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섭 시점 상춘일기_12
또 새해가 왔고, 둘째 날은 상춘 아버님 기일이다.
돌아가신 다음 해에는 어머니와 동생이 있는 호주에, 그다음 해에는 안면마비 때문에, 그다음 해에는 나와 호주에 있었다. 해서 기일에 맞춰 산소를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홍색 꽃이 핀 화분을 사서 갔다.
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이후로 우리는 죽음과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죽음은 쉽고 삶은 어려운 것 같은데, 삶은 죽음으로 완성되는 것도 같고 죽음은 삶으로 존재하는 것도 같다. 삶은 짧고 죽음은 긴 것인지 삶은 길고 죽음은 짧은 것인지, 같은 시공간에 있지 않은 슬픔은 죽음으로 사라지는 것인지 삶으로 채워지는 것인지.
돌아오는 길, 상춘은 울지 않았지만 우는 것 같았다. 종종 상춘은 그렇게 눈물 없이 운다. 대부분 그 대신 눈물을 쏟아내는 건 나다. 상대의 슬픔 버튼이 나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듯이 나는 상대가 울려할 때 먼저 눈물이 나온다. 그런 나를 보고 상춘은 어이없다며 웃을 때가 많다. 눈물새치기자와 함께 지내는 상춘은 울 타이밍을 자주 놓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