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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Dec 25. 2022

엄마는 춤추는 스누피가 갖고 싶어

50대 주부도 소녀다

 일요일 저녁 엄마랑 뒹굴뒹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의 폰에서


 ‘카톡!’


 “어? 이거 뭐지? 해피포인트… 춤추는 스누피 인형? 봐야겠다.”


 “하하! 엄마 그거 갖고 뭐 하게. 어차피 안 쓰고 구석에 방치할 거잖아.”


 “그래도 한 번 구경이나 해보자.”


 해피포인트 어플에서 온 광고 카톡이었다. 배스킨라빈스에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구입하면 ‘춤추는 스누피 인형’을 할인해준다는 아주 매혹적인 광고.



 “이거 봐라. 얘가 캐롤에 춤도 추는데? 사무실에 하나 갖다 놓고 싶다.”


 “응? 엄마 갖고 싶어? 내가 하나 사줄까?”


 “니 돈으로?”


 “크흠! 내가 사러 가는데, 엄마 카드를 내겠지.”


 “어허허허, 크흠! 니가 그럼 그렇지.”


 “어머니, 어차피 저는 외동이라 유일한 상속자거든요. 뭘 어떻게 계산하든, 나중에 증여/상속세 내고 ㅇㅇ(필명25 본명)이가 받아요.”


 “저거, 저거, 입만 살아갖고.”


 “그리고 아직 내가 돈을 번 적이 없으니, 엄마 돈이 내 돈, 내 돈이 엄마 돈이지. 나중에 엄마 노후도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구. 이래저래 생각하면 똑같아.”


 “에휴, 내가 말을 말자.”


 “아이, 그래도 그건 내가 사줄게.”


 “니 해피 포인트 있나?”


 “아, 그거 예전에 포켓몬빵 유행할 때, 스티커 뒷면에 뭐 이벤트 적혀 있어서 그거 한다고 가입했을 걸? 있어 봐. 내가 알아서 해줄게.”


 “아? 그래? 니 돈 낼 건가 보제?”


 “뭐, 엄마를 위해서라면… 이 24시간 자택경비원 한 몸 바쳐 기꺼이 외출하지요. 돈도 내 비자금에서 내고.”


 “어이구, 니가 밖에 나가긴 하겠나? ‘엄마, 다음에 사줄게. 오늘은 좀 자고. 있어 봐.’ 또 이러겠지. 그놈의 ‘있어 봐.’ 쯧쯧. 내가 니를 믿나?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어디 보자… 해피포인트에 들어가서 로그인하고, 스누피 관련 광고창들을 하나씩 읽는데…


 “어우, 엄마 이거 나도 헷갈리네. 할인이 뭐 이래 복잡하노.”


 “어려우면 됐다. 안 사줘도 된다.”


 “아이, 내 하나 사준다니까. 엄마 뭐 갖고 싶다고 한 적이 없는데, 이게 그렇게 갖고 싶으면 사줘야지. 산타가 예쁘나, 트리가 예쁘나?”


 “하나만 할인되나? 산타? 트리가 더 예쁜 것 같기도…”


 “그냥 둘 다 사줄게. 근데 이게 케이크 하나에 인형 두 개로 팔지 모르겠다. 구매는 되는데 할인이 안 되면 정가 주고 사면 되지만, 케이크 당 하나씩이면 케이크를 두 개 사야 되니까…”


 “안 사줘도 된다.”


 “아잇, 그렇게 갖고 싶다고 했으면서 일부러 모른 척한다 또. 엄마 돈 안 쓸게.”


 “근데 사 와도 냉동실에 케이크 넣을 공간이 있는지 모르겠다.”


 “정리하면 되잖아. ㅇㅇ이가 필요 없는 거 평소에 정리하자고 했지요?”


 “니는 그럼 청결하나?”


 “내 책장 못 봤나? 엄마가 다 버려도 된다고 하면 내가 주방까지 그렇게 정리하지. 아무튼 엄마가 건드리는 거 싫어하니 직접 해두쇼. 스누피 춤추는 거 보고 싶다면.”


 “니나 잘해라.”


 ‘물건 못 버리는 엄마, 정리하자는 딸’ 글에서 밝혔듯, 우리 집은 정리 문제가 가장 큰 논쟁이자 일상이다.




 엄마가 출근 준비할 때 냉장고 상태 확인차 얘기했다.


 “엄마, 케이크 들어갈 자리 만들어 놨어?”


 아빠도 나가려고 차키를 챙기고 있었다.


 “무슨 케이크? 파리바게뜨 케이크 저기 있다이가.”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엄마 생일이었다.


 “그거는 그거고. 엄마가 춤추는 스누피가 갖고 싶대.”


 “우리 ㅇ여사가 갖고 싶다면 사라. 근데 그게 뭐고?”


 “어, 배스킨라빈스에서 케이크 사면 그 인형을 할인해 주는데, 엄마가 광고를 보고 너무 갖고 싶어 하지 뭐야. 근데 냉장고가 꽉 차서 문제지.”


