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를 구합니다
영어 공부를 하려고 인도 신문을 자주 봤다. 인도 신문에는 한국 신문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다. 웬만한 사건 사고는 잘 실리지 않는다. 한국 면적의 30배, 13억의 인구가 있으니 사건 사고가 좀 많겠는가? 우리나라에서 큰 사건·사고는 그저 작은 해프닝일 뿐이다. 또 다른 점은 신문 일 면에 시체의 모습이 실린다는 점이다. 사고로 죽음 사람의 사진이 버젓이 실린다. 또 다른 점은 신랑 신부를 찾는 광고가 무척이나 많다는 점이다. 일요판 신문에는 결혼 상대를 구하는 광고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종교와 지역, 계급 등을 프로필에 올린다. 이런 광고를 보고 부모들끼리 연락해, 정작 결혼하는 남녀들은 전혀 모르고 진행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인터넷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맞선 사이트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온라인 결혼 시장은 3개의 주요 웹사이트인 ‘샤디닷컴shaadi.com’, ‘바랏매트리모니닷컴bharatmatrimony.com’, ‘지반사티닷컴jeevansathi.com’이 주도하고 있다. 프로필 등록란에 ‘카스트 Caste’나 ‘자티 Jati’ 계급과 나이와 종교, 사용하는 언어, 소속 월급, 직업, 거주지, 해외 교포(NRI) 등 정보와 이혼, 사별의 경우 아이의 세세한 정보까지 기재한다. 결혼을 전제로 자신의 카스트와 수준에 맞는 상대를 찾기 위함이다.
카스트는 살아있다
카스트 caste는 4가지로 분류한다. 브라만(사제·성직자), 크샤트리아(귀족·무사), 바이샤(상인·농민·지주), 수드라(소작농·청소부·하인)이다. 하지만 실제 인도에서는 카스트만으로 계급을 나누지 않는다. 자티 Jati라는 계급 구분이 있는데, 이는 직업을 기반으로 하는 가문 구별이다. 대대로 세습이 되는데, 현재 약 3500개 자티가 존재한다. 우리로 치면 친족 개념이나 가문으로 보면 된다. 자티 집단 내에서도 상하 관계는 엄연히 존재한다. 요즘은 카스트나 자티 대신에 ‘커뮤니티 community’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인도 사회 전반에서 카스트 제도는 공식적으로 1949년에 폐지되었지만, 4000년이 넘게 존재해온 제도이자 관습이라, 아직도 인도 사람의 일상생활과 마음속에 관습으로 뿌리 깊게 남아있다. 결혼은 대부분은 같은 카스트 집단 내에서 이루어지며, 다른 카스트 간의 결혼은 2011년 기준 5.8%에 불가했다.
카스트는 힌두교도들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도 따진다. 인도에는 기독교인과 불교도, 무슬림들 사이에서도 카스트가 존재한다. 일례로 케랄라 주에서 2018년도에 카스트가 다른 기독교인들끼리 결혼했는데, 신부 가족들에 의해 신랑이 명예 살해당한 경우가 있었다.
자녀의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생각카스트에 맞고, 종교도 맞는 결혼상대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 전체가 결혼상대를 찾는 게 일반적이다. 위계문화가 강한 인도에서는 주로 부모가 결혼 상대를 찾고, 결정한다. 인도에서는 연애결혼을 love marriage, 중매결혼을 Arranged Marriage라고 하는데 중매결혼 비중이 80%가 넘는다. 중매결혼이지만 오히려 이혼율은 의외로 1.1%에 불과한 점이 신기하다.
인도는 1990년대에 시작된 개방 경제 정책 덕분에 경제가 크게 발전했다. 그 결과, 대도시를 중심으로 소득이나 학력, 계급이 높은 사람들 사이에 자유연애가 활발해졌다. 10여 년 전에 중매결혼이 90%를 넘었던 것과 비교하면 연애결혼의 비중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인도에서는 자유연애를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은 잘 알 수가 없다. 공공장소에서 애정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참금이 있어야 시집을 간다
예전의 한국과 같이 지참금 문화가 있다. 집 한 채 이상의 돈이 오가기도 하므로 신부 집안은 지참금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기도 해서 집안 형편이 기우는 것이 다반사다. 지참금 부족 문제로 신부의 코를 자르거나, 신부 몸에 불을 지르기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2021년에는 인도 북부 하리야나 주에서 여성이 상위 카스트에 해당하는 사람과의 결혼으로 인하여 23세의 신랑이 여성의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사건이 있었다. 2018년 텔랑가나주에서는 신부가 자신의 가족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인도의 중매결혼 문화와 지참금 문화가 지금의 우리에게는 마치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별반 차이가 없었다. 혼수의 항목이 정해져 있었으며, 이불은 기본이었고, 가족에게 양복값을 줘야 했다. 그뿐인가? 잘 사는 집에서는 지참금 없이 시집을 왔다고 구박당하는 경우는 부지기수로 많았고, 이혼하거나 살인이 일어나기도 했었다. 단지 우리가 이전의 모습을 잊어버린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