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구, 감사합니다. 그게 제 소원이에요.
수도권 버스기사 외삼촌 No.4는 출퇴근 시간에 종종 나한테 전화한다. 그때 진상 손님이나 평소 근무방식을 얘기해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운전대 잡는 직업에 대한 편견이 좀 심해서 귀천을 따지고 그럴 때가 있어. 버스 기사, 택시 기사, 화물 트럭 기사, 다 안 좋게 보는데 이런 인식은 좀 개선되어야 해. 어느 정도냐면, 운전면허 시험을 아무나 칠 수 있으니까 ‘운전 그게 뭐라고. 남들 다 하는데.’라고 생각한단 말이야. 돈도 많이 못 번다고 착각하고. 그런데 알고 보면, 면전에 그런 말하는 사람보다 버스 기사가 돈은 더 많이 받아.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
그때 삼촌이 겪은 상황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중년 남성 한 분이 내리실 때,
“그렇게 평생 버스기사나 하고 살아라!”
“어이구, 감사합니다. 그게 제 소원이에요. 근데 손님 인터넷에 버스기사 연봉표나 한 번 찾아보세요.”
삼촌도 이런 손님을 너무 많이 봐서 그 상황마다 정확히 어떤 일이었는지까지는 기억하지 못해도, 저런 대사 한 줄은 항상 기억에 남아있다고 한다.
“삼촌이 20대에 처음 버스기사가 됐을 때만 해도 내비게이션이 없었어. 그래서 조그만 수첩에 몇 미터 직진, 어디서 좌회전, 또 얼마만큼 직진… 이런 걸 다 적어놓고 한 장씩 넘겨가면서 일했어.”
삼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처음 들은 건 내가 16살 때였다. 미성년자는 혼자 숙박 업소 체크인을 할 수 없는데, 서울 아이돌은 보고 싶으니, 가끔 수도권 삼촌집에 신세를 졌다. 그때마다 삼촌과 숙모가 어떻게 사회에서 자리 잡았는지 들었다.
“한 달에 22일 만근인 회사가 있다 치자. 한 달에 30일 또는 31일이잖아? 물론 2월은 예외적으로 28일(4년에 1번 29일)이고. 그러면 내가 쓸 수 있는 휴일은 보통 8~9일이 돼.“
“아, 그러니까 그달이 며칠인지에서 만근 22일을 빼면 그만큼이 휴일이라고? 그러면 한 달을 4주로 잡으면 오전조 2주, 오후조 2주잖아. 이걸 2주씩 해? 아니면 번갈아서 한 주, 한 주 해?”
“오전조랑 오후조를 1주일씩 하는 거야. 퇴근 이후 시간부터 휴일 하루에 생활 패턴이 바뀌어야 해. 이게 솔직히 하루 쉬었다고 해서 바로 적응되는 건 아니잖아.“
“그렇게 생활 패턴이 계속 바뀌면 몸이 잘 안 일어나질 건데, 만약에 기사가 늦잠 자서 출근을 못하면 어떻게 돼?”
“해결하는 방법이 많은데, 시간 넉넉하게 나와서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뒤차 기사한테 전달해서 배차 순서를 조금씩 당기고 늦잠 잔 기사가 뒷순서로 출발해.”
“나 같은 야행성은 오후조가 잘 맞을 것 같은데, 삼촌은 선호하는 조가 있어?”
“근무시간은 오히려 오전조보다 오후조가 훨씬 길어. 그리고 급여는 포괄임금제라서 일당으로 따지면 오전조를 하든, 오후조를 하든 똑같아. 그러면 니가 버스기사라고 하면 사람 마음이 어떻겠어? 휴일을 오후조 근무날에 쓰고 싶겠지? 회사에서 이걸 칼같이 자를 수는 없어도 기사들끼리 최대한 비슷한 시간만큼 근무하도록 균형을 맞춰주는 역할을 해.”
“어느 날 근무 빼달라고 미리 얘기하면 다 들어줘?”
“거의 맞춰줘.”
“삼촌 막차 운행할 때, 회식 끝난 직장인들이 귀소본능 때문에 택시 대신 평소 타던 버스를 탈 수도 있잖아. 취객이 차에 토한 적 있어?”
“그런 사람 많지. 정말 많이 봤어.”
“으윽, 그건 어떻게 처리해? 청소해 주는 분이 따로 계셔?”
“그냥 그것까지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직접 치우지. 따지고 보면 차 관리까지 내 일이고, 내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해. 옛날에는 근무 패턴이 20시간 운전, 28시간 휴식, 이렇게 48시간 기준으로 이루어졌거든.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어. 20시간 집중해서 운전하면 녹초가 돼가지고, 퇴근하고 바로 휴일이라도 정신없이 자다 보면 다시 출근이었어. 준공영제 이후로 그나마 근무 시간 관한 어려움은 덜해.“
“준공영제는 민영제랑 제일 큰 차이가 뭐야?”
“민영제는 버스회사가 ‘회사’잖아?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야. 온전히 회사 자금으로 투자하고, 리스크를 감당하고, 수익을 내다보니 어떻게 되겠어? 니가 사장이라면 인건비는 적게 들이고, 운행은 많이 시켜서 최대 이익을 추구하는 게 맞잖아? 적자 나는 노선은 계속 두기 싫을 거고.”
“그렇지. 누구나 그 자리에 앉으면 그렇게 하고 싶지.”
“근데 준공영제는 시에서 적자 나는 노선이 있어도 메워주고, 버스기사들 임금/복지 수준을 많이 올려줘. 준공영제 이전에 내가 근무했던 시간을 지금 임금으로 따지면 월 천 넘어. 기사들만 좋은 게 아니라, 회사는 돈 걱정을 덜고, 불편이 없도록 체계 운영만 잘해주면 돼.”
“예전보다 워라밸까지 괜찮아졌네? 잘 쉬고 더 충전된 상태로 일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어린이집 다니는 애가 둘이잖아. 그래서 집에서 쉬어도 옛날처럼 푹 자는 게 아니라서 더 힘들지. 둘째 태어나면서 내가 첫째를 더 많이 봤으니까, 첫째는 아빠 회사 가지 말라고 울고. 맨날 그래. ‘아빠, 회사 가지 마. 나랑 있어.’하면 나는 또 ‘ㅇㅇ아, 아빠가 회사 안 가면 ㅇㅇ이 지금처럼 과자 못 먹어. 물만 먹고살아야 해.’라고 달래고 억지로 나오는 거야.”
저번에 삼촌 집에 있을 때 삼촌은 오전조라서 12시쯤 퇴근하는 날이었다. 첫날 11시부터 첫째 아이가 “아빠는 언제 와? 엄마, 아빠 회사 가지 말라고 해.”라고 울었다.
“게다가 퇴근하면 그만큼 기다린 애들이 나랑 놀자고 오잖아. 피곤해도 비몽사몽 상태로 놀아줘야 되는 거야. 우리나라에서 애 키우는 게 쉽지 않아.”
삼촌의 근무 얘기를 들어보면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정상적으로 살아온 건가 싶다. 나도 사람인데 사람이 제일 어렵다. 자존감이 낮아질 때마다 친구가 준 춘식이 쿠션을 본다. 오글거려도 한 번씩 따라 읽으면서, 극세사 결 반대로 쓸었다가, 다시 덮었다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