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외삼촌 No.3의 날개
“50세를 앞두고 하는 후회에 대해서 얘기했는데, 남동생(외삼촌 No.4)을 위해서 희생했던 20대도 후회해?”
“많이 후회하지. 인생은 ㅇㅇ(외삼촌 No.4)이처럼 살아야 해. 나처럼 살면 안 돼. 뭐 결과론적인 생각이다만, 그때 내가 걔를 안 도와줬으면 잘 살았겠지?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까 보이는 거지. 나는 희생을 정말 많이 했다. 당시에는 내 동생이니까 하는 마음에 다 해줬는데, 알고 보니 뭐 그렇더라? 내가 대구에서 자취할 때 걔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시골에서 돈 좀 가져왔다고 놀러 온 거야. 분명 놀러 왔다는데 집에 안 가더라? 기술 같은 거라도 가르치려고 학원비 주었더니만 삥땅치고 오토바이도 계속 업그레이드해서 타고 그랬던 거야. 그러다가 내가 방위산업체 다닐 때 걔가 큰돈이 필요해서 내가 카드론으로 다 떠안은 거야… 집안 능력은 안 되는데 동생은 챙겨야 되니까. 돈을 수습하니까 걔는 군대로 가버리고 나 혼자 갚다가, 갚다가… 돈이 계속 불어나서 감당이 안 되잖아.“
“어, 군 복무 중이라 다른 일을 할 수도 없고…”
”나중에 방위산업체 소집해제되고 부산에 누나(필명25 엄마)를 보러 갔다가 회사에 사람이 필요하대서 갑자기 일하게 된 거지. 일 진짜 뭐 빠지게 했다. 2001년도에 월급 81만 원 받고 시작했어. 3개월 후에 95만 원 정도로 올려 주더라고? 나중에 일 잘한다고 그 당시에 기사 최고 임금을 맞춰주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사모님 없이 사장님만 경영했으니까 직원을 인정해줬지. 내가 2004년도에 150만 원 정도 받았나? 잘하는 사람들이 140만 원 받던 시절이었어. 내가 그렇게 하루종일 일하고. 너네 집에 살 때도 있었지만 모텔 장기투숙도 했고. 우리 누나가 얼려준 밥 쌓아놓고 먹고… 컵라면에 그 냉동주먹밥을 담가서 녹여 먹었다. 그때는 참 그렇게 많이 먹었지… 월 20~30만 원 빼고 다 빚 갚는 데 썼어. 그렇게 빚을 다 청산하니까 내 20대가 거의 끝나있더라.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세상은 더 자기를 먼저 잘 챙기고 살아야 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건 없었지만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살아봐서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어. 너는 절대 나처럼 살지 말아라.”
“나는 어릴 때 삼촌이 같이 살아서 놀러 다닌 추억이 많은데, 같이 살게 된 계기에 많은 사연이 있었구나…”
“그러니 내가 지금까지도 라면을 안 좋아하는 거야. 귀찮을 때 가끔 끓여 먹긴 해도 되게 물려. 20대에 맨날 그걸로 끼니 때워서 속이 다 뒤집어졌었거든. 특히 안성탕면을 못 먹는 이유가… 시골에 살 때 가족이 하도 많은데 밥은 없었잖아? 할머니가 안성탕면에 소면으로 양을 불려서 맨날 줬던 거지… 라면 그대로 먹으면 맛있지만, 그렇게 소면으로 물 타기 해서 먹는데 맛이 있겠어? 어후… 나는 진짜 고생 많이 했다.”
“라면에 염분이 많으니까… 빚 청산에 몸을 갈아 넣었구나. 남들은 다 20대가 좋을 때라고 하는데, 삼촌은 20대 내내 절망적인 상황이 지속되었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동기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봐서 내성이 생기기도 했고. 그때 생각했을 때는, 나도 이거 다 청산하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내 가정도 꾸리고 행복하게 살아봐야지 그랬던 것 같아. 어떻게 삶을 그렇게 끝내겠어. 다들 알겠지만, 사람 목숨은 생각보다 질겨서 죽는 것도 쉽지 않아. 나도 되돌아보니 평균 수명의 절반 이상을 살았고, 직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벌써 20~30년이잖아. 그 세월 동안 사업주들이 요즘 경기 좋다거나, 사업하기 좋다거나, 그런 얘기를 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 정말. 그런데도 그걸 그 시기에 꾸준히 이겨낸 사람들은 은퇴할 때 뭐라도 쥐고 가서 편하게 살더라고. 내가 살아보니까 그렇더라. 뭐든지 치고 빠지는 게 중요하지. 주식도 먹고 빠져야 되잖아. 계속 상한가 준다고 폭탄 돌리면 안 되잖아. 결국 나중에 푹 꺼지는데. 공부도, 주식도, 사업도, 인생도… 모든 것이 다 사이클이 있고, 때가 있더라. 지금 죽을 것 같아도 어떻게 사람 인생이 하방만 찍겠니. 살다 보니 대출도 점점 줄어들고, 가끔 내 인생도 상한가를 치고 그런 거지.”
