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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_저마다의 사연으로 n수를 시작한 청춘들에게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재필삼선 사가오운’


언뜻 보면 고사 성어 같아 보이는 저 구절은 수능 국어 문학 문제를 하도 풀다 보니 해학의 개념을 본인에 비추어 볼 능력이 생긴 수험생들의 비애가 담긴 자조적인 줄임말입니다. 첫 문장부터 수능 해설스럽죠? 저도 살다 보니 수능과 의도치 않게 불편한 동행을 이어온 n수생이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처음 들어보신 분들을 위해 풀어보자면,


‘재수는 필수요. 삼수는 선택’, ‘사수는 가슴이 시킨다. 오수는 운명’(자매품으로 만들어 보자면 ‘육수가 흐르는 머리’, ‘칠수부터는 교육과정이 바뀐다’ 등이 있습니다.)


말하는 사람마다 단어가 미묘하게 바뀌곤 하지만, 위 줄임말이 담고 있는 바는 결국 ‘올해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나는 더 나은 삶을 향해 한 번 더 달린다.’ 일 것입니다. 본인이 수능장에서 한 실수와 평소 수험생활에서 반복하는 실수에 물리적인 시간을 더해서 더 나은 성적을 받겠다는 청춘의 엄청난 결심이죠.


물론 다시 한다 해도 계속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지? 분명 x월 5일이었는데 왜 지금 x월 25일이나 된 거야?’ 이런 생각을 매달 반복하게 되고 그래서 한 해는 너무나도 짧고 나이만 먹는 느낌이 들 수 있으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목이 울렁이는 기분이 드는 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노력을 하기엔 분명 충분한 시간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19살이라는 미성년자와 성인의 경계에서 만족할 수 없는 결과를 마주한 성인 새내기들은 20살, 그것도 다들 꽃다운 청춘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20대의 10%를 더 쓰기로 재수를 결심하곤 했죠. (저도 이래서 수능을 한 번 더 치기로 했고 처음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이성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힘들었습니다. 물론 후에 설명하겠지만 여러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2차 마지노선의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대학 생활을 조금이나마 즐기고 2학기 휴학 반수로 대체하긴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특히 체감하고 있는 부분은 몇 년 전부터 n수생들의 연령대는 기이할 정도로 다채로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학 레벨에 상관없이 다니던 대학을 걸어놓고 20대 초중반에 재도전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한 직장인들도 끊임없이 유입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세대를 거듭할수록 어렵게 취준생을 거쳐 대기업에 들어간다 해도 직업 안정성을 보장받기는 힘든 현실이죠. 그래서 고등학교 공부로 회귀해 그나마 안정적인 전문직을 도전해야 하는 상황을 직면한 것입니다. 나이로는 장수생이라 부담스러워도, 퇴근 후에 피곤한 몸과 정신이라도 억지로 이끌어서 틈틈이 공부하고 여러 번의 수능을 거듭해서 전문직 계열의 대학 학부부터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수험생들이 점점 늘고 있죠. 그들이 학창 시절이나 취업 준비를 게을리한 부류는 절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게으른 사람들은 지금도 본인의 미래를 알아서 끊임없이 개척해야 살아남는 세계가 있다는 것도 외면한 채 당장 눈앞에 놓인 쾌락만 추구하고 있겠죠. 대기업 직장인들이 전문직을 갈망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들의 몇 년 후배인 대학생들 역시 ‘나도 취업 준비보다는 더 늦기 전에 전문직 면허를 취득할 수 있는 과를 다시 들어가야겠어.’라고 조급하게 느끼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상사의 현재 모습을 보면 본인의 미래 모습의 윤곽을 그려볼 수 있는 것은 회사 밖에서도 통하는 진리이니까요.


‘남들 신경 쓰지 않고 본인 공부만 하면 되는 1년이다.’


사실 지금 공부하다 지칠 때마다 이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 저나 앞으로의 대학 입시를 앞둔 여러분이나 저 문장 하나 그대로 생각하고 실행하면 성공한다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나, 적어도 제가 겪어보니 내 의지와 상관없는 외부와의 접촉으로 인해 안 그래도 학습 때문에 예민한 상태에서 내 앞길에 쓸데없이 반기를 들려하는 사람들의 훈수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이게 좋고 앞으로의 밥벌이를 생각해 보니 이만한 길이 없을 것 같아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청춘의 시간을 갈아 넣어서, 나도 억울해 죽겠다. 그러는 당신들이 얼마나 잘났는데 나한테 훈수나 두나? 내 꿈을 이전 세대에서 이룬 사람이면 충고로 듣겠지만, 그것도 아니면서 왜 비난만 하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본인 자식들도 마음대로 키울 수 없는데 남의 자식인 나한테 관심이 왜 그리 많지?’


