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둘째
너무 무거워서 병원 데려갈 때마다 집사가 헬스를 체험하게 해주는 우리 둘째 초바는 방금 또 식사를 마쳤다. 고양이가 식사를 마치면 꼭 하는 그루밍!
초바의 그루밍은 아이돌 그룹의 안무처럼 정해진 박자가 있다. 동작은 심플하지만, 흔히 말하는 고양이 세수를 할 때 앞발의 칼각은 역시 중년 고양이의 연륜이 묻어난다. 의젓한 군인의 경례 같기도 하다.
‘원, 투, 쓰리. 원, 투, 쓰리.’
‘원, 투’에는 침을 바르고, ‘쓰리’에는 얼굴 전체를 슥- 닦는다. 침, 침, 닦! 침, 침, 닦! (신나는 노래~ 나도 한 번 불러보자~ *나는 절대 그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초바의 목덜미에는 점 세 개가 있다. 그래서 이름 후보 중에 별자리 이름도 있었다. 근데 이제 살쪄서 식빵 굽는 자세를 하고 있으면, 하핫… 크흠, 목에 튜브가 생기는 바람에 목덜미 점들이 꾸깃꾸깃 축소된다. 뒤통수부터 꼬리까지 쭉- 빗질을 해주면 목덜미에 방지턱 때문에 꾸울-렁하고 넘어간다.
돼냥이 초바의 웅장함은 뭐라고 더 서술해야 할까? 병원 갈 때 캐리어에 넣으려 예민한 초바를 안은 순간 ‘헉’하게 된다.
하… 그것이 참 몸무게로 말하기도 애매하다. 병원에서 더 예민한 초바의 몸무게를 잴 때, 체중계에 캐리어 전체를 올려서 원장님이 캐리어 무게를 빼고 차트에 작성하시기 때문에 집사는 모른다. 여쭤볼 걸 그랬다.(23년 겨울에 스케일링 때문에 초바를 마취시켜서 여쭤봤는데 6kg정도라고 한다…) 일단 허리~엉덩이 라인이 실종된 것으로 보아 돼냥이는 확실하다.
(박스가 불쌍하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네들의 인생이 아니겠는가?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야 한다옹=^.^=)
초바의 예민함은 어릴 때부터 우리 가족을 곤란하게 했다. 생후 6개월쯤 병원 진료를 볼 때 원장님 책상 뒤로 숨은 적도 있다. 원장님은 익숙하신지 바로 책상을 살짝 빼셔서 내가 초바를 무사히 꺼낼 수 있었다. 초바가 집으로 온 이후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하는 행동은 바로 부모님 퇴근 시간에 커튼 뒤로 숨는 일이다. 도어록 띡-띡- 소리만 나면 후다닥 커튼 사이에 머리부터 밀어 넣는다. 물론 거대 고양이라서 커튼 밑자락이 들려서 엉덩이가 보인다. 머리만 숨으면 안 보이는 줄 아는 꼬마.
음… 요즘 유행하는 MBTI를 예로 들어볼까? 좋게 말하면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영리한 전략가 J, 나쁘게 말하면 마음을 내주지 않는 진입장벽 만리장성 I이다. 초바와 마음껏 스킨십하는 집사는 필명25가 유일하다. 아직까지는 집에서 지낸 시간보다 부모님 회사에서 자랐던 시간이 더 긴데도, 우리 부모님과는 여전히 내외하는 초바. 가끔 엄마한테 먼저 애교를 부릴 때가 있지만, 엄마가 쓰다듬어주면 괜히 움찔움찔한다. 초바의 심정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 쓰다듬어주니까 시원한데, 경계는 해야겠고, 근데 어, 어, 거기 긁어주니까 시원해. 아줌마, 거기 더 해줘. 그릉그릉~’
(대충 바닥에 발라당)
둘째의 발라당은 어설프다. 뒷다리는 앉은 자세 그대로, 머리와 앞다리 쪽만 옆으로 발라당~ 꼬리가 시작되는 부분을 궁디팡팡해주면 어정쩡한 발라당에서 엉덩이만 치켜든다.
정석 발라당을 아예 할 줄 모르는 건 아니다. 요즘 같은 날씨에 보일러를 틀어주면 사르르 녹아서 사람이 바로 누운 듯한 자세로 잔다. 고양이가 바닥에서 보일러 선이 집중된 곳은 기가 막히게 찾더라~ 물론 보일러에 지질 때, 뒷다리 사이에 뱃살이 한쪽으로 늘어지지 않고 볼록 나온 피(하)지(방)컬을 보여준다.
초바는 사교성이 떨어지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나를 많이 닮았다. 필명25는 학교 다닐 때 여론을 주도하려는 애들의 기싸움은 관심도 없었고, 분위기가 만드는 정치질 소용돌이에 휩싸여 이리저리 치이고, 스트레스만 제일 많이 받는 부류였다. 이처럼 신입이와 요뜨의 기싸움에 초바는 중간에 끼어서 스트레스만 받는다.
엄마와 동생이 싸우면 중립기어부터 박는 편이다. 둘이 시비가 붙어서 ‘우아아웅!’ ‘무와아아어어옹!’(사람 말로 심한 말이려나?) 말싸움을 시작하면 초바는 밥을 먹다가도 조용히 뒤로 빠져 있는다. 현명하다.
초바가 아무리 소심하다고 해도, 은근 성깔은 있어서 다른 고양이와 싸울 때도 있다. 단지 신입이와 요뜨가 싸우는 빈도가 워낙 많아서 묻힐 뿐. 무한대 옆에 상수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상수가 묻히는 느낌? 싸울 때 꼬리털이 부풀어서 너구리만큼 커진다. 안 그래도 살쪘는데, 털쪄보인다.
알프스 산맥만큼 웅장한 체격에, 우리 집의 중립국 포지션까지… 정말 스위스 같은 고양이다.
우리 집으로 찾아온 아기 천사 초바. 집사들은 너를 많이 사랑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마음을 조금씩 더 열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