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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15. 2023

브리즈번

필섭 시점 상춘일기_09




겨울을 피해 우리는 호주에 한 달을 머물렀다. 상춘 여동생 가족이 살고 있는 호주 브리즈번. 상춘은 세 번째이고 나는 처음이었다.

동생은 결혼과 동시에 호주로 떠났다. 상춘은 15년간 한 번도 동생에게 가보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에 엄마를 모시고 처음 호주에 갔다. 아버지가 없는 첫 명절을 가족 모두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두 번째로 간 건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추석 때 이주 정도였다. 그리고 세 번째는 나와 함께였다. 엄마 없는 첫 새해를 동생과 같이 보내고 싶어 우리는 크리스마스 하루 전날 비행기를 탔다.

거의 십오 년간 멀어서 바빠서 돈이 여유롭지 않아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호주를 이 년 동안 세 번이나 다녀올 수 있었던 건, 호주는 멀지만 동생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브리즈번은 빛이 참 눈부셨다. 하늘은 파랗고 볕은 종일 쨍하고 공기는 선명하고 바람은 나른했다. 여름이기도 했고 그곳은 원래 그런 곳이라 했다.

한창 자라는 남자아이인 그의 조카 둘은 나를 숙모라 불렀다. 숙모라 부르지 말고 그냥 이름을 부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나를 놀리느라 꼬박꼬박 숙모라 불렀다. 나는 숙모 소리가 낯간지럽게 어색해서 적응을 못하다가 떠나올 때쯤에는 숙모라 부르는 소리에 자연스레 대답하는 나를 보고 뭔가 진 것 같은 기분에 허탈해졌다.


종종 상춘과 나 둘이서만 버스나 기차를 타고 브리즈번 시내에 나갔다. 미술관에 가거나 강을 가로지르는 무료 보트를 타고 아무 데나 내려 강가를 걷거나 공유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달리거나 사이사이 작은 골목을 구경하거나 유명한 펍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거나 하는 계획 없는 시간을 보내다 기차를 타고 다시 집으로 오는, 그런 시간들이 우리를 조금씩 편안하게 해 주었다.





일주일 정도는 시드니에 머물렀다. 시드니에 있는 뉴사우스웨일스 미술관(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에서 상춘은 내게 호주의 원주민 예술가인 'Judy Watson'을 알려주었다. 엄마와 함께 호주에 왔을 때 처음 보게 된 그녀의 작품이 아주 좋았다고 내게 말했었다. 상춘이 좋아하니 나도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그림 에는 슬픔과 고통이 있고 그것이 치유되는 느낌 또한 함께 있었다. 우리는 주디 왓슨의 그림이 가득한 미술관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호주에서 떠나오는 날, 어린 조카와 상춘 동생과 나는 많이 울었다. 한 달 반 정도를 함께 한 공간에서 지내면서 우리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서로가 서로에게 어느 한편을 내어주게 되었던 것 같다. 헤어지는 순간 우리는 그 한편의 크기를 느꼈고 엄마의 부재 또한 다시 느꼈다. 누군가의 부재가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걸, 그것이 슬프면서도 감사한 일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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