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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Dec 13. 2022

물건 못 버리는 엄마, 정리하자는 딸

엄마도 외할머니에게 똑같은 말을 하곤 하지

 “엄마아아아. 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이런 일회용품은 씻지 말고 좀 버리면 안 돼? ‘언젠가는 쓰겠지…’하는 마음이 집을 더 좁게 만든다구! 집은 한 평에 몇 천만 원인데, 이런 거는 진짜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필요할 때 다시 사면 되잖아. 집에 수저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걸 왜 모아. 괜히 설거지 건조대만 복잡해 보여.”

 “아, 알았어, 알았어.”

 “이거 봐, 매번 말해도 엄마는 짜증만 내고, 바뀌는 건 하나도 없고, 나만 나쁜 사람 되잖아. 내가 먼저 말 안 하면 또 아빠가 얘기하니까 그런 건데.”

 “됐어. 설거지나 한 번 안 해줄 거면 저리 가.”


 자식이 손 많이 가는 시기가 지나면, 머리 좀 컸다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죠. 예, 저도 엄마한테 잔소리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집을 위해서 하는 얘기인데, 엄마 입장에서는 제가 ‘효녀’ 아닌 ‘효년’으로 보일 짓이죠.


 부모님이 30년 가까이 장기근속하시던 회사를 기존 직원분들(거의 20~30년 근무하신 이 분야 전문가)과 함께 자영업자로서 새로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었어요. 맞벌이 가정이라서 제가 어린이집 다닐 때, 엄마가 사무실에 조그만 침대를 두고 저를 키웠어요. 제가 그렇게 컸기 때문에 직원분들 다 저를 어릴 때부터 보셔서 회식 자리에 가끔 저도 저녁을 해결할 겸 참석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 수능 끝나고 참석한 회식에서 제가 ‘ㅇㅇ삼촌’으로 부르는 분이 비슷한 일화를 말씀하시더라고요.

 “며칠 전에 치킨 두 마리 시키고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거든. 근데 딱 상 차리려고 하는 순간 우리 모친께서 그 동글동글한 나무젓가락 썼던 거를 주시는데, 치킨 생각도 안 나더라고. 어? 뻘건 국물이 젓가락에 스며든 게 보이는 거야.”


 “삼촌, 우리 엄마도 그래요.”


 “어? 나는 형수가 사무실을 봐도 되게 깔끔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진짜 그랬어요?”


 “우리 엄마는 이디야 커피 배달시키면 오는 파란색 빨대 있죠? 그거 씻어도 크림 찌꺼기 때문에 버려야 되는데, 굳이 설거지해서 수저통에 꽂아 놔요. 그러면 저는 그런 거 보자마자 버리고.”


 “에이, 플라스틱은 그래도 덜 더럽잖아. 나는 국물 스며든 게 잘 보이는 젓가락을 쓸 뻔했다구~”

 부모님 회사가 가족 같은 분위기인데요.(유튜브 좋좋소 그 밈의 의미가 아니라 진짜 가족 같은) 제가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들 중 한 분의 부인께서도 근처에서 퇴근 후 회식에 종종 참석하십니다.


 “삼촌, 그건 나도 그렇게 해요. 아이스크림 스푼 쓰던 거 있으면 씻어서 널어놓고. ㅇㅇ아, 아줌마도 그래. 아줌마 딸들도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이게 사람이 주부로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어.”


 엄마가 이마를 짚으며 “아후, 집에서도 내가 얼마나 잔소리를 듣는지. 저번에는 ‘엄마가 옛날 시골집에서 살 때 주방도 시멘트 바닥이었으니까 위생을 너무 신경 안 쓴다.’라고 하대요.”


 “에이, ㅇㅇ아 그건 좀 심했다. 이게 세대 차이인데, 아줌마는 엄마 입장에 조금 더 공감을 하니까 ㅇㅇ이 입장에서는 조금 서운할 수도 있어. 근데 아줌마가 조금 말하고 싶은 게 있어.”


 “예, 저도 궁금하니까 말씀하셔도 돼요. 통역해주시는 거니까.”


