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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명이오 Feb 08. 2023

20살 차이 나는 동생을 바라는 딸

우리 엄마는 일등 신부

 “엄마, 나 여동생 낳아줘.”


 “야! 정신 나갔나? 내 나이가 몇인데. 진심이가?”


 “왜? 할머니는 아빠를 마흔에 낳으셨잖아~”


 “나는 지금 쉰이 넘었는데 무슨 소리고.”


 “아이, 요즘 의학 기술이 좋잖아. 아빠 갓난아기였던 시절에 친가는 끼니 챙기기도 힘들었는데 잘 태어났구만. 그때 마흔보다 지금 쉰이 더 젊을 걸?”


 “야, 위에 형제들한테 좋은 유전자 다 쓰고 아빠는 찌꺼기만 받아서 지금 피부 간지러워 죽는 거 안 보이나?”



 “나한테 유전자 몰빵 안 돼서 좋은 거 많이 남았어. 우리 여동생 키는 분명 아이브에 장원영, 안유진만큼 클 거야. 꼭 연예인 시켜야지. 나 하나만 낳을 거면 그때 좋은 유전자만 팍팍 넣어주지 그랬어.”


 “그건 둘째 치고, 내 신장병 약 처방받을 때마다 병원에서 임신 가능성 있는지 물어본단 말이야. 그거 먹으면 건강한 애 못 낳는다.”


 “그러면 담당 교수님께 늦둥이를 좀 가져본다고, 약 바꿔주실 수 있냐고 말씀드리면 되지.”


 “야! 쪽팔려서 병원도 못 가게 만들 일 있나. 꺼져.”


 “내가 딸 대신 키워줄게. 여동생이면 나랑 닮았으니까 딸 비슷할 거 아니야? 내 돈으로 저기 비싼 조리원도 보내줄게. 낳기만 해 줘.”


 “XXXX.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데! 니가 거꾸로 당해봐야 알지.”


 “아니면 내가 특별히 나중에 ㅇㅇ(필명25)주니어를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줄게. 얼마나 예쁠까~”


 “으으응. 난 니 키우면서 아새끼는 질렸다. 다시는 키우기 싫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우, ㅇㅇ주니어가 10년 내로 태어나기만 하면 그냥. 엄마가 매일 우리 집 오려는 거 아니야?”


 “절대 싫다.”


 “애가 아마 이럴걸? ‘오, 외할머니, 우리 엄마는 할머니랑 같이 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우리 엄마가 천사예요.’라고.”


 “XXXX하네. 야, 애가 ‘할머니, 우리 엄마랑 같이 산다고 얼마나 힘들었어요. 엄마는 맨날 잔소리해서 괴로워요. 엄마는 악마, 할머니는 천사예요.’라고 할 거다.”


 “내 딸은 나 닮아서 정리 잘하고, 잔소리할 일도 없을 걸?”


 “제발 니랑 똑같은 아 키워봐라.”


 아빠가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왔다.


 “아빠, 나 여동생 낳아줘.”


 아빠가 엄마의 어깨를 주물렀다.


 “크흐, 느그 엄마 이제… 그 끝났다.”


 “왜? 아직 배란되잖아.”


 “둘 다 꺼져. 0.0001%의 가능성도 없는 소리를.”



 저번달에 외삼촌 No.4 집으로 갈 때, 부모님 출근길을 멀리 돌아서 같이 부산역으로 갔다.


 “엄마, ㅇㅇ이 없는 동안 심심해하지 말고, 열심히 여동생을 만들어주세요.”


 “XX, 또 재수 없는 소리 한다.”


 “안녕~”


 주말에 삼촌이 오전조 퇴근하고 숙모와 다 같이 얘기했을 때였다.


 “삼촌, 나 어제 나오면서 엄마한테 여동생 만들어달라고 했어.”


 “하하하하하, 형님 힘드셔서 안돼. 고양이도 같이 있잖아.”


 “야, 엄마가 그 나이에 배 나오면 쓰러진다. 그리고 왜 여동생이야? 니네 집에 딸은 이미 있으니까 남동생이 귀엽지.”


 “남자애는 좀 크면 누나 싫다고 피하잖아. 내가 키울 거면 여동생이 편하지.”


 “그게 남자애, 여자애 특징도 있지만, 애들이 각자 성향이 있어. ㅇㅇ(둘째)이 봐. 애교를 보면 확실히 막내티가 나잖아. 여자애처럼 얌전하게 키우면 돼. 원래 쟤도 딸 같은 아들이었는데, 위에 형이 하는 걸 보고 똑같이 따라 해서 그래. 아니면 우리 둘 키운다고 정신없으니까 조금 큰 ㅇㅇ(첫째)이 데려가든가.”


