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가 달라질 거라고 믿는 순수함은 없지만서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정확히 '안 쓸 수 있는 상황에서 안 쓰기로' 다짐했다. 어제 하늘이 너무도 맑았던 탓이다. 거의 한 달간 짙은 스모그가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는 세상이 우울함만 가득했던 것 같은데, 맑은 하늘을 오랜만에 보니 그저 기분이 좋았다. 인간이 기분이 좋아지려고 무수히 많은 노력을 한다지만, '하늘이 맑다'는 것만으로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있다는 걸 알고는, 하늘이 조금이라도 맑을 수 있게 노력하기로 한 것이다.
신문을 읽다가, 이런 제목의 칼럼을 발견한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하다. "미세먼지에만 분노하는 건 위선적이다*". 삶의 양식 자체를 자연친화적으로 바꾸지 않고 미세먼지를 정부 탓, 중국 탓만 하는 건 위선적이라는 내용의 칼럼이었는데, 사회 문제의 결과를 개인에게 떠넘기는 거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한 내용이지만, 개인적으로 중국을 욕하며 가성비 좋은 중국산 제품들을 찾아 스마트폰을 뒤지고 있는 나를 한심하게 느끼고 있던 탓에, 이 칼럼이 유독 와닿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일회용품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해봐야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얼마 없다. 사무실에서 종이컵 안 쓰기. 마트에서 봉지 안 받아오기.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컵 안 받기. 일회용 비닐팩 안 쓰기. 물티슈 적게 쓰기. 배달음식 받을 때 일회용 젓가락 받지 않기. 이 정도 따위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박한 것들 뿐이지만,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실 어제 다짐한 후에도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받았으니 말이다. 아주 당연스럽게 받아든 나를 보니, 일회용품을 쓰고 버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 사회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를 인식하며 살기는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자연, 환경 같은 거대담론을 다룰 때, '나'라는 개인은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마련이라, 도통 혼자서 어떤 행동을 해볼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또 환경 이슈가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경향도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환경운동을 하려면 집단에 가담하거나, 집단적 목소리에 동참하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 또한 스스로 '환경운동가'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생활 속에서 자신의 불편을 감내해가면서 하루에 하나라도 일회용품을 줄이는 사람 모두가 환경운동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는 모두가 환경운동가가 되어, 자신의 탐욕을 조금씩 줄여나가기 시작할 때, 중국의 공장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게 될 것이고, 그러면 하늘은 조금 더 맑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