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

52시간을 놓고 다투는 현실

by Simon de Cyrene
주 52시간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을 놓고 말이 많다. 사실 나야 학위논문을 마무리하면서 최근에 파트타임으로 일하기 시작한 입장이라 이 제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이고, 학문을 하는 사람과 프리랜서는 '근무'라는 경계가 애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제도가 그렇게 의미가 있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세상에 52시간 근무를 상한으로 설정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국가라니... '선진국'의 정의가 모호하긴 하지만 이 논란만 봐도 우리나라는 선진국은 아님이 분명하다. 아직도 사람보다 일,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사회라는 것이 이 논란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52시간을 최대한으로 설정하는 게 불가능한 영역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컨설팅, 대행사, 24시간 돌아가야 하는 공장, 24시간 모니터링이 필요한 사업영역, 개인 의사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 전문직은 사실 52시간 이내로 근무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직군은 가만히 들여다보면 본인들이 일하는 만큼 수입이 증가하거나, 노동강도가 센 만큼 수입이 더 많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주 52시간 이상을 반드시 근무해야 할 수밖에 없는 직종은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 물론 그중에도 홍보대행사나 스타트업과 같이 직원들이 큰 수입은 못 받으면서도 근무하는 곳도 있으나... 이참 안타까운 현실은 여기까지만 하자...


사무직의 경우

그렇다면 다른 일반 사무직은 어떠한가? 52시간을 근무한다고 치고 계산을 해보자. 9시에 출근해서 12시까지 3시간, 12시에서 1시간이 점심시간이라고 치면 1시에서 7시간을 더 일하면 8시, 그렇게 주 5일을 하면 50시간이다. 그러면 주 3일은 저녁 8시까지, 주 2일은 저녁 9시까지 일하면 주 52시간이 충족된다. 8시에서 9시 사이에 퇴근을 하면 9시에서 10시 정도가 될 것이고, 씻고 나면 10시에서 11시가 된다. 이게 사람들이 말하는 '저녁이 있는 삶'인가? 52시간을 일하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이상 일을 시켜야 하겠다는 사람들이 이런 삶의 패턴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지가 궁금한 거다 난. 이렇게 일하면 미혼인 사람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것이며, 아이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애를 가진단 말인가? 결혼하라고, 애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하면서 현실은 다르게 몰아가고 있지 않나? 왜 폴 크루그만 교수가 52시간 근무시간을 더 줄여야 한다고 했겠나? (링크)


만약 그렇게 일하지 않으면 일이 진행될 수 없다면 물론 그런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6개월 정도 구글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한국에 있는 구글 지사에서 근무했던 경험에 의하면 굳이 그렇게까지 일을 하지 않아도 회사 일은 돌아가더라. 인턴이라는 생각에 바짝 긴장해서 첫 주에 매일 8시 40분까지 사무실에 나가서 회사에서 주는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봤는데 어느 날 옆 팀 분께서 '집이 가까우신가 봐요? 되게 일찍 오시네요'라고 하셔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9시 반부터 슬금슬금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6시가 되면 사무실은 거의 텅 비고 6시 반 정도에는 한기가 돌 정도로 사람이 잘 없는 상태가 되더라. 그래도 구글 규모의 기업은 잘 돌아가더라.


물론 구글 사람들이 딱 그 근무시간에만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지사와의 회의 때문에 오전 6시에 집에서 화상통화를 하기도 하고, 저녁 늦게 집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일처리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는 것으로 강요받는 분위기는 전혀 없었고, 그래도 일은 다 잘 처리됐다. 몸이 안 좋거나 집에서 아이들을 봐 줄 사람이 없으면 Work From Home이라고 해서 집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내가 아는 지인은 보스가 한국에 없다 보니 꼭 회사에 나와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항상 점심때 즈음에 회사에 나와서 내가 '넌 점심 먹으러 회사 나오냐'라고 놀리기도 했다. 물론 그 친구도 아침에 집에서 일을 처리하고, 화상회의를 하다가 출근하는 것이지만 [근무시간=회사에 앉아있는 시간]으로 여기는 것과 그렇게 일을 해도 되는 문화에는 분명 큰 차이가 있지 않을까? 그만큼 자유를 주는 만큼 책임도 부여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한국의 대기업에서 일을 해봤지만 사실 한국에서 사무직들은 그렇게 근로시간이 길어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한국에서는 근무시간의 상당 부분이 보고서 내용을 취합하고, 보고서나 발표자료를 만드는데 쓰이는데 그 시간을 줄이면 사실 우리나라 기업들에서 근무시간은 40시간 이하로 충분히 낮출 수 있다. 구글의 경우 그렇게 근무하면서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내부적으로 거의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email thread를 서로 보면서 업무 진행상황을 대부분 파악하고, 보고서를 작성해도 간단하게 각자가 주간 혹은 월간보고를 메일로 몇 포인트 작성해서 보내는 것으로 대체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이 있는 삶

구글이 완벽하단 것이 아니다. 구글도 내부적으로 비효율적이거나 필요 없는 부분들이 있다. 그리고 구글에서도 근무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직군들이나 사업부서들이 분명 있다. 구글의 예를 굳이 든 것은 내가 그나마 경험해 본 '한국적이지 않은' 기업문화가 구글 뿐이고, 52시간 근로시간이 사실 논란이 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다. 52시간 이하로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면 일을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지를 고민하면 되고, 그러다 보면 분명 방법은 나온다. 애초에 회사가 만들어진 것 자체가 일을 개인이나 소수의 사람이 하는 것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기 위함이 아닌가?


저녁이 있는 삶. 워라벨을 말하고 그게 중요하다는 것에 공감하는 것은 비단 젊은 세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사는가? 아니면 살기 위해 일하는가? 사실 회사라는 것 자체가 (1) 회사가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결과를 내고 (2) 개인은 자신의 부담을 덜면서 적정 수준의 수입을 받으면서 (3) 생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일 수가 없다.


그런데 위에서도 따져봤지만 52시간의 근로시간을 채운다면, 사실 그 환경에서도 우리가 과연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일하는 것인지를 모를 정도로 일을 하게 된다. 사실 매일 8시에서 9시, 아니 만약 저녁을 먹고 그 시간만큼 늘어난다면 9시에서 10시 사이에 퇴근하고 집에 10시에서 11시 사이에 도착하게 되면 회사원들은 토요일 오전에서 이른 오후는 또 뻗을 수밖에 없는데 그 정도 환경은 최소한 만들어주자는 것이 왜 논란이 되어야 하는지가 이해가 안 되는 건 왜일까?


주 52시간 근무제 얘기가 나온 이후에 몇몇 기사나 포스팅들이 '직장인들이 일찍 퇴근해도 뭘 해야 할지를 몰라서 TV를 보거나 늘어진다'는 식의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보고 솔직히 매우 당혹스러웠다. 그건 사람들이 뭘 할지를 몰라서가 아니라 52시간 근무를 할 경우 퇴근하고 나서 뭔가를 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지 뭘 할지를 몰라서가 아니다. 6시에 퇴근해서 집에 7시에 도착한다면 운동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8-9시에 퇴근하면 그럴 시간도 에너지도 없는 게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매일 6시 퇴근을 보장해줘보면 알 것이다. 1달 정도만 지나면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만의 여가시간을 즐기는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일단 그렇게 해줘보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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