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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May 05. 2024

대기번호 1번, 내 자리는 없었다

학부시절에 강사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다. 이왕 같은 학비를 내고 다닌다면, 교수로 임용된 분들 수업을 듣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무의식 중에 '시간강사는 아직 검증이 덜 된 사람들'이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게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학부시절에 교양과목은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공과목을 졸업요건을 훌쩍 넘겨서 들었고, 다른 전공의 전공과목들을 교양과목으로 들었다. 


그중에 겸임교수인 분들 강의는 3-4학년 때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당시에 언론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언론인들이 강의를 하러 왔었다. 그래서 그 수업들을 들었는데, 돌이켜 보면 나는 당시에 학부에서 남겨 갈 것은 자신만의 획을 그은 교수님들과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서 성공한 사람들의 수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모든 교수님들의 수업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천재로 유명한 한 경제학과 교수님은 수업 시간 내내 뉴욕 양키즈와 보스턴 레드삭스 얘기만 하다가 시험 2주 전에 본인이 이해하고 있는 속도로 진도를 다 뽑고 시험을 보게 하셨다. 또 어떤 교수님은 중간, 기말고사 점수나 채점기준도 알려주지 않고 학기가 끝나면 해외로 나가 버려 연락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면서 나는 교수님과 수업들에 대한 평판을 최대한 수집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수업들을 듣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래서일까? 나는 학부시절에 들었던 수업들의 기억과 만족도가 꽤나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강사 수업은 듣지 않아'라는 주관에 후회를 한 적이 없다. 내가 그 '강사'로 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애초에 내가 대학의 시간 강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했던 적이 없다. 졸업 후엔 대기업에 취업했고, 대학원은 로스쿨에 갔으니까. 심지어 박사과정에 발을 담은 이후에도 나는 내가 시간강사로 사는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공부가 있어서 박사과정에 진학했을 뿐이고, 그 뒤에는 무엇을 하며 먹고 살 지에 대한 생각과 고민은 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원 코스웍을 마친 뒤에는 최대한 빨리 학위를 받는 것에만 집중하며 2년의 시간을 버텼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 뒤에 찾아왔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전에 홍보실에 일했고, 지인이 마케팅대행사를 차린 뒤 일을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주고 있었지만, 또 기회가 되어 드라마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내가 장기적으로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 지원을 할 수도 있었지만 내 전공의 특성상 사람을 그렇게 많이 선발하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정부의 입맛에 맞춰서 보고서를 써야 하는 연구기관에는 가고 싶지가 않더라.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강사'에 지원을 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6개월이 지난 뒤, 무엇을 해서 어떻게 먹고 사는 게 내게 맞을 지를 고민하다 '그나마' 내게 맞는 자리는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자유롭게 하는 학교라는 판단이 섰고,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강의 이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강사모집공고들을 뒤지면서 내가 우겨넣어 볼 수 있는 모든 자리에 지원을 해봤다. 


결과는 참담했다. 대기번호 1번 하나, 나머지는 모두 대기번호 조차 없이 탈락. 당시에는 그저 그러려니, 했다. 내 지도교수님은 공부는, 연구는 혼자 해야 하는 것이고 지도교수가 힘을 너무 실으면 말이 많아질 수 있기에 제자를 어디에 넣어주시는 스타일이 아니시다 보니 그때까지도 나는 몰랐다. 이 업계는 여전히 사람이 사람을 추천하고, 대부분 자리는 실질적으로 내정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나는 공고를 보고, 내게 가능성이 있다고 믿고 지원을 했지만 사실 그 공고 뒤에는 이미 누군가의 이름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그 사실을 조금 더 어렸을 때 알았다면, 나는 그게 마냥 부당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력'대로 보고 평가를 해야지 내정된 사람이 있는 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사회생활도 해 보고, 프리랜서로도 살아 봤기에 나는 사람들이 제출하는 서류로 실력을 가늠할 수도 없고, 누군가의 실력에 순위를 매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경력직이 이직하는 과정을 생각해보자. 서류와 인터뷰만으로 경력직 직원을 선발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을 뽑는 측에서는 서류를 받고 나서 이전 직장이나 지인들 중에 지원자를 알만한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찾아내서 그 사람에 대한 평판조회를 한다. 그리고 평판조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력이 아무리 좋은 사람도 채용하지 않는다. 나는 회사생활을 할 때 팀장님이 누군가의 평판조회에 대하여 '글쎄요, 그 분이랑 직접 같이 일은 안 해 봐서 저도 그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 그런데 저라면 그 사람 뽑지 않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신입이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책임을 지는 자리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실력' 이상의 능력들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어느 조직이나 경력직을 뽑을 때는 그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한다. 대학 강사도 마찬가지다. 한 학기 수업을 기획하고 끌고 가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의 입장에서는 서류와 인터뷰, 강의 실연 정도만 보고 강사를 채용하기는 부담스럽다. 그렇다 보니 대학에서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신뢰하는 사람을 강사로 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실력을 무시하고, 자신과 연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자리에 꽂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을 수 있다. 그런 건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을 선발하기 위한 시스템을 악용하는 사례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시스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자리 잡게 된 이면에는 또 그 나름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여러 사회경험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꼈다. 


그렇기에 나는 강사 모집 결과에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쨌든 나는 결과적으로 내가 학부시절 듣고 싶어하지 않던 강사의 수업 조차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박사를 받은 지 6개월이 지나 경험하게 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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