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이유. 5
누군가는 결혼이 필요 없다고 말한다. 결혼은 하지 않고 연애만 하겠단 사람도 있는 반면, 연애도 필요 없다는 사람들도 있다. 40대 초반의 노총각이 되는 과정에서 그 모든 단계를 다 거쳤다. 연애만 하면 되고 결혼은 굳이 필요 없을 것 같았던 시절도 있었고, 연애도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던 시기도 있었다. 그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연애와 결혼은 모두 필요하단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싱글들은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말하다가도 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꺼내기 시작하면 '누군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지금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을 나는 믿는다.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충분히' 행복하다는 것이 '더 이상 행복해질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더 살고 싶고, 미래가 더 기대될 정도로 행복함과 동시에 더 행복해질 수 있다.
마흔 전후의 싱글들이 누군가 있으면 좋겠단 마음이 드는 것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주위에 오롯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말자. 주위에 좋은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ㅇ벗단 것이 아니다. 나도 주위에 좋은 사람들도, 친한 사람들도, 속을 다 터놓고 지낼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마흔 정도가 되면 '모든 것'을 터놓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좋은, 친한 사람들도 각자의 삶이 있고 한창 바쁘게 살기 때문에 각자의 삶이 가장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다 보면 좋은, 친한 사람들도 만났을 때는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지만 결국 각자의 길을 간다는 것을 마흔 전후에는 대부분 사람들이 느낀다.
왜 그걸 느끼는지를 고민해 봤는데, 그건 어쩌면 사람은 대부분 마흔 전후에 생물학적인 노화를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린 자신이 생물학적으로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전까지는 몸도 마음도 팔팔하고 회복탄력성이 강하다. 우리가 생물학적으로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신체의 회복속도가 예전 같지 않을 때인데, 우리의 신체의 회복 속도가 늦어지면서 우리의 마음의 회복 속도도 느려진다. 그러다 보면 과거에는 상처받지 않고, 툭 털고 일어날 일도 마음에 남기도하고 그 후폭풍으로 인해 방황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평생을 함께 옆에서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 전후의 사람들은 쉽게 연애나 결혼을 하지 못한다. 그건 마흔 전후의 싱글들은 사람을 쉽게 신뢰하지 못하고, 몸과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약해진 상태에서 누군가를 잘못 만나면 그 타격을 극복하는 것도 어렸을 때보다 힘들단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은 최선을 위한 리스크 테이킹보다는 차악을 위한 싱글의 삶을 선택한다. 매년 썸은 있지만 꽤 오랫동안 연애는 하지 못하고 있는 나도 어느새 그 대열에 들어서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애와 결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세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의 자기 중심성을 갖고 있다. 지금 당신과 친한 직장동료나 친구가 평생 당신의 편에 서서 항상 모든 것을 함께 할 것 같을 수 있다.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직접 대립되지 않는다면, 그런 상태가 평생 유지될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영혼의 파트너처럼 모든 것이, 항상, 어떤 상황에도 이해관계와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은 매우, 극히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가까운 두 사람도 서로의 이해관계나 생각이 달라지면 두 사람의 관계는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엄청나게 가까웠던 사람들이 동업을 한 후에 원수가 되어 갈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도 몸과 마음의 회복탄력성이 강한 30대까지는 싱글들도 충분히 잘 버틸 수 있다. 20-30대에 많은 사람들이 일과 결혼을 했다거나, 평생 일만 하면서 살 것처럼 말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했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속 깊은 얘기를 나눌 때면 '짝이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마음과 상태가 평생 가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 가득하고, 누가 언제 어떻게 자신을 위한 결정을 할지 모르는 세상에서 홀로 살아가긴 힘들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항상 승승장구하면 괜찮을 것 같을 수 있지만,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선 홀로 승승장구하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연예인들에게 돈 빌려달라는 DM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잘 나가는 사람 주위에는 항상 그런 사람을 노리는 사람들이 붙고,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 우린 누군가를 쉽게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승승장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실패와 어려움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지치기 시작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오롯이 내 편'이 되어줄 사람이 필요하다. 내 속을 다 털어놓고, 내가 실수를 해도 나를 짓누르지 않고 성공해도 나를 이용하지 않을 사람 말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자기 중심성은 갖고 있다 보니 두 사람이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까지 상대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던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배신하는 세상이 아닌가? 그런 현실에서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이 누군가의 편이 되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사업을 같이 하다 부도가 나면 서로 상대 탓을 하는 것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는지를 생각해 보면 이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넘어설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인간은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이타심이 견고하게 자리 잡은 경우에 한해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와 이타심은 연애를 하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강해지고, 커지기 마련이다.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연애와 결혼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험난한 세상에서 견제를 받고,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면서 살아갈 정도로 강한 사람들은 실제로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많지 않다. 혼자 사는 싱글들이 취미를 늘리고, 반려동물들을 키우는 건 역설적으로 그들이 채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런 것들이 우리의 마음과 회복탄력성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진 못한다. 하버드의 행복에 대한 연구가 보여주듯이 인간은 행복해지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선 건강한 관계가 필요하다.
연애가 두 사람이 서로 간에 신뢰를 형성하고 강화시키면서 사랑을 만드는 과정이라면, 결혼은 두 사람의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겠다는 사회적 약속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이중장치가 있을 때 오롯이 서로의 편이 되어줄 수 있다.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현실적인 이해관계를 공유하지 않는 연애나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 정도는 언제든지 깰 수 있다. 연애와 결혼이 모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