저는 자아가 생기는 유년 시절부터 20대까지 살아오면서 진심으로 ‘남한테 신경 쓰지 말고 나한테만 집중하자.’라고 셀 수 없이 반복했지만, 여전히 유리 멘탈이라서 남이 아무런 생각 없이 한 마디만 툭 던져도 큰 상처를 받고, 공부를 하다가도 계속 생각나고, 그 말을 던진 사람은 본인이 상처를 줬다는 사실도 잊고 잘 살고 있을 때쯤에도 저 혼자 생각나서 밤잠 못 이룰 정도로 큰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고, 때때로 억울할 정도의 큰 상처를 받고 있습니다.


제가 진짜 망나니처럼 인생을 막살았으면 덜 억울하기라도 하는데,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해 온 사람인데 남들이 나를 알면 얼마나 잘 안다고 나를 깎아내리기 바쁘나 항상 서러웠습니다.


그렇게 제가 주변인 때문에 무너져 내린 것만 같고, 더 이상 달릴 수 없을 것만 같을 때에도, 반대편에서는 저를 진심으로 도와준 은인들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도 제정신으로 공부와 글쓰기를 병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제 곁에 남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제가 여태까지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회고해 보자면,


제가 여러 가지로 힘들었을 때, 중학교 친구 중 하나인 A는 전화로 제 고민 내용을 다 들어주더니 자신이 얘기 더 들어주면서 밥이라도 사줄 테니 당장 밖으로 나오라고 저를 근처 버거킹으로 불렀습니다. A는 수시로 일찍 대학을 합격하고 번화가에 한 뷔페에서 1년 가까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독립적으로 본인 용돈도 쓰는 상황이었어요. 제 현역 시절 수능 초콜릿도 보내준 참된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저는 너무 고맙고도 미안해서 키오스크 앞에서 제가 계산하려고 카드를 넣으려 하자 A는 저를 밀어내며 ‘내가 사줄게. 기분 안 좋을 때는 맛있는 거 먹는 거야. 원래 얻어먹으면 더 맛있어.’라고 말하고 정말 햄버거를 사줬습니다. 그 버거킹 지점은 하교 후에 친구들끼리 종종 오던 추억의 장소여서 A와도 자주 와서 먹었는데, 그날 A가 사준 햄버거가 여태까지 먹은 햄버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습니다. 그때 A는 햄버거를 같이 먹으면서 저를 잘 아니까 해줄 수 있는 모든 말은 다해줬다고 생각됩니다. 후에 카페도 가고, 노래방도 가서 친구로서 도와줄 수 있는 최선을 다해줬습니다.


다른 중학교 친구 하나인 B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대학을 다니면서 주말에는 편의점 알바를 했습니다. 본인 일로 피곤할 법도 한데 다음날에 시간표가 여유롭다고 바로 저를 불러서 피자와 파스타를 사줬습니다. 계산서를 직원에게 건넬 때, 친구의 도움을 받은 건 저였으니 제가 사겠다고, 아니면 반반이라도 나누자고 했지만, B가 절대 본인이 내야 한다며 직원에게 카드를 건네고 저한테 ‘내가 용돈 없을 때 너한테 빌린 것도 있고, 그때마다 갚긴 했지만, 네가 학생 때 뭐 먹으러 가면 많이 냈어. 그래서 언젠가 갚고 싶었어. 그리고 A도 햄버거를 사줬다니 질 수 없지.’라고 약간의 농담을 섞어 말했습니다. 저는 사람 간에 있었던 일들을 아주 잘 기억하는 편이라서 안 좋게 끝난 일이라면 혼자 쓸데없이 계속 생각하고 괴로워할 정도인데, B가 돈 문제로 저하고 그런 일이 잦았더라면 저는 절대 못 잊었을 겁니다. 근데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B가 제때 갚고 절대 빚지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 밖에는 말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그런 성격을 가진 친구니 제가 졸업하고도 몇 년 동안 믿고 의지하면서 연락하고 이렇게 본인이 힘들게 번 돈으로 밥도 사주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이 외에도 멀리 있어서 당장 만날 수는 없어도 시간 날 때마다 전화로 도와준 정말 고마운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인간관계가 남아 있었기에, 재수 생활 동안 세상의 모든 지표가 저를 부정하는 것 같고 자기 의심마저 들 때마다 다시 공부를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두 번째 수능이 한 달 조금 더 남았을 때는 역대 저의 담임선생님들 중에서 저를 제일 잘 아시는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께서 밥을 사주시며


‘지금이 제일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지 않아? 원래 여태까지 배웠던 걸 총정리하는 아주 중요한 시간인데 마음이 복잡하지? 그럴수록 이 책, 저 책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지금 눈앞에 있는 내용이 나오든 말든 여기에만 집중한다 생각하고 가야 해. 선생님이 임용 칠 때 그렇게 못 했기 때문에 전날에 마음이 복잡해서 합격을 하긴 했어도 평소보다 못 봤어.’


