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하 파스완, 청바이 입었다고 가족들에게 심한 구타로 사망, 시신 매달아
10대 소녀의 죽음
2021년 인도의 한 10대 소녀가 청바지를 고집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구타당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인도의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 사는 네하 파스완(17)은 할머니로부터 “몸에 꽉 끼는 청바지가 지나치게 외설적”이라며 손녀를 질책했지만, 파스완은 청바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소녀는 같은 지적을 하는 할아버지와 삼촌 등 가족들에게 심한 구타를 당하다 머리에 심각한 부상과 골절상을 입고 결국 목숨을 잃었다. 가족들은 청바지를 입는 10대 소녀를 나무라다 폭행한 것도 모자라, 소녀의 시신을 집 근처 다리에 매단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조사에서 “가족들은 항상 그녀가 청바지 입는 것을 반대했고, 그날도 몇 번이나 청바지를 입지 말라고 지적했었다”라고 진술했다.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개발이 많이 된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는 청바지 입는 것을 잘못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있어도 살인까지는 일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시골의 이야기는 다르다. 인도의 일부 지역은 아직도 법보다 강력한 지역 규범을 강조하는 곳이 있다. 인도는 한국의 30배가 넘는 상상하기도 힘든 큰 지역에 걸쳐있는 국가다. 주마다 다른 주법이 적용되고, 다른 관습과 전통이 있는 지방은 대도시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인도의 시골에서는 지역 규범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상이 자신의 자식이라도 말이다.
배꼽티는 괜찮아요
내가 인도를 처음 방문했던 2004년에는 청바지를 입는 여성을 거의 볼 수 없었다. 아주 가끔 청바지를 입은 여성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우와. 청바지 입었다.” 나와 같은 외국인이 보기에도 신기했을 정도니 현지인에게는 정말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 시간이 흐를수록 청바지를 입는 여성이 늘어났다. 청바지뿐만이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여성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 세대는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사리가 여성의 기본 의상인 인도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조금 의아한 것도 있었다. 인도에는 ‘사리 saree’, ‘사르와르 카미즈 salwar kameez’, ‘가그라 ghaghra’, ‘두파타 dupatta’ 같은 다양한 전통의상이 있지만, 상의 속에 받혀있는 블라우스인 ‘촐리 choli’의 길이가 상당히 짧다. 그래서 배와 배꼽이 그대로 노출된다. 하지만 배와 배꼽이 보이는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배나 배꼽 같은 속살이 드러나는 것은 괜찮고, 살이 보이지 않는 청바지는 안된다는 것이 이상했다.
배꼽티는 문제가 되지 않고, 청바지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어느 부위를 드러내냐에 있다. 배꼽은 괜찮지만 다리는 안된다. 인도의 전통의상을 보면 배는 드러내고 다리는 감추는 옷이다. 그래서 배꼽티 괜찮지만, 청바지는 사리와 같은 치마로 가려야 하는 부위임에도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게다가 찢어진 청바지는 몸매를 드러내는 것을 넘어 속살을 보여주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사리를 결혼한 여성의 여성스러움을 상징했다. 많은 기혼 여성들에게 사리는 패션의 선택이라기보다 필수 복장이다. 역사학자인 ‘무쿨리카 바너지’는 사리를 입는 것과 여성적인 아름다움의 전통적 기준, 즉 가녀림, 섬세함, 보수성을 대표하는 남아시아 기혼 여성들을 위한 단정한 옷이라고 말했다. 바꿔서 해석해보면 사리를 입지 않는 것은 여성의 정체성을 무너뜨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청바지를 입고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는가?
‘티라트 싱 라왓 우타라칸드주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청바지 입은 사람에 공공연히 지적하기도 했다. “무릎이 보이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사회에서 활동한다면,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과연 어떤 가치관을 가르칠 수 있겠는가? 옷을 모두 벗어던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인도 장관 ‘사야팔 싱 인적 자원부 장관’은 “결혼하려면 서구의 영향을 받은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과 만남에서 "어떤 소년도 청바지를 입는 소녀와 결혼할 의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발언이 공개되자 SNS에서는 인도 여성 수천 명과 일부 남성들이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사진을 찍은 뒤 이를 공유하는 해시태그 #RippedJeans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2012년 하리아나주에 있는 아다르시 여대가 학생들이 청바지 등을 입다가 걸리면 100루피(약 2000원)의 벌금을 내도록 하기도 했다. ‘알라카 샤르마 총장’은 “여학생들이 몸에 달라붙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으면 남성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 학생 자신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조치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 대학 여학생들은 “성희롱은 여성들이 몸을 가리는 인도의 전통 옷인 사리를 입는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에 맞지 않는 구시대적인 발상”이라면서 학교 측 조치에 비판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다. 1967년, 당시는 여자가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금기하던 시기였다. ‘가수 윤복희’는 한국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앨범 재킷을 찍거나 패션쇼를 하기도 했다. 당시 신문 등에서는 미니스커트를 민족의 반역자라고 취급까지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니스커트는 대유행이 되었고, 지금은 학생들의 교복이 짧은 치마가 되었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다. 세상은 항상 변한다. 그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도 항상 변한다. 1967년에는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금기였지만 2022년에는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평범한 것이 되었다. 1967년에 윤복희를 욕하는 사람이 지금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사람을 욕할까? 그들도 변했을 것이다. 받아들였을 것이다. 단지 일찍 받아들인 사람이 있고 천천히 받아들인 시기의 차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내 기준에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평생 그 견지를 주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뀔 수 있는 기준이라면 자신의 기준이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여성의 아름다움을 살려주는 사리
사리는 어떤 옷일까? 인도 여성의 일상적인 의상인 사리는 가장 오래된 의복 형태 중 하나이다. 사리의 역사는 기원전 3200년에서 기원전 2000년 사이 인더스 문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6~8.2m의 길이이고 대부분은 5.5m 정도이다. 긴 천을 둘러 입는 사리의 형태처럼 사리라는 용어는 천 조각이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사티'에서 유래했다.
여성들은 사리를 입을 때 블라우스나 슬립을 받쳐 입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 식민지 시대의 방글라데시 출신 사회개혁가 ‘냐나다난디니 데비’는 이러한 옷차림이 대중 앞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데비는 1864년 사리를 입을 때 블라우스와 함께 슬립 또는 페티코트를 착용‘니비’ 스타일을 탄생시켰다.
사리는 단정해 보이고 여성스러움을 대표하는 옷이지만 편한 옷은 아니다. 비싼 옷은 면이나 실크로 만들지만, 서민이 입는 옷은 나일론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땀 배출이 안 되기도 한다. 또한, 5m가 넘는 긴 천을 두르고 있어야 하니 무게도 만만치 않다. 일하거나 움직일 때는 자주 옷의 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하고 늘어진 천을 잡고 있어야 한다.
옷이란 무엇일까? 나를 감추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일까? 나를 감추기 위해 천을 둘러 입는 사리가 좋은 옷일까? 아니면 나의 몸매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청바지가 좋은 옷일까? 나는 좋은 옷을 없다고 생각한다. 옳은 옷은 더욱 없다고 생각한다. 옷이란 좋고 나쁨도 아니고 옳고 그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옷에는 의미가 없다. 그저 사람이 좋고 나쁨을 얘기하고 옳고 그름을 이름 지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이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고 만다. 그저 몸이 부끄럽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그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진정 신경 써야 할 것은 어떤 옷을 입느냐가 아닌 옷 속에 무엇이 들어있느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