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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Feb 07. 2023

엄마한테 MBTI를 알려줬다

유행에 뒤처지지 않도록

 자영업자 우리 부모님의 전화는 주말에도 울린다. 거래처분들이 휴일을 헷갈리시는 경우도 있고, 급해서 양해를 구하시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하나’가 쌓여서 우리 부모님한테는 ‘주말 내내’가 된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는 웹툰 ‘내과 박원장’의 드라마가 나와서 엄마랑 같이 봤었다. 거기서 365일 24시간 야간 진료에 관한 딜레마를 보고 엄마랑 많이 웃었다. 우리 엄마의 삶과 많이 닮았으니까.


 불경기에도 거래처 손님들께서 우리를 찾아주셔서 일거리가 있다는 사실 자체는 정말 감사하지만, 아침 6시 50분부터 연휴 이틀 전 밤 10시 전화는… 그 정도로 다채롭다.


 그나마 이번 설 연휴는 여유로웠다.


 “아우, 엄마! ㅇㅇ(필명25)이가 항상 정리하고 살자고 했지요? 물티슈 이거 한 번 썼으면 어차피 다시 못 써서 말라비틀어지는 거 바로 버리라고 했잖아요! 왜 문 밑에 넣어놔서 시트지 우글우글하게 만들어가지구.”


 “어이, 저 고양이 세 마리가 집안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은 싹 뜯어서 문 다 해진 거는 생각 안 하나?”


 “그건 어쩔 수 없는데, 이거는 쓰레기통에 제때 넣으면 되는 문제잖아. 나무가 썩는다구. 하, 우리는 너무 안 맞아. 아! 엄마 MBTI 알아?”


 “알지. 그거 I뭐시기 하는 거 아이가?”


 “어? 엄마가 어떻게 알아?”


 “‘나 혼자 산다’에 나온다이가. ‘MBTI가 뭐예요?‘ 하드라.”


 “엄마는 이때 아니면 시간이 없으니까 지금 당장 하자! 내가 카톡으로 링크 보내줄게.”


 나도 MBTI 맹신론자는 아닌데, 우리 모녀가 왜 이렇게 안 맞는 데에 학술적인 이유가 있지는 않을까 알고 싶었다.



 “이게 그 검사가?”


 “응. 근데 그거 좀 많이 길어. 10분 넘게 걸릴 거야.”


 “보자…”


 엄마가 검사를 한참 하다가 나를 째려봤다.


 “야, 무슨 선택지 고르는지 보지 말고 니 할 일 해.“


 “아, 왜?”


 ”뭐 선택했는지 지켜보고 나중에 잔소리할 때 쓸 거잖아. ‘그때 이렇게 선택했으면서 지금 보니까 아닌데? 이거 왜 여기에 놔뒀어. 더럽잖아.’하면서 중얼중얼중얼~”


 “엄마! 내가 아무리 효년이라도 그러겠어? 그냥 빨리 끝내고 보여줘.”



 “자, 이거 좋은 거가?”


 “어디 보자… ISFJ? 특징을 검색해 봐야겠어. 어… 용감한 수호자, 실용적인 조력가라는데?”


 “맞지, 맞지.”


 “음? ISFJ 부모의 특징도 있네. 헌신적이고, 전통적이고, 책임감이 있다?”


 “그것도 나 맞지. 응. 응.”


 “아! 이거 딱 엄마야. 읽어줄게. 부모의 보호가 너무 지나쳐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고 벗어나고 싶다고 느낀대. 그래서 부모가 자신과 자식을 각각 독립된 인격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대.”


 “나는 애가 제~발 좀 독립해서 나갔으면 좋겠는데, 저 고새끼들이랑 세트로 나갈 생각을 안 하더라고?”


 “끄응…”


 “어, 크흐으음. 제발 집에서 꺼졌으면 좋겠다. 야, 니 나중에 자취할 때 저놈들 다 데리고 나가라.”


 “아무튼… 엄마가 이제 어디 가서 ‘MBTI 뭐예요?’하면 ‘ISFJ입니다.’라고 하면 돼.“



 나도 독립은 빨리 하고 싶지… 그러려면 붕어머리로 공부를 많이, 많이, 그리고 잘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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