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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on de Cyrene Apr 21. 2024

프롤로그_대학강사, 살다

사람들은 '대학 강사'라는 말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나는 '대학 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관련된 기사들이 많이 떠오르고, 학부시절 강사들 수업보단 교수님 수업을 듣기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아 물론, 유명하신 분들이 겸임교수 같은 직책을 갖고 강의를 하시는 수업들은 예외였다. 말 그대로 박사학위를 따고 전업강사를 하시는 분들 수업을 나는 가급적이면 듣지 않으려고 했다. 


왜 그랬냐고? 왠지 경력이 짧기 때문에 잘 가르치지 못하실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사실 나는 학부시절에 강사님들 수업 외에도 교수님들 중에 잘 가르치지 못하고, 남는 게 없는 것으로 유명한 수업들은 피하고 우리 학과에 명강의로 꼽히는 교수님들 수업들을 어떻게든지 듣기 위해 노력했고 그 수업들은 대부분 수강했다. 나는 굉장히 열심히, 좋은 수업을 듣기 위해 노력한 학생이었고 그래서 나는 학부시절에 들은 강의들에 대부분 만족했다. 


그 환상이 깨어진 건 로스쿨 때였다. 우리 학년은 일각에서 '저주받은 기수'라고 할 정도로 강의를 잘하지 못하시기로 유명한 교수님들이 기초법에 배정이 되었는데, 그 결과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들었던 가장 남는 게 없는 수업들을 로스쿨 내내 들어야만 했다. 


모든 교수님들의 수업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일부 수업들의 경우 내가 학부시절에 들었던 수업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았고, 나는 천재가 아닌 사람들이 왜 수업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지까지 파악하고 천재가 아닌 나 같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행되는 진짜 천재교수님의 인생 최고의 수업을 로스쿨 시절에 접했다. 학부시절에 들은 경제학 수업 중에 천재로 이름을 날렸던 교수님의 수업은 그 교수님은 학생들이 왜 자신에겐 너무 쉬운 걸 이해하지 못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의 사고 속도에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돌이켜보면 그분은 천재 중에는 천재는 아니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난 내가 대학 강사로 일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대학 강사로 일하는 것 이전에 나는 사실 학부시절에 이미 대학원생들을 보며 '나는 절대로 박사과정엔 들어가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는데, 어느 순간 보니 박사과정에 들어가 있더라. 박사과정에 들어간 뒤에는 박사학위를 받은 뒤에 어떻게 살 지에 대한 고민을 할 여유는 없었다. 학위를 받는 과정도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게 박사학위를 받은 뒤, 무엇을 하며 어떻게 먹고 살 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6개월은 방황을 했고, 일단 강의를 할 수 있으면 하자는 마음으로 공고가 난 자리에 지원을 했지만 대기순위 1번을 받은 자리들은 있었지만 결국 나는 강사로 일할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이 시리즈에서 강사업계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그건 공고가 난 대학강사 자리들은 대부분이 사실은 내정이 되어있기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그런 현실에 분노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현실에 발을 딛고 그 시장을 보니 그 시장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 또한 이유가 있고 그에 대해 비난을 하기가 힘든 상황들이 있더라. 


나는 전형적인 대학 강사는 아니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고 4년 넘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프리랜서로 살아왔고, 작년 여름에서야 처음으로 대학 강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강사로써 나의 이력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4년이나 지났는데 강의 이력이 없으면 학교로 가는 건 포기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한 직후에 아는 교수님께서 연락이 오면서 시작되었다.


나는 강사의 삶에 올인을 하거나, 학교로 가기 위해 목숨을 걸 생각은 없다. 나는 지금도 두 학교에 강의를 나가는 것 외에도 프리랜서로 다른 일들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학 강사들이 처한 현실에 상대적으로 덜 감정적이고, 그래서 내가 조금 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강사의 삶과 대학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업강사들이 쓴 글이나 책들이 있고, 그 내용은 모두 사실이긴 하지만 사실 그런 글들은 완전히 균형이 잡혀있진 않아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업강사들의 삶이 고되고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강사로 수업을 진행하다 보니 강사들의 삶만 문제가 아니더라. 이 바닥에서 강사로 살며 대학의 현실을 들여다 보니 교수님들과 학생들도 우리나라 대학들의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피해를 입고 있더라. 


이 시리즈에서는 업계(?)에 속해 있긴 하지만, 한 걸음 물러나서 그 업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점을 다루려고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업계에는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들만 있다. 사람들은 대학 교수들이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거나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오늘날의 현실은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그래서 이 시리즈는 현직 강사의 입장에서 업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내가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까지 더해서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실을 들여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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