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을 읽으신 분 중에는 '또 결혼을 의무처럼 생각하는 틀딱 한 명 납셨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런 느낌을 받으신 분이 있다면, 그건 오해를 하신 거다. 나는 결혼이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이 의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40대 중반까지 노총각으로 살며 지난 2년을 연애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상태로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애도, 결혼도 당연히 의무가 아니다. 잘못된 연애는 나의 현재를 망가뜨림으로써 내 미래를 망칠 수 있고, 실수로 상대를 잘못 선택한 결혼은 내 인생을 되돌이킬 수 없는 나락의 길로 몰아갈 수 있다. 이별도, 이혼도 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우리 안에 많은 상처를 남긴다. 특히 이혼의 경우 대부분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지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중하게, 자신 나름대로는 확신을 갖고 결혼을 결정하기에 굉장히 큰 상흔을 남긴다. 지인들 중에 이혼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혼 후에 일정 기간 동안은 정신과 치료를 받더라.
잘못된 연애는 다양한 방식으로 현재를 망칠 수 있다. '사랑'으로 포장한 이기심으로 연인을 자신의 스케줄에 맞춰서,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하도록 요구하는 사람과의 연애는 그 사람이 그 나이대에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공부를 해야 할 시간에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일하며 경험을 쌓아야 할 시기에 제대로 일을 익히지 못하면 그 기간 동안의 공부와 경험의 공백이 그 사람이 살아가는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산적인 영역이 아니어도,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연인은 그 사람의 사회생활을 망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대에게 엄청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연인은 아직 공동체를 함께 형성하지 않은 관계다. 이는 두 사람 중 어느 누구도 상대를 완전히 책임질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할 때도 두 사람 간에는 개인의 영역이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특히 20-30대에는 쌓아야 하는 것들이 많기에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면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대와 연애를 하는 게 맞다.
두 사람이 전혀 만나지 않고 문자만 해도 된단 것도, 상대에게 무조건 섭섭해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상대에게도 충분히 공간과 시간을 주고, 상대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면 그것도 품어줄 수 있어야 한단 것이다. 물론, 상대가 연애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 과도하게 일중심적일 수 있다. 그러면 상대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깔끔하게 헤어지면 된다. 연애는 타이밍이기에 두 사람이 만나는 시기에 서로 우선순위에 놓고 있는 게 맞지 않는다면,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는 헤어지는 게 서로를 위해 맞다.
만약 두 사람이 서로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신뢰하고, 아끼며 사랑한다면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중간 어딘가에서 타협점을 건강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관계에서 많은 사람들은 상대가 가진 좋은 것이나 매력적인 것 한두 가지, 혹은 헤어지고 나서 이런 사람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억지로 참고 버티며 관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맞추기 위해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음에도 맞지 않는다면, 빨리 헤어지고 빨리 다른 사람을 찾는 게 본인이 자신과 더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최근에 예전에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던 친구들과 식사를 했는데, 한 친구가 자신의 연인은 자신의 얘기에 공감하고 잘 맞춰주겠다고 답했다며 신뢰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말이 지켜지지 않더라도 상대와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을 때만 결혼을 하라고 했다. 상대가 바뀌고 따라주면 좋겠지만, 연애할 때와 달리 결혼해서 함께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르며 결국 본인의 모습이 어느 정도는 나올 수밖에 없다. 본인이 진심으로 공감해고 깊게 깨달아서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
그렇기 때문에 연애를 할 때부터 연애 패턴으로 인해 갈등이 생기거나 불편함이 느껴지고 맞춰지지 않는다면 아까워하지 않고 헤어지는 게 맞다. 상대가 바뀌고 맞춰줄 것을 기대 또는 요구하며 만나는 건 사랑이 아니고 상대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닌가. 상대에게 내게 맞추라는 생각은 또 얼마나 폭력적인가. 세상에 사람은 생각보다 많고, 다양하다. 연애할 때는 절대로 맞춰지지 않을 듯한 지점이 있을 때 빠르게 결정하는 게 맞다.
이혼을 했거나 아이만 없다면 이혼했을 것이란 말을 하는 지인들을 보면 헤어지거나 힘들어하는 패턴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경우는 상대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사람이라는 것. 10년을 연애한 뒤에 결혼해도 1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동거까지 해서 확신을 가졌지만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많은 이들은 대부분 연애하거나 동거할 때 상대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맞췄던 것이 결혼 뒤에 텐션이 풀리면서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헤어짐을 선택한다. 이런 경우에는 확신이 강했는데, 그 확신이 깨어지면서 상대에 대한 신뢰가 함께 무너져 이별하게 되더라.
