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이해할 수 없는 문화도 있다. 그럴 땐 그냥 받아들이기로 태세 전환
숟가락 일부러 안 가져왔지?
점심시간이 되면 항상 갈등한다. 레스토랑에 갈 것인가? 아니면 포장해와서 먹을 것인가? 기계를 고치다 말고 레스토랑에 다녀오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된다. 그래서 일이 점심때 즈음 끝나면 레스토랑으로 가고 그렇지 않으면 포장해서 먹는다. 동행한 수리 기사 아니면 공장 직원 중 한 명의 도움을 받아 근처 레스토랑에서 포장해온다.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커리와 로띠 위주로 먹는다. 나는 항상 숟가락도 가져다 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막상 음식이 도착해서 열어보면 숟가락은 들어있지 않다. 숟가락이 없어서 못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니다. 레스토랑에는 기본적으로 숟가락을 비치하고 있다. 우리처럼 음식을 먹는 용도가 아니라 음식을 자신의 접시에 덜기 위한 용도로 사용한다. 숟가락이 없으면 어쩔 수 없이 손으로 음식을 먹는다. 한 번은 음식을 포장해온 수리 기사에게 물어봤다.
“너, 일부러 숟가락 달라는 소리 안 했지?”
“아니야, 잊어버린 거야.”
“미안해 (I am sorry)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그래도 미안하다는 말은 들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인도인은 ‘미안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재채기한 후에만 ‘미안해’라고 한다. 혹자들은 200년간의 영국 통치를 겪으면서 ‘미안해’라는 말을 하고 잘못을 인정하면 죗값을 받아야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문화가 되었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사실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인도인에게 ‘미안해’를 왜 안 하는지 물어보기도 했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에 대해 질문을 하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상한 것이 그들에게는 이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고수는 빼주세요
인도 음식을 참 많이 먹고 고수가 들어간 음식을 많이 먹었지만, 고수의 맛은 아무리 먹어도 적응되지 않는다.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커리에는 ‘코리앤더 Coriander (고수)’를 빼달라고 요청한다. 커리에 들어가는 고수는 요리를 다 한 후 마지막에 고수를 뿌리기에 고수를 빼달라는 요청이 어려운 요청은 아니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알았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음식이 나오면 역시나 고수가 들어있다. 같이 있는 현지인에게 “주문은 받았는데 왜 안 빼줄까?”라고 물어보면 현지인 역시 “나도 이해를 못 하겠어.”라고 대답한다. 레스토랑뿐만이 아니라 커피숍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케이크는 전자랜지에 돌려야 제맛
커피숍에 가면 으레 케이크 한 조작도 주문한다. 주문하면서 꼭 하는 말이 있다. “전자랜지에는 돌리지 말아 주세요. (No microwave)”
음식이 나와 받으러 가면, 케이크는 전자랜지에 돌려져 크림이 녹아 흘러내린다. 따뜻한 케이크를 먹어야 한다. 직원에게 항의를 해보지만 들은 체 만 체한다. 여기서도 역시 ‘I am sorry’는 들을 수 없다.
인도의 케이크는 한국의 생크림 케이크와는 다르다. 버터크림 맛에 가깝다. 그리고 설탕 입자가 풀어지지 않아 전자랜지에 돌리지 않고 먹으면 설탕이 씹힌다. 나는 어려서 먹던 버터크림 맛이기에 인도의 케이크를 좋아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도 힘든 맛을 인도에서는 어느 커피숍을 가든 맛볼 수 있다. 문제는 전자랜지에 데워서 준다는 것이다. 그냥 데우지 않고 주면 딱 좋을 텐데 가는 곳마다 데워서 준다. 주문할 때 항상 얘기해도 ‘Yes’라고 말하고는 항상 전자랜지에 돌려서 준다. 아마도 다른 사람을 잘 의식하지 않고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여기서도 동일하게 나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일을 처음 겪었을 때는 짜증이 났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짜증이 나고, 레스토랑 직원에게도, 커피숍 직원에게도 짜증이 났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번에도 그럴 건데 내가 왜 짜증을 내는 거지?’ 내가 짜증을 내든, 내지 않든 변하는 상황은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저 내 기분만 안 좋아진다는 걸 알았다. 이런 생각이 들자 숟가락을 가지고 오지 않아도, 케이크를 전자랜지에 돌려줘도 짜증이 나지 않았다. 그저 ‘오늘도 역시 그렇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짜증 나는 일이 그냥 작은 해프닝이 된 것이다. 사건은 같지만, 감정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필요 없는데 감정을 허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를 조금만 바꾸면 상황이 그저 상황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상황을 내가 내 안으로 끌고 들어오면 그 상황은 짜증을 만들기도 하고 두려움을 만들기도 한다. 나의 감정을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고 내가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 상황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내가 감정을 만들어낸 것이다.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상황과 문제를 맞닥뜨린다. 근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짜증 나는 일도 두려워할 일도 얼마 되지 않는다. 굳이 화를 내지 않아도 되는 일인데 애써 화를 만들고 있는 경우도 많다. 짜증을 내서 무엇하겠는가? 어차피 바뀌지 않을 일이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겨보자. 그렇게 태도를 바꾸면 나를 힘들게 하던 일이 더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고 그저 그런 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