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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메디오스 Apr 21. 2021

'누더지' 아저씨에게

짧은 소설

 그는 ‘누더지 아저씨’라고 불렸다.  


 대충 두더지처럼 생긴 얼굴에 누더기를 입고 다닌다며 붙여진 이름으로, 몇 백 년 된 버들나무가 을씨년스럽게 가지를 흔들곤 하는 낡은 기와집에서 홀어머니와 사는 사람이었다. 나이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아마 40대 초중반 즈음이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대개는 풀어진 얼굴로 헤실헤실 웃고 있어 어린 티가 났으나, 자세히 보면 이마에 패인 주름살, 검버섯처럼 얼굴에 피어오른 까맣고 큰 점들, 그만큼이나 어두운 피부가 나이를 더한 탓이다. 하는 일 없이 마을 여기저기를 쏘다니는 그는 어느 시골 마을이나 아파트 단지에서 한 명쯤 있을 법한 불행의 마스코트 같은 존재였다. 


 누더지 아저씨에 대한 뒷이야기는 무성했으나, 실상은 누구도 말하는 이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사고로 잃은 충격으로 바보가 되었다더라, 큰 사고를 당해 머리를 다쳤다더라 하는 소문들만 떠돌았을 뿐이다. 나는 그저 온갖 불행 서사를 쏟아 부은 존재라는 생각에 측은함을 느끼면서도, 그래도 껄끄럽고 무서운 기분에 내게는 가까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경계심을 가졌다. 가끔 길에서 마주칠 때면 내게 웃어주는 그 해맑은 얼굴에 불편한 미소로 응답하며 목례하는 게 다인, 그런 관계였다. 


 당시 나는 극심한 철분 결핍성 빈혈을 앓고 있었다. 버스나 지하철, 길에서 갑자기 쓰러지기도 여러 번이었다. 한 번은 야학강사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철분 수치가 4.3으로 정상 범위인 12보다 현저히 낮아 퇴원을 금지 당했을 정도였다. 


 처방 받은 철분제를 꾸준히 먹고, 콩이니 두부니, 바나나니 소고기니 철분이 많은 음식들을 날마다 섭취하고, 스트레스 경감을 위한 명상, 요가 활동도 활발히 진행했음에도 빈혈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일상 속 소소한 스트레스들의 축적에 지친 나는 할머니께서 혼자 사시는 전라남도 해남의 어느 마을로 도망쳐 들어오고 말았다. 


 매일 새벽 3시, 4시까지 책과 스마트폰을 뒤적이며 뒹굴다가 잠들어 정오가 다 되어서야 일어나 밥을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생활, 생각 날 때마다 방 안에 굴러다니는 과자 부스러기, 빵 덩어리들을 주워 먹고, 나도 모르게 낮잠 들었다가 깨자마자 저녁 식사를 하는 일상이 며칠 간 이어졌다. 뇌도 몸도 살찌는 기분이 낯설면서도 걱정, 스트레스 따위 없는 이 순간들이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시골 요양을 하나 보다, 이대로 눌러 살까-실없는 생각들도 즐거웠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책에 나선 어느 날, 논두렁 옆길을 걷던 중 조금씩 아랫배가 시큼한 느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가슴 밑으로 답답한 느낌이 밀려와 구역질이 나려는 때 기절의 전초임을 직감하면서도 다리에 힘이 풀리는 느낌을 끝으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 간 시간이 지난 후 깨어난 곳은 병원이었다. 할머니께서 내 머리맡에 앉아 내 머리를 쓸어주시며 “아이고, 다행이제…. 다행이제….”라는 말만 대뇌고 계셨다.      


 “할머니, 나 어떻게 여기 왔어요?”

 “버드나무집 아들내미가 데려왔제….”     


 길바닥에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한 누더지 아저씨가 곧장 나를 등에 업고는 수 킬러미터를 달렸다는 것이다. 택시조차 다니지 않는 작은 시골마을인데다 그날따라 지나다니는 트럭이나 경운기도 없어, 누더지 아저씨는 마을 입구와 연결된 도로에 닿을 때까지 그 마른 몸으로 나를 업고 다리를 후들후들 떨며,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지도 못한 채 죽을힘을 다해 걷고 뛰었더랬다. 도로로 나온 뒤에도 택시를 잡지 못해 한참을 더 걸으며 헤매다가, 순찰을 돌던 경찰차에 오르고서야 겨우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병원에 도착한 후 내가 병상에 눕고 나서야, 아저씨도 긴장이 풀렸는지 쓰러져 버렸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아저씨가 누운 병상 옆에 섰다. 아저씨는 세상에서 제일 홀가분하다는 듯 입을 헤 벌리며 곤한 잠 속에 빠져 있었다. 내가 그렇게나 무시하고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며 내심 경멸했던 사람, 그의 진정한 모습을 이제야 확인한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환멸이 나를 휘감았다. 아저씨가 누운 자리 옆에 벽을 기대어 앉으며, 아저씨가 눈을 떠서 처음 보는 얼굴이 나였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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