또 다른 경우에는 결혼할 때는 분명히 잘 맞았지만, 결혼 후에 서로 대화가 줄고 데이트는 거의 하지 않게 되면서 서로 달라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연애할 때 콩깍지나 자신만의 기대 때문에 헤어지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부는 연애할 때는 서로 대화하고, 만나면서 방향성을 맞춰나갔지만 결혼한 뒤에는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일하면서 보내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지쳐서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아이까지 생기면 두 사람만의 시간과 대화가 줄어드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단절되어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집단의 말을 들으며 서로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서 결국 함께 살 수 없을 정도로 달라져 헤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이러한 경우 그래도 상대적으로 쉽게 이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상태에서도 아이 때문에 갈라서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모든 연애와 결혼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연애나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노총각으로 분류되는 싱글로 살아가면서 확실히 느끼는 건,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자신의 속마음을 편하게 나누고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 필요하단 것이다. 과거에 나는 전화번호부를 훑으며 내려가다 보면 사람들과 돌아가면서 전화를 하며 3-4시간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워낙 여자가 많은 집단에 많이 속해 있다 보니 그중에 여자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보수적인 사람들은 내가 호감을 갖고 연락을 했다고 생각했던 경우도 있었다. 세상과 고립되어 시험을 준비할 때도 나는 주말마다 약속이 하나 이상 있을 정도로 사람을 많이 알았고, 모임도 그만큼 많았다.
나는 여전히 여사친, 남사친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금도 정말 솔직하게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여사친이 지금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결혼을 하는 순간, 여전히 친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깊이는 달라지게 되더라. 상대의 배우자가 불편해 할 수도 있고, 우리가 정말 아무렇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은 오해할 수도 있기에 여전히 친구로 지내는 이성은 있지만 내가 그 친구에게 언제든지 편하게 전화를 걸거나 만나자고 말하지는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성이 아니더라도, 평생을 함께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며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나 공동체가 있다면 결혼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관계도 그렇게 지속될 것을 장담할 수는 없다. 나는 겨우 지난 2년 동안 주위에서 둘이 사귀냐고 놀릴 정도로 친했던 친구들과 관계가 완전히 끊어졌다. 서로 인생에서 가장 힘들 때 가장 믿고, 신뢰하며 의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개인의 상황이 변하면, 사람은 결국 상대보다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게 되어 있더라. 분노하기도 하고, 배신감과 당혹스러움을 느끼며 역설적이게도 나이가 들수록 결혼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잘하는 게 가장 안정적이고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란 사실이 확실해졌다.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한단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기본적으로 각자의 삶을 책임져야 하고, 누구에게도 의존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인간은 누구에겐가 일정 부분에 있어서 건강하게 의지하고, 자신의 편에 서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다. 창조론적인 관점에서는 사랑 그 자체인 신이 인간을 자신의 형성으로 만들며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진화론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집단을 만들어 오는 방식으로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인 것이 분명하다.
아무리 크게 성공하는 사람도 힘든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는 엄청난 걸 해주지 않더라도 옆에서 누군가가 함께 하며 믿고 신뢰한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된다. 또 좋은 일이 생길 때 인간은 그걸 누군가와 함께 기뻐할 때 그 기쁨을 두 배, 세 배로 느낀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우리가 이 치열하고 버거운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해 준다. 이것만은 인류가 역사 속에서 반복해서 증명해 낸 인간의 본성이다. 아무리 악덕한 범죄자도 자신의 자녀와 가족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렇게 함께 기뻐하고 또 함께 슬퍼하며 서로에게 의존적이지는 않으면서도 의지할 수는 있으려면 두 사람이 서로에게 순수한 이타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리즈 초반에 말했듯이, 호감과 사랑은 결국 상대에 대한 순수한 이타심이 존재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갈린다. 그런데 그런 이타심을 그나마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관계는 부부이고, 결혼 후에 그러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애하면서 자신에 대해 알아가며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을 걸러내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내가 결혼을 강조한 것은 그 때문이다.
평생 완전히 혼자 살면서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결혼은 다른 관계보다 그나마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수백 억 자산가였던 광원산업 이수영 회장이 평생을 싱글로 살다 80대가 되어서 굳이 결혼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