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끊어내야 할 비극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을 읽고

by 레메디오스

요즘 뉴스 제목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리고는 한다. 지난해 딸을 출산한 이후로는 더 그렇다. 연일 쏟아져 나오는 아동학대 기사들을 보며 눈물짓곤 한다. 고작 9살짜리 아이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에 갇혀 학대 받다가 목숨을 잃었고, 계부의 성추행으로 고통 받던 12살짜리 아이는 결국 그 계부의 손에 목 졸려 세상을 떠났다. 10살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을 피해 달아나며, 살기 위해 비명을 질러댔다.


지난해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학대피해아동보호현황」 통계정보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지역아동보호전문기관에 학대로 신고 접수된 사례는 24,604건에 달한다. 2001년 이후 무려 10배 가까이 늘어난 이 사례 속 가해자들은 76.9%가 친부라고 한다. 훈육이라는 이유로, 아이가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너무도 쉽게 아이들의 마음과 몸을,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이 책, 『아동학대에 관한 뒤늦은 기록』은 아동학대로 인해 짧은 생애 다 살아보지도 못하고 별이 되어버린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한겨레신문의 기자들이 기록한 총 263명의 아이들 안에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아동 학대 범주에 포함되는 112명 외에도 이름도 갖지 못한 신생아 살해 59명, 동반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된 ‘상해 후 자살’ 92명”이 더해졌다.


이 책에는 피해 아동들의 다양한 사연이 나온다. 마이쭈가 너무 먹고 싶어 새벽에 울며 졸랐다는 이유로 친아버지에게 수 시간 동안 폭행당하다 사망한 아이, 이유도 모른 채 다락방에서 친부와 계모에게 학대 받으며 굶어죽어야만 했던 아이, 13살 때까지 화목한 가정 내 구석에 방치당한 채 그 어떤 돌봄도 받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간 아이까지. 그리고 이렇게 1~2주에 한 번 꼴로, 매년 평균 37명이 고통에 내몰려 목숨을 빼앗긴다. 64.7%는 신체적 학대, 31.4%는 방임이다. 피해자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끈 떨어진 인형처럼 어른들의 취급에 속수무책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아동학대란 한층 더 악랄하고 끔찍하다.


책에 따르면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몇 가지 전형적인 특성이 나타난다. 친부모, 한두 살짜리 아이, 충동성이 그것이다. 계모에 의해 긴 시간 동안 잔혹하게 학대당하고 살해당하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고 한다. 그보다는 1~2세 전후의 아이들이 친부모에 의해 ‘충동적으로’ 살해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각종 전래동화를 통해 의식 속에 축적된 의붓부모 학대 서사는 결국, 극히 낮은 빈도의 허구일 뿐이다.


이들은 왜 자신의 피와 살로 빚어진 아이들을 학대하는가. 이 책은 ‘가부장적 혈연주의’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한국사회에서 아이란 아직까지도 부모의 소유물로 간주되는 경향이 크다. 가정 내에서 아이의 못된 버릇을 고친다는 이유로 가혹한 학대가 이루어져도, 주변의 관여가 어렵다. “길거리에서 아이가 어른에게 호되게 혼나거나 맞고 있어도 남의 가정사라며 신고를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연하다. 주변의 신고에 의해 잠시 가해자와 피해아동이 분리되더라도 친권의 행사로 다시 피해 아동은 가해 현장으로 되돌아오고 만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하고 나면, 나는 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극을 막을 방법이 진정 없었을까. 부모가 보호하지 않는 아이들을 사회가 지켜줄 수는 없었는가.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사회복지사가 처한 현실 또한 가혹하다. 전국의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대부분 굿네이버스, 세이브더칠드런 등 비영리 민간기관이 위탁받아 전담한다. “국가의 책무가 사적 영역에 위탁”되어 있는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의 과중한 업무도 문제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전국 사회복지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동학대 사례 관리자들은 1인당 평균 64건의 사례를 맡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제시 기준인 32건, 굿네이버스 제시 기준인 20건에 비해 터무니없이 많다. 심지어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강제로 떼어놓을 행정적 권한도 부족하다. 업무는 너무도 많은데 권한은 없다보니 수박 겉핥기식 모니터링 외에는 제대로 된 학대 예방 및 아동 보호가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 미국과 호주는 24시간 아동학대 긴급전화를 운영하며, 아동학대 전담경찰이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과 매일 상주한다. 학대 받은 아동이 발견되면 즉각 부모로부터 격리하여 위탁가정에서 보호토록 한다. 아이가 이후 가정에 복귀하더라도 해당 부모가 양육능력 또는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친권박탈 절차를 밟는다. 영국도 아동보호를 위하여 중앙과 지방정부가 강력한 연계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으며, 부모가 정서적 학대를 할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신데렐라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에서 어린 시절 정서적 학대를 받은 아이가 성장하며 어떻게 망가지는지 본 적이 있다.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버림받을까봐 매순간 불안에 시달리고, 피해의식에 함몰되어 타인까지 상처 입히기도 했다.


책 속에서 만난 아이들 중 한 생존자를 기억한다. 누나가 계모와 친부의 학대와 방임 끝에 아사한 후 본인 또한 죽을 위기에서 구조된 아이. 그는 또래 아이들의 서너 배는 먹어야 겨우 직성이 풀릴 만큼 식탐이 강했고, 물건에 대해서도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 누군가 자신의 물건에 잠시 손이라도 대면 하루 종일 씩씩거리며 잠도 이루지 못하곤 했다.


“학대 받은 아이들은 매일 같이 예측 불가능한 부모와 함께 지내다보니까 불안이 강하고, 너무 부당한 일을 당하다보니 분노 조절이 안 됩니다. ‘엄마, 아빠가 날 보호해줄 거다’라는 ‘안전지대’로서 집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항상 결핍에 시달리는 거죠.” 아이는 무사히 성인이 된 이후에도 문득문득 피어오르는 분노에 시달리며 괴로워하고 있다. 괴로워만 하다 끝내 먼저 가 버린 누나를 떠올리며 죄책감에 눈물짓는 나날 또한 현재진행형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뒤늦은’ 기록이 있어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아이의 무덤 앞에 앉아 울며 다음만을 기약한 후 망각을 반복할 것인가. 짧은 분노와 비판에 불타오르다 사그라지면 다시 또 피해아동이 발생하는 이 비극의 사실을 단호히 끊어내야만 한다.


이 글을 완성하던 날 어머니의 방치 아래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두 어린 형제가 라면을 끓이다 화재 속에 정신을 잃었다. 고작 10살의 형은 8살 동생을 지켜내고자 이불로 동생을 돌돌 감싼 후 꼭 껴안고, 뜨거운 화염에 온몸을 내밀었다. 이 아이들은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세 차례 이상 있었다. 그러나 보호의 손길은 친권에 가로막혔고, 결국 아이들은 뜨거운 불길 속에 갇혀야만 했다. 우리는 언제쯤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을까.<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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