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을 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는 유독 신체 절단자가 많다. 그 안에는 인도의 의료 시스템이 한몫하고 있다. 신체에 문제가 있으면 치료를 받으면 되겠지만, 인도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병에 걸리거나 신체에 문제가 생겨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생계를 꾸려나가기도 힘든 가난한 사람이 몸이 아프다면 어떻게 할까? 작은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다고 큰 병원에 가라고 해도 병원비를 감당할 돈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실제로 인도에는 대학병원 같은 곳에 갈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심지어 가장 저렴한 병원에 갈 돈조차도 없는 사람이 정말 많다. 돈이 없어서 병을 알아도 방치하거나, 의료 자격이 없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에게 시술받기도 한다. 문제는 불법 의료행위가 병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인도에서는 민간요법도 성행한다. 우리나라도 이전에 정말 많은 민간요법이 있었지만, 잘못된 민간요법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어렸을 때 입술에 벌에 쏘인 적이 있다. 할머니는 벌에 쏘이면 된장이 특효약이라고 해서 입술에 된장을 한 움큼 발라주셨다. 진정이 되기는커녕 입술이 엄청나게 부어올랐다. 지금은 벌에 쏘이면 된장을 바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차 감염을 일으켜 상처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위생과 보건에 대한 교육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한 것이다. 인도는 아직까지도 보건 교육 수준이 낮다. 잘못된 지식도 많고, 잘못된 믿음도 많다. 그래서 이상한 방법의 민간요법이 버젓이 성행하고 있으며, 그것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이런 이유로 팔이나 다리에 문제가 생기면 병을 방치하다 작은 병원에 가서 절단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절단하는 일도 많다. 절단 장애인이 되면 기본적으로 육체노동을 하지 못하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람 중 일부가 길거리에 나와 동냥을 한다. 차가 다니는 위험한 도로 한복판에서 신호로 차가 멈추면 구걸을 한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절단 장애인이 구걸하는 모습을 정말 많이 목격하게 된다.
똑똑똑
인도에서 어디를 가든 보통은 1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그래서 차를 타면 특별한 일이 없으면 잠을 잔다. 그런데 잠을 자다 보면 ‘똑똑똑’ 소리에 눈을 뜰 때가 있다. 차를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눈을 떠보면 밖에서 팔이 한쪽 없거나 다리 한쪽이 없는 사람이 돈 달라고 차를 치는 것이다. 불쌍한 처지인 것은 알지만 차를 두드리면서 돈을 달라는 것은 좀 심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도는 차 유리에 선팅하지 않아서, 분명 안에서 자는 모습이 보일 텐데도 굳이 깨워서 돈을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해서는 돈을 잘 주지 않는 편이다. 워낙 그런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그 돈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인도인 친구들은 그런 사람을 보면 돈을 자주 주었다. 그리고 다른 차에서도 돈을 주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다. 인도 사람들은 원래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상당히 개인적인 성향의 인도인들이 이렇게 돈을 쉽게 베푸는 모습이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돈을 받은 사람의 모습도 조금은 낯설었다. 감사하는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한국 사람이라면 가볍게라도 ‘감사합니다.’라고 말 한마디 했을 텐데 말이다. 같이 일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너 돈도 넉넉하지 않은데 돈은 잘 주네. 왜 그렇게 잘 주는 거야?”
“힘든 사람을 도와주면 내가 좋은 행동을 쌓는 거잖아.”
“불쌍하거나 도와주려고 주는 게 아니고?”
“그런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좋은 일을 하면 나한테 좋은 거지.”
현생은 7번의 윤회 중 하나일 뿐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곳은 불교가 탄생한 국가였다. 물론 친구들은 힌두교도였지만, 불교의 교리 대부분은 힌두교에서 나왔다. 힌두교에는 7번의 윤회가 있고, 그 교리가 불교로 들어온 것이다. 인과응보라는 기본 철학이 있고, 현세에 한 행동이 다음 생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삶에서 좋은 공덕을 쌓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불교의 모태가 된 힌두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교리이다. 그래서 돈을 주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마음도 있지만, 좋은 일을 하고 약자에게 베풀면 결국 자신이 좋은 공덕을 쌓는 것이라는 사상이 깔려 있다. 받는 사람은 필요해서 요청한 것이고, 도움을 준 사람도 좋은 공덕을 쌓았으니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크게 감사할 일이 아니다.
인도인의 프레임에서 봤을 때는 나의 공덕을 쌓기 위해 기부를 한 것인데, 한국인의 프레임으로 보고 있었기에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상대방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면 달리 보인다는 말처럼 나의 시선이 아닌 인도인의 시선에서 상황을 봐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알면서도 참 쉽지는 않다. 평생을 내 눈을 통해서 내 경험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다가 갑자기 다른 사람처럼 생각하고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어떻게 쉬울 수 있겠는가? 하지만 때로는 그런 노력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시작점이다. 그리고 다른 관점과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두 번째이다. 그래야 항상 똑같은 잣대, 나만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의 기준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면, 그런 경험이 하기는 힘들다. 오늘은 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보면 어떨까?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