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때도 있지만, 효년의 잔소리는 지겨워
“엄마, 그래도 강남 3구가 뭔지는 알지?”
“으음~ 일단 성북구!”
“엄마! 진심이야?”
“흐흐흐흫~ 왜 아이가? 드라마에서 맨날 부촌으로 나오잖아.”
“부촌은 맞는데, 이름부터가 ‘강남’ 3구잖아! 장난치지 말고 진짜 얘기해 봐~”
“한남동?”
“엄마!!! ‘구’ 단위잖아! 게다가 거기는 강북이야! 한남동은 용산구라서 ‘마용성’으로 묶여. 마포, 용산, 성동. 엄마 좋아하는 백현 노래도 있잖아. 한남동 ‘유엔빌리지’!”
드디어 제대하는 그분.
“아, 맞네. 그러면 강남 3구는 뭔데?”
“일단 ‘강남’ 3구니까, 강남구 당연히 들어가겠지? 그다음 서초, 송파. 이 셋이 강남 3구.”
“송파구는 어딘데?”
“롯데타워!!!!! 잠실에 있는 거. 잠실동, 가락동 등등”
“어, 그 큰 거?”
“어어~ 하… 엄마… 열심히 일해서 근로소득을 키우는 건 좋은데, 맨날 돈 벌기 힘들다~ 힘들다~ 하면 그만큼 불로소득에도 관심을 가져야죠. ㅇㅇ(필명25)이가 항상 말하잖아요. 엄마는 그냥 그 건물 매수할 때 ㅇㅇ이가 시키는 대로 해요.”
“니가 실세가?”
“지금 강남 3구도 망설이는 사람이 어느 가격이 적절한지 어떻게 알아요! 나중이 ㅇㅇ이가 매수 타이밍이랑 평당 적정 가격 찾아보고 알려줄 테니 같이 가요. 그게 엄마가 힘들게 번 돈 한 푼이라도 아끼는 길이에요. 처음부터 ㅇㅇ이가 알려주는 대로 매도하고, 대출을 유연하게 활용해서 계속 상급지 이사하고, 출퇴근 시간 아꼈으면 얼마나 좋아요. 또래답지 않게 술담배 일절 안 하고 그 시간에 부동산에 눈 뜬 딸이 바로 옆에 있는데! 물어보면 잔소리한다고 혼자서 어느 유튜브 영상에 달린 댓글만 보고, 몇 년도 가격이 정상이니 이런 말만 믿고… 옆에서 보는데 얼마나 답답한지.”
(부읽남님의 부동산 투자 수업 기초편)
시험 때문에 하는 공부를 하기 싫을 때는 그냥 교양 도서를 읽는다. 투자 경험을 읽고 있으면, 돈을 많이 벌고 싶어지고, 그러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되고, 다시 수험서를 펼칠 수 있다.
유튜브에서 재밌는 영상을 보는 시간이 때때로 필요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여가에도 포만감을 느꼈다.
N수생과 고3 현역의 차이 중에 하나다. 고3 현역이 너무 궁금해하는 세계는 N수생은 이미 12월~2월에 질리도록 빠져있었던 곳이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상을 열심히 몰아 보다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왔을 뿐인데, ‘어? 내가 방금 뭘 보고 있었더라?’라고 망각한 후에 현타가 밀려온다.
‘내가 사실 붕어 머리를 끼고 있지 않을까? 힘들었던 일은 몇 년 동안 기억하고 고통받으면서, 어떻게 1분 전에 보던 걸 기억 못 하지?’
3水붕어
그래서 정말 공부가 하기 싫을 때는 부동산 책을 읽거나, 호갱노노 어플과 유튜브 영상으로 온라인 임장을 돈다.
“내가 서울에 안 사는데 강남 3구 알아서 뭐 하는데?”
“엄마! 가전제품 하나를 사더라도 삼성이나 LG 같은 그 분야 최고 대기업에서 낸 상품을 기준으로 잡고, 그다음에 다른 어느 기업에서 이번에 낸 상품을 비교해서 이게 가성비가 좋더라 하는 거 아니야? 말 그대로 ‘가성비’를 따지려면 가격도 가격이지만, 최상의 성능에 필요한 요소 중에서 얼마나 갖췄냐가 중요하잖아. 아파트도 똑같아. 우리나라 부동산 중에 특히 아파트는 규격화/획일화되어 있잖아. 사람들이 돈만 있으면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강남 3구의 웰메이드 아파트를 기준으로 잡고, 내 예산으로 살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하는 아파트를 비교하는 거야. 입지, 구조, 교통은 기본이고, 창문 안 열어도 환기되는 공조 시스템이라든가, 대단지 아파트라서 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의 퀄리티라든가, 모든 비교의 기준이 강남 3구라서 꼭 알아야지.”
