 말이 처음부터 나오진 않았는데, 그 뒤에 나온 좋은 말이 그 친구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땐 그마저도 불편했다. 사람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집안을 보고 긍정적인 얘기를 하는 건 뭔가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랬던 부모님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아들이 좋아한다는 사람을 무엇을 믿고 신뢰하고 좋아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아들의 부족한 면들을 다 알고 있는 부모님이 말이다. 부모님이 자녀가 선택한 사람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이야기를 듣고, 직접 만나볼 때까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여러 상황과 사건을 경험한 부모님들은 자녀가 선택한 상대를 더 알게 될 때까지는 일단 경계태세를 높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상대의 집안은 또 다른 얘기다. 부모님이 어떤 일을 하시고, 어떤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알려준다. 단순히 그 부모가 돈을 많이 벌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사람은 그만큼 자아가 건강할 '확률'이 높고, 부모님들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그 사람의 부모님과 집안에 대해 물어보는 건 그 때문이다.


물론, 상대 집안에 대해 듣는 정보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우리 집만 봐도 그렇다. 나는 대기업에 다니시는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한국과 해외를 오가며 살았고, 두 분은 같은 교회를 다니다 만나서 결혼한 이후로 평생을 함께 하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 집은 아무 문제도 없고 화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완벽한 분은 아니시고, 나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받은 상처들이 있었으며, 그로 인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정보'만으로 한 집안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사실 상대 집안의 정보나 객관적인 팩트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가 자신의 집안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는지에 있다. 폭력적이거나 이기적인 부모 밑에서도 자아가 건강한 자녀가 생길 수는 있다. 그런 부모님과 그런 부모님의 자녀로 살아온 경험과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를 건강하게 잘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집안의 상황과 형편과는 무관하게 그 사람과는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힘든 경험을 하고, 상처를 입은 뒤에 그걸 극복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사람들과의 만남이 훨씬 깊고, 안정적이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알뿐 아니라 다름이 틀림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경우가 많아서 만남에 있어서 조금 더 안정감이 느껴질 때가 많더라. 반면에 성공만 하고, 좋은 것만 누린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상대의 아픔과 힘듬에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해서 관계가 깊어지기 힘들어지기도 하더라 '상처받은 치유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아픈 기억과 집안의 안타까운 형편과 상황을 무조건 부정하려는 사람이나 그에 대한 분노와 감정이 아직도 있음과 동시에 그걸 수용하지 못한 사람과의 만남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아직 꺼지지 않은 활화산 같아서 그 감정이 언제 상대에게 튈지를 알 수 없다.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아픔이 있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에 대해서는 일단 경계를 하고 보는 것은 그 때문이고, 그런 경향성이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 과정을 잘 지나서, 극복해 낸 사람들은 아픔과 힘듦이 큰 만큼 더 많이, 잘 사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들 중에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을 경험한 뒤에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단순히 집안에 대한 정보와 과거만 놓고 함부로 사람을 예단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률'의 싸움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다.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사람들 중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것은 현실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서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자아가 더 건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집안이 겉으로는 온화하고 좋아 보이지만 더 강업적인 경우도 적지 않다. 부잣집 도련님들 중에 망가지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처럼 상대방의 '집안'은 분명 그 사람에 대해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긴 하지만 그게 또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집안과 그 집안에 대한 상대의 관점과 생각이 어떤지는 들여다 보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는 자신의 집안에 대한 생각과 감정은 그 사람의 내면을 그 어떤 요소들보다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배경에 대한 과도한 프라이드가 있는 사람은 상대를 낮춰볼 수도 있고, 집안에 대한 분노나 반감이 해결되지 않은 사람의 감정은 언제 당신을 덮칠지 모른다. 연애나 결혼에 있어서 상대의 집안을 본다면, 그 집안 자체보다 상대가 자신의 집안을 어떤 필터로 보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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