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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난 레옹이 May 19. 2022

소탐대실(小貪大失)

나무와 풀은 이런 실수 안 해요

활짝 핀 꽃은 화려한 색깔과 모양, 향기와 꿀로 곤충을, 아니 동물을 유혹해요. 정확히 곤충이라고 한정 짓지 못한 건 우리 집 다용도실에 있는 꿀단지 때문이에요. 양봉업 하는 친구 아버지로부터 매년 구입하고 있는 그 꿀단지는 우리 가족의 애착템이 된 지 벌써 오 년째. 곤충이 우리 가족보다 더 꿀을 좋아할까?  다시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왜 꽃은 곤충을, 아니 동물을 유혹할까요?  


어렵고 힘겨운 상황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애써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세상에 자신의 2세를 남기기 위함이지요. 여기서 사람은 제외해야겠네요. 이 시대의 출산율로는 설명할 길이 대략 난감이거든요. 식물은 꽃을 피워서 열매를 맺고 씨앗을 만들어 퍼트리는데 자신의 모든 걸 걸어요. 꽃의 첫 번째 미션은 자신의 수술머리에 있는 꽃가루를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가 닿게 하는 것. 움직일 수 없는 꽃은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요. 벌과 나비 같은 곤충, 그리고 가끔 바람과 물의 도움도 필요해요. 다행히 곤충은 꽃을 좋아해요. 곤충에게 꽃은 꿀단지거든요. 그래서 식물과 곤충은 대화를 해가며 서로를 도와요. 꽃은 식물과 곤충이 대화를 한다는 증거예요. 우리가 말로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꽃과 곤충의 대화! 낮에 피는 꽃은 꽃잎을 열어 화려한 색을 자랑하는 방식으로 대화를 하고, 밤에 피는 꽃은 진한 향기를 내뿜어 멀리 있는 곤충까지 불러 모으는 방식으로 대화를 해요. 


꽃은 꽃잎 색 하나 정하는데도 대충 하지 않아요. 대부분의 꽃은 자기를 도와줄 곤충의 눈에 잘 띄는 색으로 자신을 치장해요. 곤충이 보는 세상과 사람이 보는 세상이 많이 다른 거 아나요? 특히 벌은 빨간색을 볼 수 없어요(대신 사람이 못 보는 자외선 영역의 일부 색은 볼 수 있지요). 벌 외에도 많은 곤충이 빨간색을 못 봐요. 그래서 숲에 가면 빨간색보다는 다른 색들로 치장한 꽃을 보게 돼요. 꽃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색이 흰색이에요. 흰색은 멀리서도 곤충의 눈에 유난히 잘 띄거든요. 그다음으로 많이 이용되는 색이 노란색, 그리고 분홍색, 보라색, 파란색 순이에요. 


곤충이 찾아오면 꽃은 일단 곤충이 안전하게 착지할 공간을 내줘요. 착지 완료! 경우에 따라 활주로를 준비한 꽃도 있어요. 꽃잎 한편에 줄무늬나 점박이 무늬를 그려놓은 건데 전문용어로는 ‘허니 가이드(honey guide)’라 불러요. 곤충을 달콤한 꿀이 있는 곳까지 안내해주는 역할을 해요. 꽃은 자신의 가장 깊숙한 곳에 꿀을 숨겨두는 버릇이 있어요. 작은 곤충이 꿀을 찾아 들어가는 동안 몸에 꽃가루가 최대한 많이 묻길 바라기 때문이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자기장을 이용해서 곤충을 끌어당기는 꽃도 있어요. 정전기 때문에 겨울옷을 입고 벗을 때 옷에 머리카락이 달라붙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지요? 자기장도 비슷해요. 겨울옷이 머리카락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꽃이 만든 자기장이 곤충의 털을 끌어당기는 거예요. 우리가 보기에 꽃은 마냥 예쁘고 얌전하게 피어만 있는 것 같지요? 속사정은 이렇게 체험삶의현장이예요. 할 수 있는 손짓 발짓 총동원해서 내게로 제발 오라고 온갖 곤충을 다 유혹하고 있어요.


근데 꽃이 피어있는 내내 곤충을 유혹하는 건 아니에요. 식물은 곤충이 꿀을 다 가져가면 광합성을 해서 다시 꽃에 꿀을 채워놔요. 꽃은 꿀이 다시 채워질 때까지 일단 자기장을 끄고 꽃잎도 움츠려요. 솔직하게 꿀이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러면 곤충이 꿀 없는 꽃 속을 헤매고 다니다 괜한 배신감을 느낄 일이 없어요. 솔직히 꽃은 꿀이 있든 없든 곤충이 자주 찾아와 주길 바라요. 하지만 자기 욕심에 꿀이 있는 척 거짓말을 하지는 않아요. 만약 꽃이 자꾸 거짓말을 한다면 곤충은 두 번 다시 그 꽃을 찾아가지 않을 거예요. 소탐대실(小貪大失). 눈앞의 작은 이익을 얻으려 거짓말하다가 오히려 중요한 많은 것들을 잃을 수 있다는 걸 꽃은, 식물은 알고 있어요. 


우리 주변을 둘러봐요. 사소한 거짓말로 오랫동안 쌓은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경우를...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동호회에서, 공들이지 않아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어요. 누군가는 사소한 거짓말을 하고 실수라고 말을 해요.     


나무와 풀은, 그런 실수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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