 “하하, 그러면 나 ㅇㅇ(첫째)이 부산에서 좀 키우고 와도 돼? ㅇㅇ이, 누나랑 기차 타고 부산에서 살래? 저번에 영상통화로 누나 집에 고양이들 있는 거 봤지? 같이 가자.”


 “ㅇㅇ이, 누나 집에서 1년만 살고 와. 고양이들이랑 놀고 있으면 아빠가 나중에 데리러 갈게.”


 “(도리도리) 으으응. 안 해.”


 “야, 저래 쪼매난 애가 니네 집에 있다고 생각해 봐라. 니 완전 찬밥된다. 저런 애 하나 키우기 얼마나 힘든지는 아냐?”


 “일단 엄마가 낳아만 준다면 내 온 힘을 다해서 키워주지.”


 “애기 키우는 엄마, 아빠들은 본인 아플 때 병원도 못 가. 내가 여기 어금니에 임플란트 하나 있거든. 이게 어쩌다 하게 된 거냐면, 회사 급식으로 뼈해장국을 급하게 먹고 있었어.”


 “빨리 먹고 좀 쉬다가 버스 운행해야 되니까?”


 “어, 어. 그러니까 그냥 국물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넘겼단 말이야. 날카로운 뼈는 없다고 생각해 가지고. 근데 갑자기 입에서 뿌드득-하면서 천둥번개 치는 느낌이 들더라고. 어후, 그게 얼마나 아프던지. 조그마한 뼛조각이 이빨 무늬 있는 데 있지? 뼈가 거기에 서있었는데, 내가 무심코 팍 씹으니까 이에 박힌 거야.”


 “흐익, 그걸로 이가 부러질 수 있어?”


 “나도 직접 당하기 전까지는 몰랐지. 근데 박히더라고.”


 “그거 바로 밑에 신경 아니야?”


 “그렇지. 그래가지고 그거 급하게 수습하고 생각해 보니까 바로 병원 갈 상황이 안 되더라. 왜냐하면 그때 와이프 둘째 출산이랑 겹쳤어. 코로나 심할 때니까 남편 출입도 안 되고, 내가 혼자서 첫째를 일주일 동안 봐야 했던 거지. 하… 그동안 밥 먹을 때, 나름대로 그쪽에 음식물이 안 닿게 했는데, 그게 조절이 되나. 밥을 안 먹을 수는 없고, 먹으면 찌릿찌릿 아프고.”


 “밥도 못 먹고 아픈데 애가 보채면 인간적으로 짜증 나잖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그때 첫째가 돌 지나고 몇 달 있다가 둘째 태어났으니까. 하루종일 매달렸지. 그리고 와이프 퇴원하고 내가 병원 잠깐 갈 수 있었는데, 가니까 선생님이 ‘아… 이거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그대로 살릴 수 있었는데, 지금은 임플란트 해야 돼서 너무 아까워요.’라고 하시더라. 부모들이 급하게 애 맡길 데가 없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애 안 낳고 싶어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내가 평균보다 벌이가 괜찮은 편이지만, 그래도 한 명만 벌어서 계속 유지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어린이집 종일반을 하려면 뭐 4대 보험 되고, 그런 직장만 인정된단 말이야. 틈틈이 단순 알바라도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숙모가 새벽 우유배달 알바를 시작한 거야. 내가 퇴근해서 애들이랑 같이 자는 시간이니까.”


 “기준이 그렇게 까다로워요?”


 “어, 딱 재직증명서가 나오는 그런 곳만 인정해 줘. 진짜 주변에 맞벌이 부부를 보면 둘 중 하나야. 애가 좀 방치되거나, 아니면 퇴근까지 공백이라도 애기 할머니가 봐주시거나. ㅇㅇ(첫째)이만한 애 앉혀놓고 과외시키는 집도 있지만, 이런 영상(삼촌집에는 유아 교육용 태블릿이 있다.) 아예 안 틀어주는 집도 있어.”


 “제가 좀 방치되면서 큰 경우죠. 그니까… 엄마 아빠 출근할 때, 제가 못 일어나니까, 아빠가 저를 이불에 감싸서 보쌈하듯이 차에 태우고, 저는 사무실에서 조금 잔 다음에 유치원 버스 타고, 하원하고 오후에는 엄마가 저한테 컴퓨터 하나를 내줬죠. 같이 퇴근하면 저녁은 엄마가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한 9시 정도에 먹고. 밥이 늦어진 만큼 잠도 늦게 자니까 출근 시간에 못 일어나죠. 그냥 그게 일상이었어요.”



