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왜 필요해?
2004년이었다. 처음 인도에서 차를 타고 가는데 도로 쪽을 보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 그 사람들이 용변을 보고 있었다. 차도 옆에 앉아서 큰일을 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직도 인도에는 화장실이 아닌 들판에서 용변을 보는 사람이 많다. 화장실 가는 것이 싫어서 그런 사람도 있지만, 화장실이 없어서 그런 사람이 대부분이다.
2009년경에 나는 2층 단독을 임대해서 살고 있었다. 2층 위에는 옥상이 있었고 옥상에 올라서면 바로 옆 들판이 훤히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어쩌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옥상에 올라가면 물이 담긴 바가지를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가는 여성을 보곤 했다.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면 이제는 남자들의 차례다. 이제는 남자들도 너나없이 물이 담긴 바가지를 손에 들고 숲 속으로 들어간다. 낮이 되면 이제는 소개 양의 차례다. 사람들이 지나간 그곳에 소들이 온다. 풀을 뜯으면서 한가로이 노닐고 다닌다. 가끔 돼지도 오 다닌다. 한국의 돼지처럼 생기지 않고, 오히려 멧돼지에 가깝게 생긴 돼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돌아다닌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저녁이 되면 이제는 개들의 시간이다. 낮 동안 길바닥에 쓰러져 자던 개들이 저녁이 오면 깨어나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 집 옆 들판과 숲은 사람과 동물 모두 애용하는 자연 그대로의 휴식처였다.
인도에서는 ‘화장실 없는 집에 시집가지 말자’라는 캠페인이 있기도 했다. 2011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2억 인구 중 75% 이상이 휴대전화를 보유했지만, 화장실이 설치된 가정은 50%, 하수도 처리시설이 연결된 가정은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관습에 가장 취약한 사람은 노인과 여성들인데, 이는 위생문제뿐만 아니라 어둠 속에서 화장실을 찾다가 사고를 당하는 안전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조혼 문화
화장실 문제를 좀 더 큰 틀에서 놓고 보면 여성의 인권이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2012년 6월 2일 MBC 뉴스에 인도에 결혼 문화가 소개된 적이 있다. 뉴스에서는 16세 미나의 사연이 소개되었는데 너무 어려서 결혼이 뭔지도 모르고 결혼했다고 한다. 아빠와 할아버지가, 결혼하지 않으면 독을 먹고 자살하겠다고 협박해서 결혼했다고 한다. 결혼 생활이 지옥 같아, 결국 간신히 도망쳐 친척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부모는 여전히 남편 곁으로 돌아갈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합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는 나이는 남성 21세, 여성 18세라고 정해져 있다. 하지만 법보다 관습이 우선인 시골 지역이 아직도 많고, 18세 미만의 어린 여성의 결혼이 공공연히 일어나고 있다. 2011년 인구조사에서 전체 기혼 여성의 30.2%가 18세 이전에 결혼한 것으로 조사됐을 만큼 인도에는 조혼이 만연해 있다. 그나마 이 비율은 2001년 전체 기혼 여성의 43.5%가 18세 이전에 결혼한 것으로 조사된 것에 비하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결혼 후에도 문제는 지속된다. 여성이 결혼하면 오롯이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인도의 문화이다.
2016년 블룸버그의 조사에 따르면, 인도 여성의 사회 참여율 또한 28.6%에 그치고 있다. 여성의 대부분은 결혼으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심지어 인권마저 포기해야 한다.
2012년 뉴델리에서 여대생 조티 싱(Jyoti Singh) 씨가 남자 친구와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도중 운전자를 비롯한 남성 6명으로부터 잔인하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 사건 발생 13일 후 숨지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사건 발생 후, 관광부 장관인 마헤시 샤르마(Mahesh Sharma)는 “여성들에게 짧은 옷을 입지 말라”며 강간의 책임을 여성에게 돌렸다.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정치인들의 행동 요구했다. 그 후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한 강화된 처벌과 새로운 법률이 생겨났다. 하지만 여성 인권 관련 사고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강간 신고가 금기시되고 있기도 하다. 2018년에 강간 사건은 34,000이 보고되었다. 이는 20분 간격으로 1건의 강간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중 85% 이상이 기소로 이어졌지만, 유죄는 27%에 불과했다.
인간이라면 기존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
델리 정부는 ‘스템(STEM)’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하였다. 스템(STEM)은 과학(Science), 기술( Technology), 엔지니어링(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에서 따온 것으로 성차별로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는 여학생들을 위한 학습 도우미이다. 정부 차원에서 여성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한 긍정적인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인권이란 풀어서 얘기하면 인간의 권리이다. 좀 더 늘려서 얘기하면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말한다. 기득권의 사회는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만들어 놓고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한다. 소수자의 인권을 찾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 아주 작은 변화가 일어나면 기득권은 얘기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양보해 줬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저러고 있다."
하지만 인권이란 양보해주는 것도 양보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갖게 해달라는 외침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