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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Jul 27. 2024

강의는 영영 못할 줄 알았다

박사학위를 받은 지 4년이 넘게 지날 때까지 강의를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순진하게 강사를 모집하는 공지를 보고 지원을 했는데 계속 떨어지더라. '이 자리에 지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고?'란 생각이 들 정도로. 나쁘지 않은 스펙을 갖고 있었기에 강의를 해 본 이력이 없어도 한 자리는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계속 기회가 주어지지 않다 보니 머리가 복잡해졌고, 결국 어느 순간부터 지원하는 것을 포기했다. 


내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사람들이 강의를 어떤 경로로 맡게 되는 지를 알게 된 영향도 있었다. 강사법을 도입하고, 더 투명하게 하는 듯한 모양새가 갖춰지긴 했지만 대부분 대학강사는 여전히 '연줄'로 결정이 된다. 사람들은 강사가 필요하면 연락을 돌리거나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추천을 받고, 그 사람을 내정해 놓고 형식적으로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대부분이다. 


이렇게만 들으면 그러한 관행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강사를 하게 되면서부터 이 업계가 그렇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해 보자, 한 기업의 직원을 한 명 선발할 때도 대기업은 몇 단계에 걸쳐서 면접을 보고 그 사람의 이력을 검토한다. 경력직인 경우에는 그 사람이 일했던 직장에 전화를 걸어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 실질적인 성취도 확인을 해본다.


그런데 임원이 아닌 이상 회사에서 직원 한 명이 전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물론, 중간관리자들도 중요한 기능과 역할을 하지만 큰 기업에는 그런 사람 중 한두 명이 이상해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 공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한두 명 정도 이상하거나 독특해도 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서 사람을 채용한다.


그런데 대학 강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책임진다. 대학 강사들은 아무리 적어도 3명, 많으면 거의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한다. 그런데 수업 하나를 준비하는 건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고,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 강사는 그 내용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강사는 15주간 정해진 시간에 항상 나와서 정해진 분량을 가르치는 정도의 성실성은 있어야 하며, 요즘에는 강사가 강의를 잘못하면 강의평가로 폭탄을 맞을 수도 있다. 학점에 목숨을 거는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나 있다 보니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성적을 산출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회사에서는 누군가가, 옆자리에 다른 사람이 공백을 어느 정도는 해결해 줄 수 있지만 강의는 그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강사는 그게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리고 회사에서 채용하는 직원은 과거에 일한 경력을 바탕과 평판조회를 하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성취를 낼 것인지를 예측이라도 할 수 있지만 강사는 그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박사들 중에 연구를 정말 잘하고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곧 좋은 교수나 강사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구성과를 많이 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잘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학부시절에 들었던 서울대 경제학과를 차석으로 졸업하시고 하버드에서 박사학위도 단기간 안에 받으셨던 교수님의 수업은 교수님께서 한 학기 내내 다른 소리를 하시다가 마지막 2-3 수업에 본인이 생각하고 이해하는  속도로 진도를 뽑으셨었다. 그게 좋은 강의는 아니지 않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히 이력, 학위를 받은 학교와 연구실적만 갖고 강사를 뽑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를 수반하게 된다. 그렇다 보니 어떤 연줄도 없는 박사들은 대부분 지원을 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 자리를 채워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본인이 신뢰하는 사람이나 본인이 신뢰하는 사람이 신뢰하는 사람을 내정해 놓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강사를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채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고, 그 이유에는 수긍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문제가 되는 건, 그 과정에서 '신뢰'적인 측면에서 다른 요소들이 개입된다는데 있다. '실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애매한 개념인가? 무엇인가에 필요한 실력은 그게 어느 직역이든지 명확한 측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니 강사를 채용하는 관계에서도 결국은 연줄과 인맥이 더 큰 기능과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교수들은 자신의 제자를 다른 곳에 강사로 갈 수 있게 밀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강사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은 학회에 나가 얼굴을 비추고 익히면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사람들이 '박사'라는 타이틀에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모르겠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사들은 학회 간사나 스텝 역할을 거의 행정직원처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야 교수님들과 안면을 틀 수 있고, 몇 번을 만나면서 익숙해져야 강사 자리 나 교수 자리에 추천을 하고 전후방 어디에서든지 지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많은 박사들은 '간사'나 '이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임금은 거의 받지 못하면서도 학술대회와 학회 행사들을 기획, 준비 및 운영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해야 강사자리라도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와 같은 시스템은 강사들이 최선을 다해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이는 대부분 강사들은 궁극적으로 교수가 되거나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직장에 정착하고 싶어하는데, 자신이 강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해 내야 자신의 지도교수나 자신에게 기회를 준 사람의 얼굴에 먹칠을 하지 않을 수 있 , 좋은 평판을 받을 수 있으며 그 평판이 곧 자신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이렇듯 강사들은 다른 프리랜서들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평판이 곧 본인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줄 수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얽히게 된다. 


물론, 모든 박사들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인문계와 이공계가 상황이 다르고, 어떤 전공을 했는지에 따라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이나 교수로 있었던 사람과 한국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또 다르다. 하지만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강사경력을 이어 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테크를 탈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내 지도교수님은 조금 독특하신 편이다. 내 지도교수님은 누군가를 평가하거나 판단하시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특정한 것을 요구하시지도 않는다. 반면에 누군가의 앞길을 밀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도 하지 않으신다. 오죽하면 브런치에서 나온 내 책의 추천사도 제목을 들으시고는 '내가 그 내용을 너와 논의해 온 것도 아니고, 잘못하면 내가 오직 우리 관계 때문에 추천사를 써준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추천사를 써주는 것을 거부하셨을까? 그런데 또 책이 발행된 뒤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시고 잘 썼다면서 이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추천사를 써줬을 것이라고 하시더라. 그게 내 교수님의 기본적인 성향이다. 


그렇다 보니 내 지도교수님은 내가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도 내 진로를 위해 어떤 신경도 써주지 않으셨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에 대한 불만은 없다. 이는 그 대신 내 지도교수님은 내가 드라마를 하고, 다른 글을 쓰는 것도 존중하고 인정해 주셨기 때문이다. 제자에게 기회를 열어주고 밀어주는 교수님들은 보통 자신의 제자가  에 상응하는 성취를 이루기를 원하고, 그러할 것을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계속 연구를 할 것인지 여부 자체가 고민되었던 내게 지도교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면 나는 이 길을 포기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 하는 것을 잘 못하는 성격이다. 사람들은 학회에 나가고, 교수님들께 안면 익히면서 학회일을 하라고 조언하는데 내 성향상 그게 잘 안되더라. 형식적으로 일을 위한 일을 해야 하고, 상대에게 무엇인가를 얻어내기 위해 보상이 확실하지도 않은 일을 하지는 못하겠단 생각이 들었기에 나는 지금도 학회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기대하면서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가다 강사생활만 10년 넘게 하고 지친 박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차마 그런 결정은 하지 못하겠더라.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지 4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도 강의를 한 번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은 지 이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도 강의를 못해봤으면, 앞으로도 하기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정확히 2주 뒤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이메일만 주고받은 교수님이었다. 그리고 그 교수님은 수업을 일 년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어보셨다. 


그게 1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이 시리즈는 지난 1년 동안 내가 보고, 듣고,  느끼면서 생각한 것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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