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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제일 상관없어 보이지만 학습보다 훨씬 힘든

수험일기 20032023

by 필명이오

보통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재수=실패’의 공식이 강력해서 자식이나 조카가 재수한다고 하면 지금 갈 수 있는 대학이 아무 곳도 없다고 멋대로 착각하고 훈수부터 두려 하시죠. 아무리 어른이라고 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이해할 수 없는 ‘무지성 훈수’는 내가 서비스직 노동자로서 맞이한 진상 손님 같죠. 본인이 잘나서 ‘왜 너는 그 정도밖에 안 되냐’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본인은 공부로 성공한 사람도 아닌데


‘나 때는 가난해서 공부할 여건이 안 되니까 내가 가방끈이 짧고 이 모양이지. 나도 지금 태어났으면 잘했어. 내가 일할 때도 보면 머리가 좋거든.’


이렇게 본인 자랑 겸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화법은 앞에서는 ‘네, 네.’하고 넘기지만 속으로는


‘본인은 얼마나 잘나셨습니까. 나는 적어도 나이 먹으면 당신처럼은 안 되렵니다.’


쉐도우 복싱만 반복하고 있죠. 마음에 안 담아두려 하지만, 공부가 막힐 때마다 저런 자존감 갉아먹는 말이 계속 생각나긴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친구랑 만나거나 전화하게 되면 서로 억울했던 잔소리 무용담을 늘어놓죠.


특히 우리는 매년 두 번이나 있는 명절이 오면 일일 서비스직에 취업한 것 같습니다. 쓸데없이 잔소리 대목이에요. 저의 경험도 다음장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네, 저도 잔소리는 머리가 어질어질할 때까지 너무 많이 들어서 줄거리도 다 외웠습니다. 뭐, 돈 까먹는 기계, 그래서 되겠냐… 예, 예, 그러게요. 저도 글 쓰면서 활자로만 보고 있는데 음성 지원 기능이 있나 싶어요.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친지 오래이며,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자아 자체를 잃어버린 기분이었습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내 인생의 악플러와의 만남, 만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잠깐 마주침도 부담스럽고 큰 트라우마로 남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지라 그렇다고 아무도 안 만날 수는 없고…


여러분이 수험 생활을 한 경험이 있거나 지금 하고 있다면 제일 잘 알겠지만, 혹여 그렇지 않고 학부모 또는 주변에 수험생이 있는 일반인이시라면 기억해주십시오. 학생이 먼저 자랑하면서 얘기하기 전까지는 그냥 안 묻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입니다. 용돈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냥 평소처럼 대해주세요. 혹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캐묻는 사람 하나만 있어도 피곤하고 대화하는 내내 상처인데, 정말 필요 이상으로 많습니다. 묻는 사람은 본인이 처음이지만, 듣는 사람은 체감상 수십만 명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잔소리 비용으로 용돈이라도 많이 주나? 남의 인생사 취조당하는 분위기 만드는 부류의 사람들과 용돈 잘 주는 사려 깊은 분들은 교집합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특히나 부모님이 자영업자이시고, 외할머니는 시골 한 마을에 쭉 사셨어서 일개 학생인 제가 n수하는 사실을 쓸데없이 천 명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글로만 봐도 스트레스입니다.


양가 할머니, 아버지 형제분들, 어머니 형제분들, 저의 친가 사촌들(외갓집은 어머니가 셋째이자 장녀이신 관계로 제가 첫째고, 제 또래인 동생 2명을 제외하면 거의 아기들입니다.), 예전에 모임도 있었던 아버지 친구분들, 어머니 고향 친구분들, 수없이 많고 제 얼굴을 아시는 부모님 거래처분들, 외할머니 평생 이웃주민이신 경북 어느 시골마을 주민분들… 만날 때마다 딸이 올해 몇 살이냐, 요즘 뭐하냐, 20살이면 대학은 어디 갔냐, 왜 재수하냐, 딸 하나가 전부인데 그마저 재수하면 어쩌냐…


어질어질하죠? 제가 이래서 신경 안 쓸레야 안 쓸 수가 없습니다. 시골 사회가 좁아서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까지 다 안다는 말을 반신반의했었는데, n수하면서 뼈저리게 느꼈어요. 구체적인 일화를 또 풀어보자면, 6월 모의고사 며칠 후에 외할머니 생신이라 부모님 휴일에 조금 일찍 올라갔는데요. 시내 번화가까지는 아니고, 식당 몇 개가 있는 읍내 근처 정도로 나가서 항상 가던 한우 전문 식당에 할머니를 모시고 갔습니다. 근데 갑자기 식당 끝에 한 60대 아주머니께서 할머니를 알아보시고


“아줌마, 오늘 자식들 올라왔어요? 맞네, 아줌마 생신이 요 며칠 내라는 건 알았는데, 큰 딸이 올라왔구나.”

그래서 저는 밥을 먹다 말고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예, 제가 할머니 큰 딸의 외동딸 ㅇㅇ입니다. 안녕하세요.”

“ㅇㅇ이? 내가 ㅇㅇ이 돌잔치 때 갔는데. 많이 컸다!”

저는 처음 보는 분이 제 경조사에 와주셨다는 것에 감사함과 동시에 뭐라 답할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예, 그 제가 올해 20살입니다.”

“20살? ㅇㅇ이가 벌써 20살이야? 어머, 시간이 뭐 이리 빠르대. 나는 모임에서 식사하러 온 건데, 가족끼리 맛있게들 드시고 나중에 또 봬요. 아줌마, 생신 축하드려요. 난 갈게.”하시며 모임 자리로 가셨습니다.

