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다양한 음료 문화와 그 이유
배고프면 길거리 음식
인도에도 길거리에 작은 상점이 많다. 작은 상점에서 생필품을 파는 곳도 있고, 담배를 파는 곳도 있고, 음식을 파는 곳도 있다.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점포라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곤 한다. 손수레를 끌고 다니면서 음식을 파는 사람도 많다. 나는 작은 점포나 손수레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음식이 있으면, 가능한 한 먹어본다. 가끔은 큰 기대 없이 사 먹은 요리가 정말 맛있을 때도 있다. 한 번은 지나가다 한국의 고추 튀김과 똑같이 생긴 음식이 보였다. 맛은 물론 한국과는 달리 인도 향신료 맛이 많이 났지만 그래도 맛있었다.
과자 전문점에서는 설탕에 절인 과자를 파는 곳도 많은데, 한 번쯤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하지만 너무도 달아서 다시는 먹을 일이 없을 것이다. 한국에 있는 사람에게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아서 한국에 돌아올 때도 사오기도 했다. 맛없는 거 알면서 왜 사 왔냐고 욕을 많이 먹었지만 말이다.
나는 길거리 음식을 먹기는 하지만 인도에 여행 온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않는다. 위생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서 병에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끓이거나 튀긴 요리가 아닌 상온에서 만든 음식은 위험할 수 있다. 잠시 출장 나온 사람이 길거리 음식을 먹고 싶다고 하면,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경험상 여행자나 출장자가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 십중팔구는 설사병에 걸린다. 일하러 출장을 나왔는데 설사병이 걸리거나 다른 병이 걸려서 입원하면 정말 낭패다.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냥 복귀하는 때도 종종 있었다.
잊지 못할 라씨
하지만 길거리 음식 중 ‘라씨 lassi’는 꼭 먹어보라고 한다. 인도 여행했던 사람들이 말하는 가장 그리운 인도 음식 중 하나로 꼽히는 음식이다. 나는 한국에 돌아와서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인도 음식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라씨’이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플레인 요구르트에 우유를 조금 넣고, 설탕을 넣고 섞으면 된다. 그러면 기본 라씨가 되고, 그 위에 견과류, 블루베리 등을 올려서 먹으면 된다. 물론 인도에서 먹는 라씨의 맛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도 비슷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한국에서 만들면 맛이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설탕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인도에서 사용하는 설탕은 우리나라의 설탕처럼 정제된 설탕이 아니고 원당에 가깝다. 그래서 입자가 크고 덜 달다. 라씨를 먹다 보면 설탕이 씹히는데 많이 달지도 않고 씹으면 달곰한 맛이 느껴져 인도 설탕은 라씨와 잘 어울린다.
아마 인도가 세계 최초의 설탕 제조국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기원전 4세기에 인도를 다녀온 그리스인 ‘메가스테네스’는 ‘돌꿀 stone honey’라고 소개했는데, 아마도 지금의 인도 설탕과 큰 차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라씨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으니 한 번 만들어 먹어보자.