“삼촌이 한 직장에서 거의 30년을 버틴 사회인으로서, 사회초년생 2030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근데 그것도 있잖아… 옛날에는 한 직장에서 오래 버티는 게 좋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냥 본인 능력을 더 잘 인정해 주는 좋은 사업주에게 옮겨갔으면 해. 내가 살아보니까 그래. 그게 연봉 인상이든, 사내 복지든, 업무 분위기든, 나의 기여도와 필요성을 인정해 주고 지혜로운 오너에게 가길 바라. ‘오너도 사람이다.’라는 말은 맞는데, 일 안 하려고 잔머리 쓰고 오너한테 아부하는 사람보다는 회사에서 일 잘해주는 사람을 더 챙겨야지. 일은 제일 열심히 하고, 회사를 위해 가끔 바른 소리 하는 핵심 직원을 알아보는 오너가 잘 없는데… 100명 중에 1명 있다면 그 사람이 참된 오너다. 결론은 이직으로 본인의 가치를 인정받고 함께 성장하길 바란다.”
“삼촌이 카드론 같은 고금리 신용대출로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지게 된 1세대 아니야?”
“내가 거의 1세대 맞지. 신용불량자 시절도 있었고.”
“지금도 삼촌의 20대와 비슷하게 버텨나가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삼촌은 그걸 먼저 극복한 세대잖아. 혼자 애를 키워도 애 입학 몇 년 전에 미리 학군지 ‘초품아’ 매수했고, 최근에 신형 SUV도 출고했고.“
“하하, 아직 은행 집이지 뭐.”
“그래도 빚 청산하고 번듯하게 삶을 일군 사람으로서, 빚투를 실패한 고통으로 한강을 생각하는 2030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다들 나름대로 고통은 있겠지. 누구한테 말도 못 하고. 그제? 실패에 대한 죄책감도 있고. 아쉬움도 있고 그제. ‘아, 이거 조금만 더 했으면 크게 터졌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도 주식해 봤잖아. 리딩방 사기도 1000만 원 당해봤고.“
“아, 바로 작년에 당한 거…”
”그래. 부수입으로 30 벌다가 ‘나도 한 번 300 벌어볼까?‘하는 마음에 그렇게 됐잖아.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단계가 있지. 자기 그릇이 있고. 노력하지 않고 크게 한 방 먹으려 하면 내가 크게 맞거든. 그것 또한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맛보지 말았어야 할 쓴맛을 일찍 맛봤다 생각하길 바란다. 나는 돈 안 아깝겠나? 나도 성질나거든. 진짜 아까워.“
“응. 세상에 자기 돈 안 아까운 사람은 없지.”
“자기 밥그릇이 아닌데 괴로울 정도로 큰 행복을 욕심내면 힘들어져. 나도 그랬듯이, 본인의 과한 욕심으로 벌어진 일이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어. 그래도 지인들 중에 나를 한 명이라도 좋아하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니야. 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각나면 극단적으로 가지 않길 바란다. 솔직히 나도 애가 갓난쟁이일 때 애를 혼자 키우면서 돈도 벌고 너무 힘드니까 ‘얘를 데리고 같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 이래서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이 생기나 느꼈고.”
“일에, 육아에,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제정신으로 사는 게 아니었지. 그래도 애의 의사를 모르는데 내 뜻으로 생을 마감하기는 너무 미안한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2500일 정도를 더 버텼는데, 그 사람들도 한 번 더 생각하고 노력하면 기본은 살 수 있으니까 포기하진 않길 바라는 마음이야. ‘인생을 즐겨라!’는 개 같은 소리고. 너무 힘드니까 즐기지는 못해도 본인 역량껏 열심히 하길 바란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으로서 하는 얘기야. 맨날 일 하고 퇴근해서 애 분유 먹이고 다 하고. 요즘 독박육아 이런 단어 많이 쓰던데, 내가 진짜 독박 육아에 독박 벌이지. 나는 다 해봤어. 없는 놈은 살아있는 게 고통일 수 있어. 나도 그랬고. 하다못해 월급 받는 즐거움도 있을 거고. 그 월급이 받자마자 빚으로 빠져나가도 받는 순간은 즐거울 거잖아. 뛰어내리고 싶은 순간에 한 번쯤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뛰어내리기 어려워질 거야. ‘아, 이 짜식, 왜 그랬어…’하면서 울어 줄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을 거거든. 내 선택이 만든 죽음이 누군가에게 슬픔이 된다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니 끝까지 살길 바란다. 너도 누군가에게는 보고 싶고 애틋한 존재다. 나도 작은 형이랑 애틋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형이 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금도, 형과 나눈 추억이 한 번씩 생각나고 보고 싶어.”
“죽음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우리 외삼촌 No.2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 나는 그 삼촌을 만난 횟수로는 다섯 손가락에 꼽을 거야.”
“그 형은 좀 안타깝지… 남한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었거든. 하나에서 열까지 다 퍼주는 사람. 시골에서 엄마가 뭐 보내주면 다 나눠주고. 돈도 그렇고… 형이 그렇게 착하게 베풀고 살았는데도 그 지인들이 장례식에는 얼굴 비추지도 않아서 적자 났잖아. 그래서 누나(필명25 엄마)가 사비로 메우고. 이걸 보면 사람 좋다는 말은 안 좋은 말인 것 같아. 특히 요즘은 사람 좋다는 말이 호구라는 뜻이 된 것 같아서 안타까워. 나랑 형의 삶을 보면 결국 사람이 이타적이고 착하게 살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지. 이기적인 사람들 틈에서 너는 이기적으로 자신을 챙기며 살길 바란다.”
타인을 챙기던 수호천사는 타인 때문에 요술지팡이와 날개를 잃었다.
외삼촌 No.3의 유년시절 시골생활은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