나중에 저도 식사를 마치고 차를 타려는데 주차장에서 또 뵙게 되어

“어르신, 조심히 들어가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하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는 외곽 중에서도 외곽에 사셔서 식당까지는 차 없이는 나오기 힘든 거리였죠. 그래서 이웃 주민분을 거기서 만날 것이라고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제가 기억을 하려 해도 못 하는 시절에 뵙고 처음 마주한 분인데, 그분께서는 저를 기억하고 계시다니… 시골 사회가 정말 좁습니다. 서로 다 알고 계시네요.


재수 스트레스는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제가 친할머니의 일을 겪고 나서부터 ‘이랬으면 어땠을까? 더 좋지 않았을까?’하는 의미 없는 가정법으로 후회만 했는데, 그 생각이 생산적인 의미가 있으려면 조금 더 젊으신 외할머니께서 건강하실 때라도 실천해야겠다고 나름대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한 달에 아무리 바빠도 두세 번은 안부 전화를 했어요. 한여름에 외할머니께서 인천의 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더 자주 했습니다. 안 그러면 서운해하시고 저도 마음이 불편해서요. 근데 다들 아시죠? 어르신들은 서로 만나실 때마다 자식 자랑으로 은근한 기싸움을 하시잖아요. 과장도 약간 섞인 기싸움… 특히 할머니는 시골집에서 혼자 계시니 마을회관도 매일 가시죠.


얼마 전 일이었습니다. 평소처럼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을 즈음에 외할머니 안부 전화를 걸었죠.

“여보세요.”

“할머니, 나 ㅇㅇ일세. 점심 먹었는가?”

“아이고, 우리 외손녀 ㅇㅇ이라. 허허. 나는 회관에서 먹었지. ㅇㅇ이는 먹었나?”

“나도 대충 먹고 있네. 할머니 요즘 회관 자주 가시나?”

“응. 몸이 아파놓으니 일도 못 가고, 집에만 있자니 난방비만 많이 나와서.”

“어. 할머니 연세에 원래 일 많이 했으니 이제 쉬어도 되지. 회관은 따뜻해?”

“여기는 겨울에 보일러 따뜻하고, 여름에 에어컨도 잘 키 줘. 좋아.”

“그럼 다행이고. 동네 분들이랑 다 같이 있는 게 낫지.”

“참, 니 전에 왔을 때 전화 화면 니 사진으로 바까 놓고 간 거 동네 사람들이 예쁘다고 난리라. 큰딸 많이 닮았다고 그래.”

저는 웃으면서,

“정말? ‘완전 ㅁㅁ(어머니 이름)이다’ 이러나?”

“어! ‘이거 ㅁㅁ이네! 똑같이 생깄다.’ 이카드라. 그래서 ‘손녀가 몇 살인고?’해서, ‘20살이지.’하니까, ‘20살이면 대학교 1학년 아니가?’해서, ‘대학교 다닌다’ 이캤다. 니도 빨리 학교 가야 안 될라?”

저는 순간 우리 고양이 텐트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으응. 할머니가 기도하면 뭐 되지 않겠나? 허허.”

“그래, 잘 돼야 될따만. 사돈은 잘 계시고?”

“바빠서 나도 한 달 전에 고모들이랑 간 면회가 마지막이었네. 그래도 이제 입소하신 지 1년이니까 잘 적응하셨지.”

“다행일세. 내 부산 가서 사돈 면회 한 번 가고 싶구먼.”

“겨울에 나도 올해 시험 끝나니 우리 집 오게. 그때 같이 가자. 나도 공부 열심히 할 테니까 할머니도 입맛 없더라도 한 숟가락이라도 더 드시게. 내 또 전화할게.”

“응. 열심히 하고 엄마랑 아빠 말 잘 들어래이.”


예, 뭐, 제 심경을 이제 아시겠죠? ‘20살=대학교 1학년’ 저도 어릴 땐 이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랬으니 어르신들이 저 명제대로 생각하시는 것도 당연히 이해합니다. 외할머니께서 어떤 심경이었을 지도 이해가고요. 근데 이게 자존감 은근 많이 깎입니다. 불편한 화살이 나 자신으로 향할 때면 저 혼자 이런 생각도 하죠.


‘내가 재수하는 게 할머니는 자랑거리가 안 되니까 부끄러워서 거짓말을 하실 수밖에 없었구나… 공부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할머니한테 있었던 일을 들으니 마음이 더 불편하다. 그렇다고 안부 전화를 안 하면 할머니가 엄청 서운해하시잖아. 당장 내가 전화해도 외삼촌들 일이 바쁜지 전화가 없다고 하소연하시는데. ’


저도 공부 기계가 아니라 인간인지라, 이렇게 공부와 가장 상관없어 보이는 주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사로잡혀 공부에 집중할 수 없고 그랬죠. 이번 장에서는 조금 갑갑하게 느껴질 제 일화와 저 혼자 나름 삭히는 방법이 나올 예정입니다. 만약 여러분도 비슷한 일 때문에 고민 중이시라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내가 이상해서 그런 게 아니었네.’하고 마음 편히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고 다 힘들게 살아!’라고 여러분을 호통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제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문제인가?’라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자책하는 행동에서 어서 벗어나셨으면 하는 의도로 제 부끄러운 일화를 공개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제 얘기로써 안심하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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