‘너는 다른 사람들보다 진로 고민이 몇 배는 많은데 밀어붙이는 힘이 약해서 집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해라 이렇게 풀어주기보다는, 우리는 너한테 여기까지만 해줄 거다 이렇게 제한을 두면 더 잘할 거야.’


‘근데 확실히 1년 더 했으면 너도 모르게 많이 늘어 있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렇게 저를 통찰력 있게 봐주시는 분의 말씀을 듣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직후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분이 연차도 높으신 만큼 학생들을 관찰하고 파악하는 것에 능숙하셔서 전적으로 믿음이 가는 것도 있었으나, 제가 15살일 때부터 많은 도움을 주셨고, 오랜만에 연락을 드렸을 때도 당시 제가 어떤 학생이었는지 배경까지 생생하게 기억하고 계셔서 더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단순히 재수를 하는 저를 비난하려는 의도를 가진 이들과는 판이했으니까요.


여러분도 이런 은인들이 주변에 있으신가요? 이제 막 달려 나가려는 참에 내 온몸에 찬물을 끼얹어 앞길마저 흙탕물로 만들어 버리는 인간의 탈을 쓴 악마들 사이에서 수건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는 사람이 있나요? 한 명쯤은 머릿속에 떠오르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할 겁니다. 떠오르지 않아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나 싶어도 괴로워할 필요 없습니다. 저도 처음 재수를 시작할 때는 비난의 찬물에 덜덜 떨기만 하면서 제 주변에 아무도 진심으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면서 혼자 괴롭기만 했거든요. 마음이 응어리져서 눈물이 날 것만 같고, 막상 첫 눈물 한 방울이 일렁여 시야를 가리다 못해 옆얼굴을 타고 내려가 떨어지는 순간, 어김없이 터지는 울음에 더 서러워지고 그랬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나 혼자인 것만 같았던 느낌, 그것은 제 착각이었습니다. 저도 원래 주변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서 혼자서 끙끙 앓다가 도저히 안 되겠을 때 고민을 터놓는 편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제 자신이 너무 의존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 다른 방향으로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앞서 편의점 알바를 한다고 서술한 친구 B가 문자로


‘인간관계로 너무 스트레스받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너에게는 힘들면 너를 도와줄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 사람들에게 의지해도 돼. 또 재수 실패해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지금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실패해도 너에게 실패할 기회가 아닌 성장해 볼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는 게 어때?’


이렇기에 제가 주변인에게 의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역시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저만 고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고민을 말하면 상대방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경험이나 지금 힘들어서 저한테 말하고 싶은 또 다른 고민을 서로 터놓을 기회가 되었거든요. 그 기회로부터 일방적인 의존이 아니라 서로 거울처럼 살펴봐주는 유대관계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지금은 혼자 동떨어진 것 같아도 상관없습니다. 미친 듯이 앞으로만 달려가는 지금 뒤를 한 번만 돌아보세요. 뒤를 돌아봤는데도 아무도 없을까 봐 무섭다면 후에 만날 제 얘기를 읽어봐 주세요.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주변의 도움을 구하기는 무서워서 혼자 괴로워할 때, 혼자서도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볼 수 있고 대화하는 느낌의 책이 제가 재수하는 동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맞이할 현실에 두려워하지 말고, ‘어차피 글을 읽는 것이니 국어 영역 독해력에 도움 되겠지. 경험담이나 한 번 들어보자.’라고 안심하고 제 얘기에 함께 해 주세요.


우산이 모든 빗방울을 막아줄 수는 없지만, 감기는 안 걸리게 할 수 있습니다. 비가 오면 잠시 펼쳤다가 해가 뜨면 접고 혼자 나아가면 됩니다. 그리고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햇볕에서 뛰어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다가올 11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5시쯤에 저도 여러분도 후련한 마음으로 수능장을 나오길, 후에 따라가야 하는 입시 일정도 무사히 끝내길, 최정상에서 몸과 마음도 건강히 만나길 고대하며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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