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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투리 Oct 19. 2023

노화는 겨울비처럼

필섭 시점 상춘일기_11

상춘의 얼굴은 여전하다. 얼핏 보면 다 나은 것만 같다. 불편한 채로 그냥 적응해 버린 건 그만 안다. 오른쪽 눈썹과 눈꺼풀의 근육이 둔해서 눈을 시원하게 뜨지 못하는 것, 음식은 왼쪽으로만 씹을 수 있다는 것, 물을 마시고 오물오물할 수 없다는 것, 그 물이 흐르지 않게 여전히 손가락으로 입술을 잡아야 한다는 것, 볼을 꽉 꼬집으면 아픈 게 아니라 시원하다고 좋아하는 것, 사실은 얼굴이 늘 뻑뻑한 채로 그러려니 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 내가 아는 것은 그 정도뿐.



그의 오른쪽 눈에 자꾸만 쌍꺼풀이 생기려 한다. 느끼하다. 안 생기면 좋겠다. 내가 싫어하니 그는 일부러 쌍꺼풀을 만들고 난 기겁 한다. 쌍꺼풀이 생기면 시야가 시원하단다.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오른쪽 근육들이 그렇게 스스로 생존할 방법을 찾나 보다.

상춘은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릴 때가 많다. 재작년부터 그랬다. 상춘 이것 좀 봐하면서 핸드폰을 들이대면 안경을 이마 위로 올리고 팔을 쭉 뻗어 핸드폰과의 적당한 거리를 만들었다. 그 모습이 우스워 나는 매번 놀려댔는데 그는 진지하다. 진지하게 나이 듦을 나보다 빨리 느끼고 있다. 나이 듦의 첫 단계는 노안인 건가. 구안와사로 노안이 더 빨리 왔을 거라며 그는 씁쓸해했다.



어릴 땐 빨리 걷고 빨리 말하고 빨리 자라는 게 좋은 거였는데 어느 순간 늦된 게 더 좋은 것이 되다니. 그 변곡점이 어디쯤일까 상춘에게 묻는다면 구안와사라고 말하겠지. 늙어가고 있다는 걸 눈치챌 만큼 우리는 안정되었다.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지우개를 파서 찍은 산책길의 상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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