 “아줌마가 하고 싶은 말은 ㅇㅇ이가 나중에 시집가서 엄마처럼 주부로 살면 아마 ‘아! 이래서 우리 엄마가 그런 걸 모아 뒀구나.’ 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야. 아줌마도 시집와서 우리 친정 엄마를 이해했어. 친정에서 뭘 모아 두면 아줌마가 똑같은 얘기를 했었고, 언니들도 ㅇㅇ이처럼 아줌마한테 ‘엄마, 이거 정리하자.’ 이렇게 얘기한 적 있어.”


 “저도 그건 인정해요. 다만 제가 진짜 위생 관련해서 수십 번 얘기했는데, 엄마가 설거지하는 고무장갑 낀 채로 쓰레기통 뚜껑을 열었어요. 그래서 ‘엄마, 이거 쓰레기통에 뭐 먼지나 음식 포장에 묻은 찌꺼기 많고, 고무장갑 닿은 순간 오염되니까 그렇게 안 해줬으면 해.’라고 했더니, 엄마는 ‘이거 깨끗한 건데 왜?’라고 해서 참다가 그 얘기가 나온 거예요. 엄마도 외할머니한테 ‘어마씨, 마당에 고물 모으지 말고 다 버리게. 건강도 안 좋은데 괜히 집만 더러워지네.’라고 매번 전화하는데, 집에서 보면 엄마도 똑같더라고요. 제가 미리 말 안 하면, 아빠도 주말에 부엌 찬장 열어서 ‘ㅇ여사, 이건 좀 버리고 삽시다. 뭐하러 모아놨노.’라고 하면서 다 끄집어내요. 그때 보면 찬장 안에 뭐 쌈장 통, 우유갑, 오래돼서 빛바랜 반찬통 이런 거밖에 없어서 공간만 차지해요. 제가 종종 얘기해서 그 정도인데, 이제는 말을 아예 안 할 수가 없어요.”


 “와, 형수,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것도 모아놨어요? 허허.”


 “그래. 어떤 마음인지 알지. ㅇㅇ이는 그게 더러워 보이니까. 근데 아줌마도 엄마랑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봤잖아. 그래서 ㅇㅇ이가 시골집 얘기한 순간 엄마는 막 힘들게 살아왔던 시절이 다 스쳐갔을 것 같아. 엄마가 그런 행동을 하는 건 아끼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래. ㅇㅇ엄마가 그 정도로 알뜰하게 했기 때문에 지금 이 환경에서 ㅇㅇ이가 살 수 있는 거야. 만약에 엄마가 그러지 못하고 흥청망청 쓰는 사람이었으면 지금보다 못한 환경에서 살았을 수도 있어.”


 “아, 아, 지출이 눈에 바로 보이니까~ 그렇게 하나라도 아끼게 되는 거네요.”


 “그렇지! 결론은, 아줌마가 ㅇㅇ이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은 딱 하나. 나중에 ㅇㅇ이가 시집가서 살림을 직접 해보면 엄마를 이해할 거다. 이거지. 우리 그때까지 꼭 계속 보자~”


 “우리 ㅇ여사님은 다 좋은데, 물건을 못 버리는 것만 빼면…”

 “대신 정리 안 해줄 거면 가소.”

 “엄마는 정리해줄 때 건드리는 거 싫어하면서”

 “니는 설거지도 안 하면서 조용히 해.”


 흔한 경상도식 대화


 이번 주말에도 아빠가 엄마랑 필요 없는 물건 좀 정리하자고 하면서 직접 이것저것 버리길래 생각나서 글을 남겨 봅니다. 다들 우리 집처럼 살겠지요?


 제가 어릴 때부터 정리병이나 결벽증 등 깔끔한 걸 좋아해서 더 자주 얘기하는 것 같네요. 책장에 인강 교재는 과목별 커리큘럼 순서대로, 일반교양 도서는 자음> 모음 순서대로…


필명25 책장 중 메가스터디 현우진 선생님 교재 일부(N수생이라 겹치는 교재가 많다… 크흠)


 이런 저도 학창 시절에 쓴 교과서, 부교재, 선생님 제작 학습지는 못 버리니 엄마를 조금,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기도 합니다.


 오늘도 우리 집에는 사람 셋, 고양이 셋, 남자 셋, 여자 셋,

하지만 자영업자 둘, 백수 넷이서 잘 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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