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인도인과 일하기 힘들어하는 이유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인도 직원이 전화했다. 컴퓨터가 바이러스 걸렸다며, 40만 원짜리 백신을 사겠다는 것이었다. 바이러스 증상과 데이터 손실 여부를 물어봤다. 데이터는 사라진 것이 없고, 인터넷을 열면 팝업이 뜬다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데이터도 유실된 게 없으면 급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인도 직원은 컴퓨터 수리하는 사람에게 확인받았고, 바이러스가 맞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이러스는 아닌 것 같았다. 악성 프로그램이 깔린 것 정도의 문제로 보였다. 내가 가면 바로 고칠 수 있으니, 수리하지 말고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했다. 인도 직원은 큰일 난다고 지금 당장 고쳐야 한다고 했다. 불안해하지 말고 딱 일주일만 기다리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간의 짧은 휴가가 끝나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다.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인도 냄새가 다시 인도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렸다. 방금 인도에 도착했지만 바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렇게 익숙해지지 않는 인도의 냄새를 맡으며 다시 인도 속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 사무실로 출근하니, 한국에 있을 때 전화했던 직원이 나를 반겼다. 나를 반겼다기보다는 이제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보자 마차 처음 한 이야기는 이랬다. “이제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해도 되나요?” 일주일 만에 만나서 하는 이야기가 바이러스라는 것에 조금은 서운했지만,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쓰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잠깐 볼게.” 컴퓨터를 켜고 일단 자료를 백업했다. 백업이 완료된 후 한국산 바이러스 검사 프로그램을 돌렸다. 역시나 바이러스는 없었다. 단지 악성 프로그램 몇 개가 검색되었다. 자동으로 실행되는 프로그램으로 컴퓨터가 켜지면 자동 실행이 되고,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열리면 끊임없이 이상한 사이트에 자동으로 접속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없어진 무료 백신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치료했다.
“다 고쳤어. 거봐. 바이러스 아니잖아.”
“컴퓨터가 계속 이상했는데.”
“이제 괜찮아. 해봐”
한참 동안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실행해본 직원은 이제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왜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보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가장 먼저 백신 프로그램을 돌려봤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물어봤다.
“너도 거의 10년을 회사 생활했으면 백신 프로그램 정도는 돌려볼 수 있지 않아? 다른 프로그램은 잘 쓰잖아.”
“오피스 프로그램 같은 건 배웠으니까 잘하지만, 백신은 배워본 적이 없어요. 배워본 적이 없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배우지 않은 걸 어떻게 알아요?
직원의 대답에서 한국인과 인도인의 차이를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었다. 인도인은 배워본 적이 없으면 못 한다. 그런데 한국인은 배워본 적이 없는 일을 한다. 한국인에게 일을 시킬 때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알려주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알려주고 한마디 한다. “하면서 모르는 건 물어봐.” 그럼, 일을 지시받은 사람이 일을 알아서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묻지도 않는다. 물어봐야 대답이 뻔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건 찾아봐. 나도 잘 몰라.” 그 한마디면 다시 일하기 시작하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몰라도 대부분 방법을 찾아내 일을 수행하고 결과를 만들어 온다.
반면 인도인은 다르다. 알려준 일, 할 수 있는 일만 한다. 모르는 일, 배우지 않은 일은 못 한다. 엑셀을 하려면 엑셀을 배워야 하고, 워드를 하려면 워드를 배워야 한다. 배우지 않은 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하지 못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이 이상한 것인지 인도인이 이상한 것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리고 인정하게 된 것은 한국인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투두리스트입니다
위와 같은 비슷한 사건을 몇 차례 겪고 나서는 일하는 방식을 바꿨다. 아침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하루에 각각의 직원이 해야 할 일에 대한 논의한다. 그리고 논의된 할 일 리스트를 화이트보드에 적는다. 그리고 만약 화이트보드에 써 놓은 일 중에서 오늘 처리하면서 문제가 생기거나 오늘 끝마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알려달라고 했다. 처리가 안 되는 일은 나도 개입해서 같이 처리하기 위험이었다. 내가 도와주는 것은 한국 작은 융통성을 발휘하거나 다른 시도를 해보는 정도가 전부다. 인도인의 꼼꼼함에 한국인의 이상한 특성인 배우지 않은 일도 하는 융통성을 더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도와주는 일은 큰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해본 방식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 장애물을 회피하거나, 다른 시도를 하는 방법 정도였다. 전문적인 부분은 내가 도와주지도 못한다. 각 담당자가 자신의 분야에서는 당연히 나보다 더 뛰어난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방법으로 일을 처리하니 업무 속도가 빨라졌고 효율도 좋아졌다.
한국인은 이상해요
인도인뿐만이 아니라 세계 다양한 국가의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면 한국인이 얼마나 이상한지 알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은 인도인처럼 자신이 배우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잘하지 못한다. 시도해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인은 정말 이상하게도 배우지 않은 것을 시도하고 성과를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차가 고장 나면 일단 보닛을 열어본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보닛을 열어 들여다본다. 봐도 무슨 문제인지 모르면서 일단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전시회 또는 박물관에 그림이나 조각상을 보면 일단 손으로 만져보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은 멀리 떨어져서 보는데 한국인은 그림 앞으로 걸어가서 조사하듯 들여다본다. 그리고 손이 자꾸 올라와 그림을 만져보려고 한다. 그림은 하나도 모르지만, 최대한 가까이에서 들여다봐야 하고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 그래야 감상을 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해외 박물관에는 ‘손대지 마시오’라는 경고를 한국말로 써놓은 곳이 많다.
내가 신입사원 때 모르는 일을 상사한테 “이 일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물어보면 하는 대답이 똑같았다. “잘” 끝이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모르는 것도 이것저것 나름대로 해보며 방법을 찾아본다. 매일 같은 대답을 하는 상사에게 짜증이 난 적도 있었다. 그냥 가르쳐주면 될 것을 끝까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 “네가 알아서 할 수 있을 것 같았어.”라고 말하고 끝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건은 해결되고 큰일 같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한국인들은 배운 것을 배운 대로만 하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얘기하고, 배우지 않을 일을 알아서 해내야 융통성이 있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배우지 않은 것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한지, 배우지 않은 것을 해내는 것이 당연한지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관념 중에는 몇 가지는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가르쳐주지도 않을 걸 못하면 뭐라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융통성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천재를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는 천재가 너무 많은 나라일지도 모른다.
“알아서 잘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