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은 처음이라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첫 주재원 파견 시에는 기계를 수리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그래서 기계가 고장났다는 연락이 오면 그 공장을 찾아가야 했다. 자연스레 공장이 위치한 시골로 돌아다녔다. 시골에 있는 공장일지라도, 큰 공장은 직원이 100명에서 200명이 넘는 곳도 있다. 그런 곳에 가면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오는 순간까지 사람들의 시선이 나만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경비실을 들러 이름을 적고 공장 안으로 들어선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건물의 모든 창문에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심지어 옥상에서도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있다. 당황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건물로 들어서면 보통은 사장실에 들러 잠깐 이야기를 나눈다.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고, 가능한 한 빨리 문제가 있는 기계를 보러 가려고 한다. 하지만 사장은 내 생각과는 다르다. 앉자마자 가장 먼저 하는 질문이 있다.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도 좋아하세요?”
“인도 좋아합니다. 신기한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죠.”
“인도 음식은 어때요?”
“버터 치킨, 만주리안 같은 음식 좋아해요. 버터 난 진짜 맛있죠.”
“하하하. 인도 날씨가 덥지는 않나요?”
“이제 반은 인도 사람이죠.”
“하하하”
“일단 기계가 고장 났다고 하니, 기계 먼저 보겠습니다.”
내가 가는 곳은 현지 기사가 수리하려고 해도 안 되는 곳 위주로 다닌다. 그래서 힘든 문제가 많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기계 생각으로 가득하다. 기계가 잘 고쳐지면 나중에 사장과 편하게 얘기를 나누지만, 가끔 고치기 힘든 문제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와 사장 둘 다 마주 보고 앉아 있기 민망해진다. 하루 동안 기계가 작동하지 않으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기계를 먼저 보려고 한다. 가능한 한 대화를 빨리 끝내고 기계를 보러 간다.
외국 사람은 처음이라
공장에 들어설 때 보였던 수많은 눈길이 이제는 바로 옆에서 쳐다본다. 무표정한 얼굴로 단 한순간도 눈길을 떼지 않는다. 싸늘하다. 시골에 있는 공장에 갈 때마다 매번 겪는 일이라 무뎌질 만도 한데, 부담스러운 눈길은 아무리 자주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 번은 같이 다니는 현지 수리 기사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아니, 왜 이렇게 쳐다보는 거야? 가서 사람들한테 외국 사람 처음 보느냐고 물어봐.”
현지인 수리 기사는 사람들 몇 명에게 가서 물어보고 와서 말해줬다.
“이 사람들 다 외국 사람 처음 본데.”
“진짜? 그래도 좀 너무 하잖아. 그만 좀 쳐다보라고 해.”
현지인 수리 기사는 사람들에게 소리친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듣고 나를 안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는 다시 나를 쳐다본다. 그런 공장에 한참 동안 있다 보면 마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된 기분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외국인을 봤으니 신기할 것이다. 그래도 좀 적당히 쳐다봐야지.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뚫어지라 쳐다본다. 인도인은 보통 그렇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느낄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쳐다보고 싶으면 쳐다본다. 뭐라고 해도 계속 쳐다본다.
차이 주세요
몇 시간 동안 기계 수리가 끝나고 기계가 잘 돌아가면, 이제 사장과의 면담만 남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사장실로 들어선다. 인도는 ‘차이’의 나라답게 사장은 나에게 물어본다.
“차 아니면 커피 드시겠어요?”
“전 차이 Chai 좋아해요. 차이 Chai 주세요.”
그렇게 ‘차이’를 먹으며 여러 얘기를 주고받는다. 처음에는 기계의 문제와 수리 과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계 관리에 대한 팁을 준다. 기계에 관한 이야기가 끝나면 인도와 생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에 물어봤던 ‘인도를 어떻게 생각하냐?’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다양한 주제로 이어진다. 그리고 사장의 가족 이야기, 지역에 관한 이야기, 음식 이야기, 문화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짧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세 시간까지 이야기를 나누고 나온다. 제품 수리가 주 업무이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영업과 직결되는 것을 알기에, 기계 수리만큼 사장과의 대화도 중요하다. 그리고 사장과의 대화를 통해서 인도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도 정말 많았다.
하루에 2~3개의 공장을 들르는데, 그렇게 큰 공장에서 몇 시간 동안 사람들에 눈길을 받고, 못하는 영어로 사장과 몇 시간 동안 얘기를 하고 나면 진이 빠진다. 그래도 진이 빠진 만큼 저녁밥은 맛있다.
얼굴 뚫어질 뻔
이렇게 나를 뚫어지라 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국 사람은 어떤지를 생각하곤 한다. 만약 70년대의 한국 공장에 서양사람이 기계를 고치러 왔다면 하루 종일 뚫어지라 쳐다봤을까? 만약 음식점에 내 옆에 연예인이 있다면, 음식점에 있는 모든 사람이 밥을 먹는 내내, 연예인을 쳐다봤을까? 아마도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이 모습을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한다. 인도에 있으면서 정말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느꼈다. 그중 하나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인도인은 그 어느 나라 사람보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하고 싶은 생각을 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한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생각하며 행동한다. 배려인 경우도 있고 눈치 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만약 옆에 연예인이 앉아 있어도 뚫어지라 보지는 않을 것이다. 잠깐 보고 말 것이다. 그 연예인이 민망해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도 사람은 그런 민망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보고 싶으면 그냥 보다.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다를 뿐이다. 살아온 역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너무 사소한 것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충분히 더 할 수 있으면서도 망설이는 이유는 배려와 겸손 같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하는지에 관한 교육을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보고 싶은 것이 있어도 뚫어지라 보지 못하는 모습, 당하고 있으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는 모습, 알아도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끔은 안타까울 때도 있다. 좀 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살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해도 된다. 하고 싶은 말은 좀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이 있으면 좀 하면서 살아도 괜찮다. 한 번 외쳐보자.
“야, 나 그때 기분 나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