 “그거 다 버리면 된다. 맞제, ㅇ여사?”


 “버리긴 뭘 버려.”


 “정리되면 알려줘. 배달예약 가능 날짜가 주문하는 날짜만 선택되게 나와서 그냥 내가 직접 매장 가려고.”


 “니가 나가긴 하나? 히키코모리 뭐시기 아니가?”


 “엄마, 진짜 나간다니까!”


 엄마는 나 때문에 자택경비원, 히키코모리 같은 단어의 뜻을 알아버렸다.




 나가기 전에 냉동실을 열어보니, 음~ 엄마가 정리를 좀 했더라. 바로 집 근처 배스킨라빈스에 갔다. 이른 아침이라 직원 두 분이 계셨다. 한 분이 주문을 받으시면, 동시에 다른 한 분이 매장 한 벽을 꽉 채운 재고 박스에서 하나씩 꺼내주셨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 혹시 케이크 하나에 스누피 2개 살 수 있나요?”


 “어, 구매는 가능한데요. 하나는 할인되고, 하나는 정가대로 조금 비싸게 사셔야 되는데, 괜찮으세요?”


 “네. 상관없어요. 그렇게 주세요. 근데, 이 할인쿠폰 사용할 수 있나요?”


 “잠시만요. 일단 다 담아보고 바코드 찍어볼게요. 케이크는 어떤 거 하시겠어요?”



 “이거, 스누피 누워있는 걸로 주세요.”


 “네. 스윗 드림 스누피 하우스 하나요.”


 전시 상품을 둘러보는데 담요도 사고 싶었다.


 “네. 아, 담요도 하나 추가해 주세요.”


 “네. 일단 케이크에 스누피 할인된 가격으로 하나 먼저 결제부탁드립니다.”


 “네, 여기요.”라며 내가 건넨 카드는 엄마의 신용카드가 아니라, 몇 번 쓰지도 않은 ‘내 토스 체크카드’였다!


 “그다음에 스누피 정가로 하나, 담요 하나해서 추가 결제할게요.”


 “네.”


 “카드 챙겨주시고, 상품 저기서 받아가시면 됩니다.”


 케이크를 담은, 스타이로폼 박스를 담은, 거대 쇼핑백 하나.

 스누피를 담은, 박스 2개를 담은, 담요 하나 얹은, 더 무거운 쇼핑백 하나.

 근손실 자택경비원 죽어나는 액자식 구성.


 “아,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네~”



 낑낑 거리며 들고 온 스누피. 케이크는 도착하자마자 냉동실에 넣으려고 보니… 모든 칸이 높이가 살짝 모자라서 확장 인테리어를 좀 해봤다. 냉동식품을 여기저기 옮기고, 맨 윗 칸 받침대를 분리하니, 다행히 들어가더라.


 안 쓰던 힘을 너무 많이 써서 한동안 오른쪽 어깨가 덜덜 떨렸다.


 정리하고 엄마한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 이거 봐!”


 “뭔데? 사 왔나?”


 “응!”


 “어쩐 일로?”


 “에이, 엄마는 사 와도 뭐라하노.”


 “(카드 결제) 문자가 안 뜨던데?”


 “내 돈 썼으니까.”


 “니가?”


 “… 말을 말자. 냉동실은 이렇게 확장해서 넣어 놨어. 퇴근해서 같이 봐.”


 “그래. 꺼낸 거는 내가 집 가서 정리할게. 놔두라.”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가 하나씩 풀어봤다.



 담요 포장이 산타 선물 보따리 같다. 세상에… 너무 예뻐.


 스누피 박스를 열어 봤더니 건전지 3개 포함이었다. 양발 밑에 건전지가 들어가는데, 나사로 풀어야 했다. 추억의 닌텐도 해체/조립할 때 사놓은 공구 세트에서 드라이버를 꺼내왔다.



 짠! 엄마가 그렇게 갖고 싶다고 하기 전까지 나는 ‘저게 꼭 필요할까? 해외여행 기념품처럼 나중에 예쁜 쓰레기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했으나, 실물을 보니 나도 마음을 뺏겨버렸다.


 우리 집은 크리스마스 인테리어를 딱히 하지 않는다. 트리도 내가 동심의 세계에 있을 적에 졸라서 몇 년 쓰다가, 더 이상 꾸미지 않았다. 그런데 저 스누피 두 마리가 트리 대신이라고 생각하니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니 이거 얼마 줬는데?”


 “할인 때문에 2번 결제해서 5만 원 넘었을 걸?”


 입출금 내역을 확인하니, 정확히 54,700원이었다. 크흠.


오른쪽 까만 뒤통수는 우리 막내냥. 누워 있는 스누피는 씻어서 널어놨다.




 군것질 안 하는 딸보다 과자를 많이 먹는 아빠

 예쁜 쓰레기 안 만드는 딸보다 춤추는 스누피를 즐기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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