차이
인도의 ‘차이 chai’는 국민차다. 인도에서 차를 지금처럼 자주 먹는 문화는 영국 식민지 시대에 생겼다고 한다. 동인도 회사가 가격이 비싼 중국산 차를 대신하기 위해서 인도 아삼 지방에서 홍차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도 ‘차이’를 파는 노점상을 볼 수 있다. 차이를 만드는 방법은 아삼차(홍차)에 계피·생강·팔각·추후·정향·카르다몸 cardamon 등 여러 향신료를 넣고 물과 우유와 설탕을 넣어 오래 끓여 먹는다. 맛은 밀크티와 비슷하고, 좀 더 진하고 달콤하다. 노점상에 따라서 생강을 추가한 ‘스페셜 차이’를 팔기도 한다. 인도의 ‘차이’의 인심은 정말 후하다. 모든 공장에서는 오전 쉬는 시간, 오후 쉬는 시간, 하루 두 번에 걸쳐 무료로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내가 다녀 본 공장 가운데 ‘차이’를 무료 제공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아삼차에는 비타민과 칼륨, 테아닌, 탄닌, 아미노산, 카페인, 테아플라빈이 포함되어 있고, 식중독 방지, 대장균 번식 억제, 피로 해소, 이완 효과, 골다공증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인도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알고 먹지는 않겠지만 어쩌면 몸에서 자연스럽게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차이는 티백으로도 있고, 레스토랑에서도 팔기도 하는데 노점상에서 파는 맛을 따라오는 곳은 없다. 그래서 아무리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도 차이는 노점상에서 오랜 시간 끓인 것을 먹었다. 가능하면 일회용 용기에 담아주는 곳을 찾아가서 먹었다. 일반 컵을 쓰는 곳에서 먹는다면, 설거지하는 모습은 보지 말아야 한다.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면 먹기 힘들 것이다.
사탕수수 주스
예전 한국에서 재래시장에 가면 설탕물 음료를 팔곤 했다. 인도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하지만 설탕물이 아니고 100% 사탕수수 주스를 판다. 사탕수수를 통째로 가지고 다니며 즉석에서 압착해서 즙을 낸다. 즙을 컵에 받으면 그대로 사탕수수 주스가 된다. 사탕수수 1대면 큰 컵으로 1잔의 사탕수수 주스가 나온다. 압착기는 녹슬고 파리가 붙어 있어 자주 먹지는 않았지만, 맛은 일품이다.
어지러우면 야자
인도 날씨는 지역마다 다르다. 델리는 여름에 40도를 웃돌고, 뭄바이는 일 년 내내 30도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델리의 여름 한낮에 거리를 걷다 보면 가끔 어지러울 때가 있다. 일사병 초기증상이다. 이럴 때면 가던 길을 멈추고 근처의 야자 주스 파는 상점에 간다. 즉석에서 끝을 자른 열매에 빨대를 꽂아 먹으면 금세 몸이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야자 액에는 단백질, 지방, 비타민C, 칼슘, 납, 마그네슘 등이 포함되어 있고, 더위 해소, 이뇨, 해독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야자열매 주스 파는 곳이 보이지 않는다면 과일 가게에 가서 수박을 사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빨간 바나나
인도 길거리 상점 중 많은 곳에서 바나나를 판다. 우리나라처럼 몇 개 나눠진 것이 아니라 가지를 통째로 잘라서 매달아 놓고 판다. 낱개로 판매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개수만큼 살 수 있다. 한 번은 출장자가 때 바나나 열매를 통째로 놓고 먹는 게 소원이라고 해서 바나나 수십 개가 달려있는 가지를 통째로 사서 호텔방에 넣어준 적도 있다.
인도에는 빨간 바나나가 있다.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인도에서는 ‘산바나나’로 불리며 여러 곳에서 판매한다. 껍질은 빨간색이지만 속은 노란 바나나와 같다. 다만 식감이 좀 더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가격도 노란 바나나보다는 비싸다. 영양소는 더 높다고 한다. 붉은빛을 보이는 항산화 색소인 루테인과 베타카로틴이 높아 눈 건강에 좋고, 안토시아닌과 같은 산화 방지제도 노란 바나나보다 풍부하다.
우리가 지금 사먹는 바나나가 거의 비슷한 이유는 사람들이 제배가 쉬운 품종만을 키우면서 다른 품종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바나나도 수십 종의 품종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가 원숭이 바나나라고 하는 작은 바나나이고, 빨간 바나나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처음 빨간 바나나 얘기를 했더니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어쩌면 ‘유발 하라리’의 말처럼 우리는 특정 식물 종이 자신이 번식하도록 인간을 길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른 종은 존재했다는 사실도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마치 물건을 잃어버리고도 잃어버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사는 우리 모습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