“그래. 이 부동산 전문가야. 어차피 니가 다 가질 건데 그자? 니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제?”
“그럼 그럼. 이게 외동의 맛아이가. 반대로 생각하면 엄마 노후에도 나밖에 없지.”
“아이고~ 내 기대도 안 한다.”
“엄마가 시어머니 기저귀 갈아드린 것처럼 ㅇㅇ이도 엄마를”
“야! 니 상속 정리하고 뒤도 안 돌아볼 거 아이가. 멀쩡한데도 요양원 넣을 거고.”
“내가 인간적으로 그렇게 매정하겠어? 할머니 손주들 중에 누가 면회 제일 많이 갔어! 요양원 들어가시기 전에도 누가 제일 많이 갔어!”
“내 말을 말자.”
신변의 위험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부모님 회사 건물 임대차 관련해서 일이 좀 있었다. 어쩌겠나 내가 을인 것을.
그래서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퇴근하자마자 나한테 부동산을 물어봤다.
“ㅇㅇ아, 임대차 보호 몇 년까지고?”
“나도 아파트 쪽만 조금 알아서 상가/건물은 알아봐야 되는데… 있어 봐. 엄마!”
“왜?”
“그 건물 용도 같은 거 정확히 어떻게 등록돼 있어?”
“계약서 확인해봐야 하는데… 사무실에 있다.”
“이게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 걸면 코걸이라서, 용도가 정확히 뭔지 알아야 임대차 보호법이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것 같아. 아파트는 2+2년 계약이라서 2년 계약했는데, 계약갱신청구권 쓰면 2년 더 보장되는 그런 거거든. 이것도 자주 바뀌고 그래.”
“나중에 알아보고 얘기해 줄게.”
며칠 후, 평소에 자주 보던 부동산 유튜브 채널(러셀님)에서 올린 영상으로 임대차 보호 내용을 확인했다.
짐 싸들고 안 나가도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실 부동산에 관한 모든 문제는 아빠도 엄마랑 다르지 않다.
“이사 좀 가자. 새집에서 털 덜 날리게 고양이들만 방 하나 만들어주고. 이제 책장도 부족하고, 컴퓨터방이랑 침대방 따로 있어서 불편해. 차라리 긴 방이 있었으면 좋을 건데.”
“회사 건물 먼저 사야지.”
“그러니까 은행에 쌓아둔 현금으로 사는 것만 방법이 아니라, 레버리지 원리대로 대출을 유연하게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거야. 다들 그렇게 해. 지금이야 금리가 높아서 망설여진다고 해도, 어느 순간 건물 월세보다 내가 건물을 샀을 때 은행 이자랑 세금이 더 싼 상황이 된다니까. 본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해야지. 부동산 호황기일 때 지금 집 매도하고 상급지에 레버리지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았어. 더 좋은 집을 사서 건물을 못 사는 게 아니고, 집을 샀기 때문에 건물을 살 수 있는 기반이 생기는 거야.”
“글쎄, 나는 부동산이 투자 목적이 아니라 거주 목적이라고 생각해서.”
“에이, 그것만큼 모순적인 말이 없어.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기 좋은 만큼 집은 비싸지잖아? ‘ㅏ’ 다르고, ‘ㅓ’ 다른 거 아니겠어? 전업투자자들도 돈만 바라보고 투기식으로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좋은 집을 샀더니 시장 원리대로 가격이 반영되더라~ 이렇게 돌아가는 거지. 이 불로소득 논리를 표면적으로 부정하는 사람이 알고 보면 돈은 더 많을 걸? 돈이 1순위라는 말이 아니라, 열등감 다 빼고 객관적으로 좋은 건 좋다고 인정하자는 말이지. 그래야 회사가 빨리 안정적으로 자리 잡잖아.”
깨어있는 사람이 아무리 말해봐야 ‘효년’ 소리 듣고, 정신적으로 지치기만 해서 내가 먼저 부동산 얘기 꺼내는 건 포기했다. 대신 저번처럼 엄마 아빠가 나한테 먼저 물어보면 언제든 알려주고, 찾아볼 준비는 되어 있다. 그게 자식의 역할이겠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