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내려올 것을 왜 가냐고?

by Simon de Cyrene
등산을 왜 할까?

장기하와 얼굴들의 마지막 앨범. 그중에 '등산은 왜 할까'란 곡을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등산에 대해서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에. 사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각은 모두 비슷하지 않을까? '어차피 올라갔다 내려올 걸 뭐하러 그렇게 힘들게 가?'라는 생각.


나는 거의 평생을 그렇게 생각해 온 사람이다. 그게 조금 덜 해졌을 때는 '사람은 모두 다르니까' 정도로 그걸 인정했던 것 같다. 걷는 건 정말 좋아하지만 사실 등산만큼은 내게 이해가 되지 않는 행위의 대표적인 예에 해당했다. 그래서 주말마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2박 3일은 떠나는 것처럼 차려입고 산으로 몰리는 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았다. 주말이면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게 짜증 나기도 했다. 운동을 하러 간다면서 왜 내려와서 막걸리는 드시는지... 그 분들에 대해서 이해되는게 많지 않았다.


등산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내가 최근에 등산화를 샀다. 등산을 가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오래 걷기 위함이기도 했다. 러닝화를 신고 1만보에서 1만 5 천보 정도를 주 3-4회씩 걸었더니 발목이 아프기 시작해서 목이 높은 신발을 신고 집 뒤에 있는 작은 산,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산의 둘레길을 걷기 위해서. 벼르고 벼르다 등산화를 샀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재수생활을 끝내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약 1달 정도를 거의 매일 산에 간 적도 있었다. 집에서 멀지 않은 불암산으로. 하지만 그때 내가 등산을 간 것은 살을 빼기 위함이었지 등산이 좋아서가 아니었고, 그래서 정말 자발적으로 등산을 가고 싶어서, 숲을 거닐고 싶어서 등산화를 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을 때도 산악 코스는 고통스럽게만 기억에 남아있기 때문에 내게 등산이 그렇게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3-4주 정도, 무리하지 않고 등산을 하기 시작했더니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사실 처음에 등산화를 신고 산자락에 가기 시작했을 때는 후회가 가득했다. '왜 이런 고생을... 몇 달을 그렇게 걸어도 이렇게 힘든 건 왜인가...'라는 생각이 하나 가득. 그리고 장얼들의 노래처럼 '등산은 왜 할까?'라는 의구심이 내 머릿속을 한참 동안 맴돌았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주 2-3회 정도는 산자락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단 하나. 등산화를 샀기 때문이다.


그렇게 산을 가기를 며칠.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서인지 몸이 빨리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몸이 적응하자 힘들어서 허덕일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더라. 도심을 떠나서 숲 속을 거니는 느낌. 가끔씩 보이는 청설모와 다람쥐. 조금씩 위로 갈수록 다르게 보이는 속세(?)의 풍경들. 난 이제 그 느낌, 그 풍경들이 좋아서 산을 찾는다. 어떤 사람들은 정상에 가기 위해서 등산에 간다고 하지만 그건 나 같은 날라리(?)에겐 해당사항이 아예 없는 말이다. 3-4주 동안 내가 정상까지 간 건 한 번뿐이었으니까. 난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적당한 선에서 산속을 거닐다 내려온다. 정상 정복이 내 목적이 아니기에.


목적과 과정

그 과정에서 어쩌면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장얼들의 시선도 어쩔 수없이 '목적지향적인' 우리 사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이는 '어차피 내려올 텐데 등산을 왜 하냐'는 것은 '등산은 정상을 가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사실 현대인들에게 등산은 단순히 정상을 가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상'만을 목적으로, 또는 '운동'을 목적으로 등산에 간다. 하지만 그중에도 상당수는 등산 그 자체가, 산에 오르는 과정 자체가 좋아서 가기도 한다. 도심에서 찌들어 있다 그것을 mother nature에게서 위로받고, 치유받기 위해서.


장얼들의 비판도, 등산을 왜 가냐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비판을 하는 것은 모든 것을 '목적'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네 인생들은 목적 지향적으로 보기보다는 과정으로써 접근하고 바라봐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목적지향적인가? 최근에는 그나마 다른 흐름이 생기기는 했지만 올림픽에서는 항상 금메달을 따야 하고, 메달을 따지 못하면 나가는 이유가 없는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있지 않았나? 사실 올림픽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그것을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그 대회에 참여하는 그 경험 자체에도 의미를 두고 즐거울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인생을 '목적'이 아니라 '과정'으로 접근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목적이 중심이 되는 인생은 그 끝에 남는 것이 없는 반면 인생을 과정으로 접근하면 버려질 순간들이 아예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서 발끈할지 모르지만 이는 잠시만 앉아서 고민을 해보면 너무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문제다. 우리가 '목적'을 인생 중심에 둔다고 치자. 그렇다면 인간은 A라는 목적을 달성하면 그에 안주할까? 아니다 그 이후에는 또 B라는 목적을 설정하고 달려갈 것이고 그 과정에서 A를 달성한 것은 잊힐 것이다. 그 이후에는 C, D, E... 등의 목적이 생길 것이고 그때마다 자신이 이룬 과거의 목적들의 의미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목적을 하나 달성하지 못한다고 치자, 그 사람의 인생에는 무엇이 남나? 자신이 속한 조직의 CEO가 됐다고 치자. 그 영광이 얼마나 갈까? 그 영광이 역사에 기록될만한 것이 아닌 이상,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가 세상에 잊히고 그 성취 또한 제한된 기간 동안만 유지된다. 그리고 어지간한 성취가 아니고서는 그 사람의 이름은 20-30년만 지나면 잊히게 되어있다. 당신은 우리나라의 1대 대법원장, 법제처장, 국회의장이 누군지 다 알고 있나? 2대는? 3대는? 제1대 국회의 국회의원의 이름은 몇이나 알고 있나? 그들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게 100년도 되지 않았는데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이 누군지 기억도 못한다. 하다못해 지금 10-20대들 중에서도 90년대에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HOT를 모르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그보다 덜한 성취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잊힐 수 있단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인생의 모든 '과정'에 의미를 두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그 사람의 삶에 쌓인다. 과거에 했던 경험, 만났던 사람들, 시도했던 일들이 모두 그 사람의 일부가 되고, 자신이 목적했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했던 경험이 그 사람 안에 남아있게 된다. 그런 것들이 많이 축적될수록 개인의 삶은 풍성해지고, 그렇게 삶이 풍성해질수록 그 사람의 인생에 추억도 늘어나게 되며 추억이 많을수록 그 사람의 삶이 더 행복해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땅에 무엇을 남긴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내 이름을 남이 기억한들 무엇할까? 그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는 건 다 내가 죽은 이후이고, 내가 그로 볼 수 있는 이익도 없고 그로 인해 행복감을 느낄 수도 없지 않나? 그래서 난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보다 우리가 사는 동안 모든 과정에서 의미를 찾고 그것을 기억으로, 추억으로 남기는 것이 개인의 삶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등산 역시 마찬가지다. 정상까지 가지 못해도, 않아도 된다. 그 과정에서 내가 행복하고, 편안해지고, 건강해질 수 있으면 되는 거다. 등산은, 그래서 가는거다. 그 과정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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