 내 유년시절 투니버스에 심슨이 나오는 시간이면 늦었다는 신호였는데, 나는 항상 심슨을 봤다. 넉넉하지 못한 맞벌이는 아이도 버티는 입장이라는 걸, 내가 그 아이가 되어봤기에 잘 안다. 그래서 나는 넉넉한 맞벌이를 하고 싶어서 지금 공부를 한다.


 “그 세대에도 우리 누나 정도로 육아, 집안일, 맞벌이를 모두 헌신적으로 한 사람이 없어. 누나는 니 낳기 전날까지 일했잖아. 너 모르지?”


 “몇 번 들어서 알고 있어. 왜냐하면 내 생일이 사촌오빠 졸업식 다음날이거든. 그래서 지금 회사 전 사모님(친가 친척)이 큰아들 졸업식에 참여해야 되니까 엄마까지 근무를 뺄 수가 없었어. 결국 그날 퇴근해서 ㅇㅇ삼촌(외삼촌 No.3랑 같이 살던 시절)이랑 저녁 먹고, 몸이 계속 이상해서 입원했을 걸? 가서 내진하니까 ‘자궁문이 2cm나 열렸는데, 왜 이제 오셨어요.’라고 혼났대.”


 “그러니까 엄마한테 잘해. 퇴원하고도 시어머니 와계셔서 산후조리 제대로 못 했잖아. 나는 와이프 첫째 출산 때는 조리원 보냈는데, 둘째 때는 첫째가 어려서 떼놓을 수 없으니까 전문가 한 분이 집에 오시는 서비스를 했단 말이야. 와이프한테 아직도 그게 좀 미안한데. 누나는 매형한테 티는 안 내도 아직 그게 상처일 거라고. 누나가 대학병원 다니고 몸이 안 좋은 데는 분명 그 영향도 있어.”


 엄마가 퇴근 후 거실에서 맥주를 먹고 있을 때 진지하게 물어봤다. (아빠는 엄마의 맥주를 사다 줄 때, “ㅇ여사님, 친구 왔어요.”라고 한다. 엄마의 친구 테라.)


 “엄마는 ㅇㅇ이가 어릴 때 그렇게 예쁘다고 했으면서 둘째 생각은 없었어?”



 내 유년시절 사진을 보면 엄마의 사랑이 듬뿍 담겼다. 가끔 엄마랑 같이 보면, 엄마는 예쁘다고 웃는 표정이면서 말로만 “참… 말 안 듣게 생겼네.”라고 한다.



 지금도 나랑 고양이들이 밉다면서 갤러리에 나도 모르는 사진이 한가득이다.


 “있었는데…”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내가 오늘부터 밤 안 새고 일찍 잘게.”


 “야! 조용히 하고 들어 봐. 주위에서 하도 ‘하나 갖고 안 된다. 더 낳아라.’ 간섭해 대서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그때 할머니 니 보고 싶다고 맨날 우리 집 와계셨제, 아빠는 집이랑 직장이 가까울 때니까 점심시간만 되면 집에서 밥 먹었제, 니 어릴 때라서 손 많이 가제. 어? 할머니가 명목상 애기 봐주러 오셨지만, 이미 일흔 넘었을 때였는데 애를 보실 수 있나? 또 집전화 앞에 계속 앉아계시면서 고모들이랑 얼마나 많이 통화하셨는지. 밥상에 뭐 하나라도 마음에 안 들면 고모들 귀에 다 들어가고, 손이 느리다고 바로 옆에서 뭐라 하시고. 거기다 갓난쟁이 하나 더 있으면 내가 정말 미칠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안 낳았어.”


 “… 덕분에 ㅇㅇ이가 상속은 몰빵으로 받겠어요. 우리 엄마 화이팅!”


 “그니까 이제 둘째고 XX이고 얘기 꺼내지도 마. 절대 안 생겨.”


 “엄마, 오늘 ㅇㅇ이랑 같이 자요.”


 “으으응~ 거실은 저 골칫덩거리들 털 날려서 못 자. 가려워.”


 “분리수면이 아직 어색한 나이 21세.”


 “XXXX하네. 저것들이나 끌어안고 자라.”


 마블 히어로보다 우리 엄마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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